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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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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그늘- 성윤석

  • 기사입력 : 2010-12-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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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내지 않을 수 있는데도 보내준다.

    내버려두면 더 좋았을 법 싶은데도

    손가락으로 꾹, 눌러본다. 추운데도

    창문을 열고 비를 들인다. 어두운데도

    불을 켜지 않고

    물지 않는데도 나방을 덮쳐버린다.

    그리고 고요…… 내가 만든 오랜 고요

    나는 늙는다.

    날이 갈수록 사랑은

    더욱 무서운 것이라서,

    내 눈 끔벅거리는 소리

    크게 들린다.

    -성윤석, ‘시간의 그늘’ 전문(‘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문학과 지성사, 1996)

    ☞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가는데도 결국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사랑하고,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데도 살아갑니다.

    사랑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대상을 향해 어쩔 수 없는 상처 자국을 남기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 시간이 남기는 그늘은 길고 그에 따라 상처도 깊어가는 것인지 모릅니다. 내가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를 건드리고 간섭하고 심지어 마음대로 세계를 조작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하고 상관없는 존재를 죽이기도 합니다. 내가 만들어가는 그런 시간을 응시해보면 고요의 웅덩이 속에 내가 빠져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속에서 허우적대며 늙어가는 나, 끝내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사랑, 어찌할 수 없는 몸이 눈만 끔뻑거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뚝뚝 떨어져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쓰지 않을 수 있는데도 쓰고, 걷지 않을 수 있는데도 걷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만듭니다.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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