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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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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20) 시조시인 이우걸

“내가 느낀 감동·사물과의 대화가 가락 타고 흘러나온 것”

  • 기사입력 : 2010-12-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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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젖은 어깨 위에 하늘이 쌓여 있다./아무도 그의 이름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풋나무 잎사귀 같은 권세가 지고 있다.(‘노을’ 전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조시인 이우걸의 ‘절제된 미덕’의 글귀를 만나는 순간이다.

    만추(晩秋)의 단풍이 햇살에 반사돼 더욱 주위를 붉게 물들이는 어느 날 오후, 커피 향이 그리운 공원 벤치에 앉아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상념에 잠긴 이우걸(64) 시인을 만났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에 고개 든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섬세해 보인다.

    “전 국민이 시조를 지을 수 있고, 시조라는 문학 장르가 대한민국 누구에게 대우받는, 시조의 문학적 역량이 국민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조창작운동을 펼쳐보고 싶다”고 말하는 시조시인 이우걸.

    “시조가 있어 행복하다”는 그는 “만약 자신에게 있어 시조가 없었다면 삶이 무미건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구원할 정신적 지주를 찾지 못해 오랜 세월 방황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징용으로 끌려간 아버지로 인해 늘 가슴앓이를 하시던 어머니는 초등학교 2~3학년이던 그에게 늘 외울 것을 달라고 했고, 형의 책 보따리를 열어 고시조를 붓으로 베껴 쓴 그는 어머니에게 고시조를 건네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레 고시조를 외우게 됐다.

    이런 그가 고시조의 매력에 빠져든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시절 대학도서관에서 빌려온 ‘노산문선’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됐다. 책을 반납하기 위해 헌책 방을 뒤지던 그는 ‘현대시조’라는 책을 구매하게 됐고 책을 읽던 그는 이영도 선생의 ‘모란’ 작품을 접하면서 시 세계에 빠져들었다. 선생의 글에 매료된 그는 그날 밤 처음으로 시조를 쓰게 되는데 이때 쓴 시조가 바로 ‘코고무신’과 ‘엽서’다. 그의 글이 대학 학보사 교지에 실리게 되고 그의 글을 본 김춘수 선생이 호평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때 처음으로 ‘내가 글을 써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 이듬해 시화전에서 국문과 권기호 교수로부터 “자네는 이제 추천을 받아야겠다”는 말을 듣고 김춘수 선생에게 추천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한 후 그는 자신의 글을 월간문학에 보내 당선된다.

    그러나 그는 월간문학의 당선을 취소하고 다시 현대시학에 ‘도리원 주변’, ‘이슬’, ‘지환’, ‘현지’, ‘설야’ 등의 작품을 응모해 당선되는 기쁨을 맛본다.

    “당시 월간문학의 심사위원이 이영도 선생이라, 선생은 나보고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지 말고, 내년에 현대시학에 도전해보라고 권하는 거야. 그래서 월간문학 당선을 취소하고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을 했지.”

    이씨는 등단 후 37년 동안 300여 편의 많은 시와 ‘저녁 이미지’, ‘사전을 뒤적이며’, ‘맹인’, ‘지금은 누군가와’, ‘배에 앉아’, ‘나를 운반해 온 시간의 발자국이여’, ‘나는 아직도 안녕이라 말할 수 없다’ 등 10권의 시집을 냈다. 그중에서도 ‘팽이’, ‘모란’, ‘비누’ 등의 작품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무수한 고통을 건너/피어나는 접시꽃 하나(‘팽이’ 전문)

    이 시에서 우리는 인간의 현실 또는 삶 자체가 지닌 아픔에 눈을 돌리고 있는 시인과 만날 수 있다. 시에서는 ‘가혹한 매’ 맞으면서 한자리에 ‘꼿꼿이 서서’ 돌고 있는 ‘팽이’가 등장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핍박에도 흐트러짐 없이 이 시대를 살아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일별할 수 있다.

    핍박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만큼 삶에의 의지를 불태우는 인간의 모습을 시인은 팽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결국 이 시의 정적 분위기는 한 인간의 내면적 고통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인은 핍박 속에서도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는 삶을 확인하고 끈질긴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장경렬(서울대) 교수는 ‘이우걸의 시조미학’을 통해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면 우리는 항상 그의 시가 담고 있는 절제의 미덕과 현실적 삶을 시조 형식에 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며 “이 절제의 미덕은 물론 시조 형식에 대한 시인의 애정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시조는 “우리 민족의 선험(경험에 앞서 선천적으로 가능한 인식 능력)적 가락이다”고 말한다.

    “내 몸 속에는 시조라는 가락이 선험적으로 돌고 있는 것 같다. 그 가락을 타고 내가 느낀 감동, 사물과의 대화가 자연스레 흘러나올 때면 시조가 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 비누를 마지막 쓰고 있는 김씨는 오늘 죽었다./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건/영혼의 거울과 같은/조그마한 비누 하나/도시는 원인모를 후두염에 걸려있고/김씨가 쫓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 위엔/쓰다 둔 그 비누만한/달이 하나 떠 있다(‘비누’ 전문)

    ‘비누’를 통해 자본주의의 그늘을 주시하는 시인의 예리한 눈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근원적으로 부조리하고 불행한 노동의 현실을 환기시키며 그가 몸담고 있는 시대의 아픔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나의 시조 세계는 전통적인 미학에 접근하던 유미주의적인 초기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시적 군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중기를 거쳐 초월적 미학을 추구하고 싶은 후반기에 닿은 것 같다”며 자신의 시적 영역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2003년 반연간 문예지 ‘서정과 현실’을 창간해 로컬리즘을 통한 한국시 발전에 8년째 기여해오고 있는 이우걸 시인.

    한국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정운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상 수상과 경남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국제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 마산문인협회장, 경남시조시인협회장, 경남문인협회장, 경남문학관장 등 향토 문학단체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시조시인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어의 미적 표현을 통해 우리의 삶과 현실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말하는 이우걸 시인은 “시조는 단지 우리 가락을 타고 있을 뿐 다른 장르의 문학과 다를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문학평론가 유성호(한국 교원대) 교수는 “극도의 절제와 함축을 시적 본령으로 삼는 시조 양식과 현대적 감각의 복합성을 결합시키려는 그의 글은 전통적인 정서의 재확인보다는 모더니티와의 적극적인 교섭을 통해 시조 미학을 확충하려는 노력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피면 지리라/지면 잊으리라/눈감고 걸어 올리는 그대 만장 그리움의 강/져서도 잊혀지지 않는/내 영혼의/자줏빛 상처(‘모란’ 전문)

    ☞ 이우걸 시조시인은

    1945년 창녕에서 태어났다.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한국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문학상, 마산시문화상, 경남도문화상, 정운시조문학상, 경남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마창불교문화상,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지금은 누군가와’, ‘빈 배에 앉아’, ‘저녁 이미지’, ‘네 사람의 얼굴’, ‘아 마산이여’, ‘나는 아직도 안녕이라 말할 수 없다’ 등 10권의 시집과 ‘현대시조의 쟁점 우수의 지평, ‘젊은 시조문학 개성읽기’ 등 3권의 평론집이 있다. 마산문인협회장, 경남문인협회장, 경남시조문학회장,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문예지 ‘서정과 현실’ 발행인으로 경남문학관장을 맡고 있다.

    글=이준희기자

    사진=성민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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