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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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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디딤돌과 걸림돌- 옥영숙(시인)

  • 기사입력 : 2010-11-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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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고 푸른 가을하늘이다. 가을이 풍요로운 계절인 만큼 축제며 운동회 등 여러 가지 모임이 즐비하다. 얼마 전 초등학교 총동창회의 운동회가 모교에서 열렸다.

    시간의 흐름 속에 세월의 무상함도 느끼면서 마음만은 초등학생 시절의 그 패기 어린 개구쟁이 시절로 돌아간다. 하루는 길고 일년은 짧고 십년은 더 빨리 지나는 것 같다며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기수별로 추첨된 조별 리그로 족구며 피구, 단체줄넘기에 여념이 없다. 6년간 같은 교문을 드나들었다는 동질감만으로 단번에 친근한 사이가 된다.

    동창모임은 능력과 재주보다 가슴속에 담겨져 있는 아름다운 추억 하나 둘 모아서 진심이 통하고 상호간의 교감이 이뤄지는 장이다. 그토록 컸던 운동장이 작아 보이고, 삐걱거리던 목조계단을 이야기한다. 순수하고 빈 도화지 같은 유년시절은 창의력과 모험을 도모하던 세상을 향한 디딤돌이었다.

    한 친구는 3~4학년 무렵으로 기억하는, 나름 공부도 잘하는 비상한 머리로 호기심으로 가득찼다. 학교 별관에는 사택이 있어 청소를 하기 위해 곧잘 물 길러 갔었다. 어느 날 대문에 “손대지 마시오 전기옴”이라고 팻말이 붙었는데 그것이 궁금하여 손을 살짝 댔단다. 그때 감전되어 죽지 않고 살아서 살짝 맛이 갔단다. 6학년 즈음엔 에디슨이라도 된 양 종이화약을 분해하다 수업시간에 화약이 터져서 선생님께 맞았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휴일이라 마음 놓고 늦잠을 잔 양 잠이 덜 깬 부스스한 표정이지만 그래도 반가운 얼굴빛이 역력한 친구의 등장이다. 친구는 모처럼 동창들을 만난다고 잘 차려입은 매무새와는 달리 하얀 고무신이 눈에 띈다. 다들 박장대소하고, 웬일이냐고 묻는데 어릴 때 추억으로 고무신을 신고 왔단다. 국산 나이키라며 운전할 때나 비가 올 때 부담 없고 편하단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수구골통이다.

    40여년의 세월에 풋풋하던 머리칼은 흰머리가 숭숭해졌지만 자연스레 동심으로 돌아간다. 졸업하고 처음으로 참석한 친구는 첫인사는 서먹했으나 여기저기 ‘니가 누고’ ‘니 맞제’…. 금세 어색하던 표정도 풀리고 얼싸안으며 ‘반갑다 친구야’가 된다.

    비가 오면 질척해지는 운동장을 위해 연탄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 시절에는 잘사는 집은 연탄을 사용했지만 그렇지 못한 집들은 나뭇단으로 취사연료와 난방을 겸했다. 연탄재도 귀하던 시절이라 연탄재를 훔친 이야기에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지금은 전망 좋고 아름다운 곳에 펜션도 짓고 건강한 삶을 사는 성공한 귀농인이다.

    또한 그 시절에 쥐잡기운동으로 정부에서 쥐약도 나눠주고 대대적으로 쥐잡기를 권장했다. 숙제로 쥐꼬리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쥐꼬리가 없던 친구는 오징어다리를 불에 살짝 구워 밀가루를 묻혀서 내놓기도 했다. 무사히 담임선생님을 속였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도 유쾌하게 웃는다.

    이런저런 핑계로 별반 소득이 없는 모임을 사람들은 기피한다. 항간에는 속내가 드러나는 이런 유행어도 있다. 자신에게 유익한 모임이면 아버지 제사라도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 참석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모임은 처외삼촌 제사까지 핑계거리로 삼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의 움직임이 명분과 실리로 변한 모임에서 아직도 동심으로 돌아가고픈 중년의 순수함이 있는 곳은 초등학교 동창모임이다. 그토록 가슴 떨리게 하던 소년소녀의 모습은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시절의 동심은 고단한 삶의 뜀틀에서 언제라도 힘차게 도약시키는 도움받기가 된다.

    삶이 주는 긴 여정 속에 우리는 디딤돌도 만나고 걸림돌도 만난다. 숱한 인간관계 속에서 누군가에게 걸려 넘어지고 상처를 받지만 그 아픔을 위로하고 아름다운 동행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동심은 삶의 디딤돌인 것이다.

    옥영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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