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쬐다- 유홍준
- 기사입력 : 2010-11-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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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유홍준, ‘사람을 쬐다’ 전문(‘유심’11·12월호, 2009)
☞ 해와 달이 암만 밝아도 엎어놓은 항아리 밑은 비추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곳이 있으면 그 항아리를 바로 세워 양지쪽으로 옮겨놓을 일입니다. 무엇이든 햇볕을 쬐어야 건강합니다. 빛이 납니다. 그렇게 햇볕을 쬐듯 사람도 사람을 쬐면 나이와 상관없이 향기가 나고 빛이 납니다.
밝게 응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 자리에 꽃이 피고 단풍이 듭니다. 그 자리에 삶의 온기가 있고 생사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물건에는 누군가의 땀과 눈물, 살과 피가 들어있다는 걸 잊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물건도 사람을 쬐면 빛이 나고 향기를 풍기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람을 쬐지 못해 곰팡이가 피는 집과 동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쌀과 콩을 생산하고 밥과 된장냄새가 났을 그곳, 우연히 그 앞을 지날 때에는 잠시라도 멈춰 서서 손과 말을 서로 쬐고 가시기 바랍니다. 곰팡이와 검버섯이 자라지 못하도록 얼굴이라도 내밀고 가시기 바랍니다.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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