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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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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뚝배기보다 장맛?- 이덕진(창원전문대 교수)

한국문학 제대로 번역 못해 저평가…수준 걸맞은 ‘포장술’필요

  • 기사입력 : 2010-11-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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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월은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가 유난히 높았던 달이었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시인이 살고 있는 집 앞에는 수백명의 보도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페루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로사가 받았다. 수상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진하게 남는 순간이었다.

    나는 고은 시인이 문학상을 받을 정도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만큼 시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소설의 경우, 박경리의 ‘토지’나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그리고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을 읽을 때, 온몸이 감동으로 떨림을 느끼며,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는 집안을 배회하다가는 다시 책장을 열고 한다.

    이러한 감동은 이 작가들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나 여러 번 읽은 지금에나 변치 않는다. 그래서인지 비록 필자의 안목이 조악하기는 하지만 이들 작가의 작품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에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고은 시인을 포함해 이들 불세출의 작가들이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할까?

    생각 끝에 나는 결국 ‘포장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린다. 다시 말해서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장맛은 좋은데 뚝배기가 영 시원찮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다.

    국내 케이블TV에서 볼 수 있는 일본 프로그램 가운데 기차역의 매점을 돌아다니면서 도시락을 사서 먹고 그 맛을 비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부러운 것은 역전마다 도시락이 우리나라의 기차 도시락과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나모두 뜯어서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포장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맛은 어떤지 몰라도 뚝배기가 너무 좋은 그 포장술이 부럽기는 하다.

    언젠가 TV에 출연한 모 여성이 “요즘 키가 경쟁력인 시대에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 남자 키는 180cm는 돼야 한다”라고 발언해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사실 이 여성의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인식의 단면, 즉 외모라는 포장에 대한 과도한 천착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뿐 아니다. TV를 틀기만 하면 마치 돈을 그저 줄 것 같은 대부업체들의 광고가 넘쳐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리(高利)이다. 역시 과포장이다.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발표를 하고 홍보를 하는데 뜯어보면 알맹이가 없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포장만 그럴듯하게 하면 된다고 하는 속임수에 가까운 사고방식이 넘쳐나는 사회가 된 것 같아 씁쓰레하기 그지없다.

    장맛에는 관심이 없고 뚝배기를 그럴싸하게 만드는 것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사회는 거짓이 판을 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은 일찍이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하나는 쾌락에 치우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고행에 치우치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다. 이 중도가 깨달음과 자유를 얻게 하는 길이다”라고 하여 고행과 쾌락 사이의 중도(中道)를 설파하셨다.

    유가에서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것이 중이며,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용’이라 하여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이라 하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작 포장이 필요한 곳에서는 포장을 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과포장을 한다. 뚝배기가 필요한 곳에서는 장맛 타령을 하고, 장맛이 필요한 곳에서는 뚝배기 타령을 하는 그런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일까. 중도나 중용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이덕진(창원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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