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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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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우주(宇宙)의 죽음- 이덕진(창원전문대 복지학부 장례복지학과 교수)

자살하려는 생각 막아 달라는 몸무림 내 몰라라 하다니…

  • 기사입력 : 2010-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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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을 적기 위해서 자료를 보던 중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고 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자살률 1위라! 흥미를 느껴 조금 더 읽어 보았다.

    자살은 내가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하는 공상으로부터 일어난다. 또한 자살을 실행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혹은 자기애(自己愛)적 손상을 받은 사람, 지나친 분노나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 자살자의 정서와 행동은 주로 그가 세계를 구조화하는 방식에 의하여 결정된다. 모든 심리적인 장애에는 왜곡되고 역기능적인 사고가 공통적으로 존재하며, 이러한 역기능적인 사고는 개인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잘못된 신념을 교정함으로써 심리적 억압을 제거하고 지나치게 부적합한 정서적 반응을 치유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여기까지 읽다가 문득 연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대학 후배 K군이 죽었다고 기별이 왔다. 아직 죽기에는 이른 나이인데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바쁜데 가야 하나 하고 주저하고 있는 중 대학동기이자 가까운 친구인 L군한데서 전화가 왔다. K군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 홀연 몇 달 전의 일이 생각났다. 나에게도 전화가 왔었다. 그때 무슨 일인지 바쁜 일이 있어 다음에 연락할 게 하고는 그냥 무심히 넘겨버렸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장례식장에 갔다. 장례식장에는 손님이 많았다. 악상(惡喪)인 데도 조문객이 많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상(問喪)을 하고 대학 동창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K군이 자살하기 전에 자기가 아는 모든 대학의 선후배 동문들에게 전화를 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전화를 한 번 혹은 두 번씩은 받았고, 모두가 바빠서 다음에 만나서 술 한잔 하자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가슴이 아팠다.

    조금 있자. K군의 부인이 동석했다. 상(喪)의 주부(主婦)인데! 비례(非禮)라 의아해했지만 잠자코 있었다.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작심한 듯 부인은 눈물을 찍으며 고인의 생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고인은 지난 육개월간 거의 매일 아침 노량진에 있는 자택에서 모교가 있는 안암동까지 그 먼 거리를 걸어갔다 걸어왔다는 것이다. 말리다 지쳐 한번은 부인이 따라 가보니 학교까지 가서는 교문 앞에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다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가는 길에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하면 그 속에 들어가서 수첩을 보고 학교 동창들에게 전화를 하더라는 것이다.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그는 자기를 살려 달라고, 죽지 않을 이유를 말해 달라고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도움을 청한 것이다. 부인이 다녀간 후 나뿐 아니라 모두가 다 죄지은 기분으로 묵묵하게 술을 마셨다. 그날 나는 폭음을 했다. 그가 구조신호를 보낼 때 무심하게 치부한 내가 너무나도 역겨웠기 때문이다. 무슨 귀한 일을 한다고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자살 생각을 막아 달라고 그리고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는 사람의 일을 내 몰라라 하다니. 그가 죽으면 한 우주(宇宙)가 죽는 것인데. 나와 우리가 조금 일찍 그의 눈을 통해 비추어진 세상을 이해했다면 그리고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함께하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적응적인 삶의 방식을 찾아나갔더라면 K군의 자살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배웠던 상생(相生)과 배려(配慮)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연말 추위가 기승(氣勝)을 부릴수록 더욱더 그리워진다.

    이덕진(창원전문대 복지학부 장례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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