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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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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실로폰다리- 정이경(시인)

  • 기사입력 : 2010-11-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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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상대방을 위한 배려에 대하여 많은 부분들을 근본으로 삼기도 하고, 심지어는 교육까지 받아왔다. 하지만 교육받은 만큼 잘 실천하고 있는지? 나는 타인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배려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되짚기를 이즈음에서 해보게 되었다.

    11월 중순, 규슈의 후쿠오카현에 있는 복지산(福智山 후쿠지야마)으로 산행을 갔다. 제주도와 같은 위치여서인지 날씨도 전형적인 가을다웠고, 함께한 선후배들은 서로 챙겨주었기에,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온 우리 일행은 세계 최대의 와불상으로 유명한 사찰인 남장원(南藏院)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후쿠오카현에서도 외곽에 있는 남장원은 작은 마을에 잇대어 있었고, 차에서 내려 다리 하나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 다리는 흔히 우리나라에도 있을 법한 그저 그런 다리였다.

    그러나 그 다리의 난간에는 특이하게도 실로폰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음표도 그려져 있고, 친절하게도 실로폰채까지 작은 통에 얌전하게 준비되어 있던 아주 재미있는 다리였다. 그 다리를 지나는 유치원생들을 비롯하여 어린이들을 배려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유치원생이라도 된 듯이 실로폰채를 잡고 귀에 익은 동요의 음계를 두드리며 그 다리를 지났다. 실로폰이 주는 맑은 음색과 더불어 절이 있던 이국의 작은 마을에는 그 시각에 조용히 해가 지고 있었다.

    흔히들 가깝고도 먼 일본은, 우리와는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이웃이라고도 한다. 전후 세대인 나도 이 말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는다. 굳이 크고 작은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들과 우리는 ‘마냥 친근한 이웃’이 될 수 없는 역사가 있기에, 어쩌면 이러한 것들은 대대로 연결고리처럼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또 이러한 상황들을 배경으로 두지 않아도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치레)의 이중 구조적인 사고가, 교양 있는 행동 양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들만의 정서가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장원이 있는 곳은 중심도시도 아니고 시골의 작은 역이 있던 그 마을에서 유치원생들을 위한 사소한(?) 배려가 묻어나던 다리를 지나면서 그들의 문화와 정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또 산행을 하면서 마주친 그들은 잠시 멈추어 서서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물론 산행을 자주 하는 편인 나도 산에서 오가며 스치는 이들에게 여유롭게 양보도 하고 종종 인사를 하는 편이다. 오르는 사람에게 먼저 길을 양보해주고 인사를 건네야 하는, 산에서도 지켜야 예절이 있기에, 그런데 복지산(福智山)에서 만난 그들은 자기들이 먼저 올라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상대방이 먼저 내려가기 편하도록 길 한쪽을 내어주었다. 게다가 한결같이 웃음 띤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그들도 오르막길에서는 왜 숨이 차고 힘들지 않았으랴.

    미얀마에 복지성금을 몇 년간이나 보냈고, 그 고마움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전달받은 남장원의 주지스님은, 그 사리를 봉안한 와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지금은 국내외를 비롯하여 연간 120만명의 참배객이 다녀간다고. 사찰과 신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남장원의 감흥보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 아이들과 어른들, 심지어는 외국인이든 어른까지도 한순간 맑은 음색에 젖어들게끔 하던 그 ‘실로폰다리’, 아직도 실로폰음이 주는 맑고 따스한 여운이 내곁을 맴도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가을날, 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멋진 산행도 좋았지만 작은 배려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게 가만히 다가왔다. 그리하여 어떻게 실천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정갈한 마음 한 자락을 가만히 보듬어본다.

    정이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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