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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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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47) 진해 연도

하얀 등대, 푸른 하늘, 노을 바다…
이곳에선 나도 풍경이 된다

  • 기사입력 : 2010-12-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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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해 연도 서방파제 끝에서 바라본 바다와 가덕도. 하늘을 향해 뻗은 하얀 등대와 푸른 하늘,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바다가 조화롭다./이준희기자/

    낚시꾼들이 햇살에 반사된 바다를 배경으로 섬을 거닐고 있다.

    바다가 뿔이 났나 보다. 새벽부터 불어댄 거센 바람에 바다는 하얀 파도 꽃을 피우며 나그네의 발걸음을 묶어버렸다.

    알다가도 모를 날씨가 바다 날씨라더니…. 전날 그렇게 화창했던 날씨는 오간데 없고 오늘따라 바다는 유난히 심술을 부린다.

    뱃길로 20여분 거리, 눈앞에 뻔히 보이는 ‘연도’를 찾아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이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에 벌써부터 주눅이 든다.

    진해 웅천 괴정마을 부둣가에서 6km가량 떨어진 연도는 바람이 없는 날이면 금세 닿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섬이다. 하지만 오늘은 낯선 이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듯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예부터 어업이 성행해 ‘돈섬’, ‘쇠섬’으로 불렸던 섬 연도(80가구 208명·26만5003㎡).

    거친 파도를 뚫고 겨우 도착한 섬에는 거센 바람 탓인지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하루 6회 괴정 마을과 연도를 오가는 ‘연도호’(선장 강일부·67)는 연도마을 50여 명의 어촌계원들이 출자해 마련한 배다. 섬사람들이 선주인 셈이다.

    ‘어디부터 둘러보아야 하나…?’ 바람이 휘몰아치는 섬 부둣가 끝에 서서 멍하니 섬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연도호 강일부 선장이 살며시 다가와 “섬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신항만 공사가 한창인 서방파제에서부터 마을 끝에 자리 잡은 연도분교를 차근차근 둘러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연도 방파제 앞에 선박이 정박 중이다.

    신항만.

    신항만 공사가 시작되기 전 연도는 말 그대로 부자 섬이었다.

    50~60년 전 섬사람들은 참조기를 잡기 위해 저 멀리 서해안으로 출어를 떠났고, 섬 앞바다는 피조개, 새조개(일명 갈매기), 바지락, 도다리, 감성돔 등 온갖 종류의 해산물이 넘쳐났다. 피조개 양식만으로 한해 수천만원의 소득을 올릴 정도로 섬사람들의 생활은 윤택했다. 하지만 수년 전 신항만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섬사람들은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도 강경용 이장은 “신항만 공사로 조류의 흐름이 변한 앞바다는 뻘이 시꺼멓게 썩어 들어가면서 피조개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수산물들이 사라졌다”며 “이제는 먹고살기 위해 저 멀리 거제도 앞바다까지 나가 낙지, 도다리 등을 잡고 있다”고 푸념한다. 신항만이 섬사람들에게는 생활의 윤택함보다 아픔과 시련을 안겨준 셈이다.

    뱃머리를 조금 벗어나자 마을 앞 공터에 할머니들의 놀이터이자 섬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인 팔각정이 눈에 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도 아랑곳없이 할머니들은 팔각정에 둘러앉아 ‘10원짜리 민화투’를 치며 소일하고 있다. ‘뻥’ 뚫린 팔각정 주변은 이불 등 큰 천으로 가려 바람의 추운 기운을 피했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팔각정은 마을의 대소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어젯밤에 나간 누구네 배가 얼마나 고기를 잡았는지…, 누구네 집에 잔치가 있는지…, 밤새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히 알고 싶으면 이곳에 오면 된다.

    할머니들은 낯선 이의 방문에 “그냥 심심풀이로 치는 거니깐 경찰에 신고하면 안 돼요”라며 손사레를 친다. 우스꽝스러운 풍경에 팔각정 안은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연도는 전국 처음(1996년)으로 바닷물의 염분과 유기물질을 제거해 식수나 생활용수 등을 이용할 수 있는 ‘해수담수화’ 시설이 도입된 섬이다.

    물이 귀한 섬 마을에 ‘해수담수화’ 시설은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얼마나 좋던지….” 섬마을 여인들은 당시 기뻤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즐거워한다.

    당시 섬 마을은 물이 귀해 식수로 사용하기에도 늘 부족했다. 섬마을 곳곳에 우물이 있었지만 물이 짜 섬사람들은 식수로 사용하기보다 허드렛일에 주로 사용했다. “물맛이 소태라, 마을에서는 우물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며 “그나마 학교 옆 우물이 물이 맑고 깨끗해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으나 담수화 설비가 되면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인지 섬 마을엔 우물이 유난히 많다.

    연도에는 오래 전부터 섬사람들만의 애환이 담긴 ‘연도여자상여소리’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연도여자상여놀이’는 섬에서 상(喪)이 나면 먼바다로 일을 나가고 없는 남자들을 대신해 여자들이 상여를 메는 연도 마을의 장례풍습을 일컫는다.

    연도 어민들은 오래전 매년 음력 정월이면 참조기를 잡기 위해 저 멀리 서해안 등으로 6~7개월가량 출어에 나섰다. 이런 이유로 마을에 상(喪)이 나면 부득이 마을의 여인들이 장례를 치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이 마을의 고유한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연도여자상여소리’는 섬 여인네들의 꿋꿋한 생활의지를 잘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애절함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장례의식이 모두 끝나면 여인들은 흥겨운 풍물가락으로 봉분 주위를 돌면서 상주를 위로하고, 고된 장례의식의 피로와 슬픔을 딛고 내일을 위해 힘겨운 삶을 이어가야 하는 섬 여인들의 애환이 담긴 ‘연도여자상여소리’는 전체 5과장으로 ‘하직인사’, ‘발인제’, ‘상여 운구’, ‘상여 안장 및 평토제’, ‘뒤풀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아 섬아 연도 섬아 오늘날에 이별이야/ 에호~ 에호~ 어가리 넘자 에호~/ 북망산천 머다드니 방문 앞이 북망이네/ 에호~에호~어가리 넘자 에호~

    ‘연도여자상여소리’의 특징은 앞소리꾼으로부터 상여꾼에 이르기까지 여자들만으로 상여 행렬이 이루어진다. 안장 후 봉분을 만들 때에도 남자들은 궂은 일만 하고 여자들이 대야, 바지게 등으로 흙과 잔디를 운반한다. 또한 작은 섬 연도가 묘지로 인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맞은편 무인도인 솔섬(닭곶이)을 장지로 정해 수백 년간 이를 철저히 지켜왔는데 이는 섬사람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섬을 지키기 위한 슬기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더욱이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이 뱃길이라는 점에서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섬주민들의 숙명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도여자상여소리’는 10여 년 전 소리꾼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쉽게도 전승자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북쪽 끝 모퉁이 도치(도끼날 같이 날카로운 바람을 받는다는 의미)에 서니 아담한 웅천초등학교 연도분교가 나타난다. 전교생이 4명뿐인 초등학교는 비록 작지만 90여 년(1922년 개교)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바람이 잔잔해진 섬 마을은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섬에서 자란 배추로 김장을 준비하는 섬마을 부부, 이른 새벽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고기로 횟감을 준비하는 섬 아낙네, 찢어진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 등…. 부지런한 섬사람들의 삶이 생활에서 묻어난다.

    섬 주민이 횟감을 준비하고 있다.

    어민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발길은 마을을 지나 섬 서편의 서방파제로 향한다. 신항만을 입출항하는 모든 대형 선박들을 통제하는 ‘부산지방해양항만청 해상교통관제센터’와 방파제로 이어진 개머리섬을 지나 서방파제 끝머리에 서니 강한 바람에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이다. 그러나 맑고 푸른 하늘과 넓게 탁 트인 바다, 햇살에 반사된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선박들은 가히 환상적이다. 매혹적인 풍경에 반해 추운 줄도 모르고 서 있노라니 왼편으로 ‘신항만’과 정면의 ‘가덕도’, 왼편의 ‘거가대교’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연도 개머리섬 앞 바다.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섬, 강한 바람과 거센 파도가 때론 우리들의 발길을 잡지만 섬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정겨움과 설렘을 안겨 준다.

    ☞찾아가는 길

    진해구청에서 천자봉 공원묘지를 지나 바로 아래 도로로 빠지면 진해 괴정마을로 접어든다. 괴정마을 부둣가에서 괴정-연도를 오가는 ‘연도호’를 타고 20분이면 섬에 닿는다. 연도호는 하루 6회(오전 7시15분·8시50분·11시50분, 오후 3시10분·4시30분·6시20분) 운항되며, 주말과 공휴일 오전 10시25분 한 차례 더 운항된다.

    ☞잠잘 곳

    연도에는 많은 민박 시설이 마련돼 있어 잠자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문의(이장 강경용 ☏010-9307-0197)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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