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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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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대칭의 조화를 찾아- 공영해(시인·창원문인협회장)

  • 기사입력 : 2010-11-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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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전부터 나는 야생화를 즐겨 찾았다.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찾아 안부를 물었다. ‘이름 없는 꽃’이 어찌 있으랴. 꽃의 이름을 알면 알수록 나는 마음부자가 되었다. 서정의 세계에 대한 접근이 문자 언어를 통해서만 있지 않음을 나는 꽃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디카를 구해 꽃의 마음을 담기 시작하였다. 꽃마다 가지고 있는 꽃의 마음 향기는 아름다웠다. 꽃과 소통하면 할수록 그 세계의 정연한 질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저한 대칭의 조화와 향기에 나는 빠져들었다. 꽃의 거처를 찾아 순례를 하자 꽃들이 먼저 마음문을 열고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꽃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와 아주 친한 꽃들의 안부를 물어 본다. 정병산은 야생화의 보고였다. 용추계곡을 따라가노라면, 계절은 부지런히 식물도감을 펼쳐 들고 차례로 꽃씨를 뿌려 두고 있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랬다. 워낙 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다투어 피니 꽃의 세계에도 나름의 룰이 있었다. 봄은 워낙 치밀하여 통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음이 없다.

    생강나무 꽃봉오리가 아직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봄은 노루귀를 먼저 부른다. 노루귀가 떡갈잎을 들치고 뾰조롬이 머리 내밀며 앙증스레 웃으면 곤줄박이를 보내 잔치판을 벌인다. 이어서 꿩의 바람꽃, 현호색, 고깔제비, 남산제비 꽃을 맵시 있게 단장시켜 늦지 않게 보낸 뒤 괭이눈을 불러 경비를 서게 하고 이어 얼레지와 노랑제비, 양지꽃을 보내 환한 미소로 4월을 마중하는 자리에 산개별꽃을 앞세워 하얀 별꽃을 뿌리게 한다. 족두리, 산자고를 보내면 봄의 골짜기는 온통 조팝나무꽃 향기로 달디 단 잔치판이 된다. 광대나물, 홀아비꽃대, 삿갓나물을 느지막이 보낸 뒤 봄은 이제 스스로 밤나무 향기에 묻혀 여름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여름은 좀 변덕이 심하지만 나름대로 너그럽다. 기린초, 꿀풀, 골무풀, 까치수염, 물봉선을 적절한 자리에 나들이 보내 봄의 잔치판을 정리한 후 범의꼬리, 하늘말나리, 원추리, 달개비, 노루오줌을 불러 장맛비가 내리기 전까지 골짜기를 지키게 한다. 장마가 들자 꽃들을 잠시 쉬게 한다. 쉼을 끝내자 여름은 언제 준비해 두었던지 큰세잎쥐손이, 맥문동, 자주꿩의다리, 가는등갈퀴, 무릇에게 보라색 옷을 입혀 매미 불러 잔치판의 흥까지 돋운다. 둥근이질풀, 참취, 등골나물, 탑꽃, 오이풀, 흰여로를 그냥 둘쏘냐. 엉겅퀴까지 불러들이니 잔치 장히 성황이로다. 여름도 이제 가을에게 자리 양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마타리, 물레나물, 긴담배풀을 앞장세우고 억새, 솔새, 개솔새에게 배턴을 넘기면 가을은 이미 다가와 있다.

    가을은 또 그냥 있지 않다. 누리장나무, 고추나무 열매가 익어갈 무렵이면 여름의 잔치 설거지할 송장풀, 뚝갈, 투구꽃 불러들이는구나. 나비나물, 참당귀, 궁궁이 불러 판을 더 크게 벌인다. 좁쌀풀, 구절초, 쑥부쟁이, 뚱딴지, 고마리, 산부추 형형색색의 꽃들 어찌 아니 부를쏘냐. 불러온다. 생강나무가 벌써 노란 단풍물에 젖을 무렵이니 판도 파장이라 이제 꽃향유, 산국 불러서 온 산에 향기 풀어 놓는다. 겨울은 꽃잔치 없어도 배부르다. 모든 꽃들의 씨, 뿌리를 얼지 않게 품어주는 것만으로도 겨울의 할일은 다하는 것이다.

    꽃의 이름을 잎 속으로 굴리면 그들의 거처가 훤히 떠오른다. 나는 그들로부터 배운 질서와 대칭의 조화를 문학에 담을 준비를 해 본다. 내가 붓을 드는 날 그들은 우르르 달려와 글속에다 무궁무진 방향을 심어주리라. 나는 그들의 서정을, 그들의 말을 이제 나의 언어로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

    공영해(시인·창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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