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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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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반찬- 공광규

  • 기사입력 : 2010-11-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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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공광규, ‘얼굴반찬’ 전문(‘시안’봄호, 2008)

    ☞ 친척이 와서 하룻밤을 묵는 날이면 괜히 들뜬 기분에 잠을 설치곤 했지요. 집안의 갈등도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고요.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숟가락이 간장 종지 하나로 달그락거리더라도 친척이나 이웃과 함께하는 날이면 얼마나 배부르고 행복했는지요! 또 그분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마음씨가 좋았을까요. 아예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요즘 아이들도 그런 맛있는 정을 느낄까요. 동기간이 없거나 하나뿐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언니 누나 이모 고모 외삼촌이라는 정겨운 호칭들이 남아 있을까요. 설마 그런 일까지 일어나겠습니까마는 보고 듣기만 해도 영양가 듬뿍한 정신적 자산들이 이기적으로 변질되고 부패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공동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져버린 안타까운 현실 앞에 더욱 불러보고 싶은 호칭들! 그 얼굴들 다 어디로 갔을까요? 그 맛있는 풀잎 반찬들 누가 설거지했을까요? 그러고 보니 가족과 얼굴 맞대고 밥상머리에 앉아본 기억부터 감감합니다.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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