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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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말솜씨- 하길남(수필가)

  • 기사입력 : 2010-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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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맵시라는 말은 있어도 말맵시라는 말은 없다. 말도 맵시 있게 하면 몸맵시처럼 말맵시라는 말도 성립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말솜씨라는 말이 있으니 굳이 그런 말을 만들어 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솜씨’보다 ‘맵시’가 더 정이 간다.

    “선생님, 내일 날씨가 몹시 추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옷을 따스하게 입고 외출하십시오” 하는 것이 아닌가. “댁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여기는 숙명여대입니다”하고 전화를 끊는 것이 아닌가.

    숙명여대라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집히는 사람이 없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이쿠, 내가 지금까지 헛살았구나. 나는 아직 그렇듯 낯선 사람을 감동시키는 말’을 한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남을 배려하면서 사는 정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몹시 궁금한 것은 어떻게 나를 알고 그런 전화를 준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반평생 넘게 오직 자신만 알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기에 그런 전화까지 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집에서 읽을 책을 고르면서, 소설집은 부피가 커서 너무 부담이 되고, 시집은 내용이 어렵고, 수필집이 무난하지 않을까 하고 이리저리 도서관에서 서성거렸다. 그런데 마침 분량이 비교적 얄팍한 수필집에 눈이 멈췄다. <인어들의 첫사랑>.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사랑’이란 말은 언제나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인연으로 하여 저자에게 전화까지 하게 된 것이란다.

    그렇다면 이 수필의 제목을 ‘인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말맵시는 그녀의 일상적 대화, 그 관습일는지 모른다. 이를 프레임(frame)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각자 가기가 살아오면서 형성된 경험현상을 바라보면서 판단한다. 즉 자기의 생각 방식을 공식화한 것을 말한다. 이는 어떤 조건에 대하여 거의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창(窓)’에 비유되곤 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마음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답게 태어났단 말인가.(중략)

    “생전에 너를 참 좋아했는데…”라는 그녀 오빠의 말만 듣고, 그녀의 무덤까지 찾아간 일도 결국,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작품화한 다음 나는 그 수필의 제목을 ‘살아서 말 없으면’이라고 적었다. 살아서 말 한마디 못한 정이 너무 서러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달산 밑에서 남의 손을 덥석 잡고 ‘사랑합니다’라는 다섯 글자를 써놓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린 키 큰 궐녀도 생각해 본다. 이런 분들은 모두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라는 것은 꼭 산 사람들에게만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배우 최진실이 죽은 지 두 해가 지나갔지만 아직도 그녀의 미니홈피에는 날마다 2000여 명의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어요. 행복하세요”라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도 그렇지 않았던가. 매몰된 이들에게 “제발 살아서 돌아오십시오. 저하고 데이트를 합시다”라는 눈물로 호소하던 앳된 아가씨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어 마침내 살아왔노라고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세 번 놀랐다. 우리 정치인들이 계속 싸우는 것은 7세 전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속 싸우는 광경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미국 토컨스 박사의 말을 듣고 놀랐다.

    그리고 사랑을 받지 못해 죽는 마리스머스병이 있다는 것, 또 무사병(無事病) 즉 사랑의 몸짓이 전혀 없어서 일으키는 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글쎄, 그 우리들의 말의 성찬(聖餐)은 지금 잠자는 들불처럼 숨죽이고 있다.

    하길남(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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