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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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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송찬호

  • 기사입력 : 2010-11-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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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구꽃이 잠깐 피었다 졌다

    살구꽃 양산을 활짝 폈다가

    사지는 않고

    그냥 가격만 물어보고

    슬그머니 접어 내려놓듯이

    정말 우리는 살구꽃이 잠깐이라는 걸 안다

    봄의 절정인 어느 날

    살구꽃이 벌들과

    혼인비행을 떠나버리면,

    남은 살구나무는 꽃이 없어도

    그게 누구네 나무라는 걸 훤히 알듯이

    재봉틀 밟는 소리 나는 곳이 살구나무 수선집이고

    종일 망치소리 나는 곳이 살구나무 철공소라는 걸 멀리서도 알고 있듯이

    살구나무와 연애 한 번 하지 않아도

    살구나무가 입은 속옷이

    연분홍 빤쓰라는 걸

    속으로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송찬호 ‘살구꽃’ 전문(‘유심’ 3·4월호, 2009)

    ☞ 유효기간은 짧아도 꽤 비쌀 것 같은 살구꽃입니다. 서둘러 벌들과 혼인 비행을 떠난 살구꽃은 어디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고 새색시처럼 살고 있을까요.

    살구나무는 꽃을 떠나보내고 새로 몸단장을 합니다. 상처 난 곳은 깁고 허전한 곳은 새살을 돋게 하고 살구나무 자기만의 품과 높이를 갖추어 갑니다.

    살구나무는 살구나무끼리 그들만의 개성이 있고 그들만의 소리와 재능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꽃 같은 자식들 순식간에 떠나가고 멀거니 남은 몸들, 그저 그렇게 무덤덤한 듯 보여도 그 속 뜨거울 거라는 거 알고 제 소리 제 색깔로 한 시절 살아낸다는 거 다 압니다.

    모든 존재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들만의 질서 속에 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우리만의 세계를 보는 눈이 있어 그 눈으로 세계를 읽어내듯이! 벼꽃 떠난 벼와 연애 한번 하지 않아도 벼의 속살이 하얄 거라는 거 안 봐도 우리가 알고 있듯이!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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