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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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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지치기- 조은길(시인)

  • 기사입력 : 2010-1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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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들이 겨울나기를 위해 잎사귀를 다 떨어내는 이즈음이면 정원수나 가로수들의 가지치기가 시작된다.

    지난 여름 키가 너무 많이 자라거나 몸집이 불어나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가리거나 원하는 모양이나 높이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될 때 나무들은 가차 없이 잘린다. 잘려서, 지난 일 년 동안 피땀 흘려 이루어놓은 업적과도 같은 나뭇가지들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한마디 불평 불만도 없이 꿋꿋이 삭풍한설을 견뎌내고 봄이 오면 어김없이 푸른 싹을 틔워내는 나무들은 얼마나 든든하고 사랑스러운가!

    그런가 하면 등산을 하러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무덤을 경호하듯 에워싼 잘 자란 소나무들을 무덤의 햇빛을 가린다는 이유로 나무의 목구멍 같은 밑둥치 부분을 예리하게 도려낸 것을 볼 때가 있다. 갑자기 숨통이 막혀버린 소나무들이 눈물 같은 진액을 상처 부위에 잔뜩 머금은 채 시커멓게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섬뜩한 살기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이 나무를 이렇게 죽게 한 사람의 앞날이 심히 걱정될 지경이다. 이런 생각은 온몸이 철사 줄에 꽁꽁 묶여 있는 분재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식물들도 음악을 들려준다든가 칭찬을 많이 해주면 그렇지 않은 식물보다 훨씬 잘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는다는 연구결과에 반신반의했는데 식물들을 가까이 만나 그들의 예민함과 섬세한 감성과 교감하고부터 그 연구결과에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졌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필요에 의해 나무를 베어야 할 때는 베어낼 나무를 빙빙 돌며 나무와 나무를 준 조물주에게 이해를 구하는 의식을 치른 후에야 베어 온다고 한다. 또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반드시 또 다른 나무를 심어서 자연 상태를 최대한 보존하려 노력한다고 하니, 오! 누가 그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무지한 원시인이라 손가락질하겠는가?

    생각하면 우리 조상들도 나무 하나 돌덩이 하나에도 신을 느끼고 경외시하는 토테미즘 의식이 생활 깊숙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집안에 큰일을 앞두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마을의 당산나무나 큰 바위 앞에 정화수 떠 놓고 무릎 꿇고 비손하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들을 위해 뜨거운 물 한 바가지도 함부로 쏟아버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어떤가! 집에 벌레 한 마리라도 보일라치면 큰일이나 난 것처럼 온갖 선전으로 치장된 독한 약을 뿌려대고, 그것도 모자라 벌레박멸업체까지 불러서 앞으로 몇 년 동안 개미 한 마리도 얼씬 못하게 해주겠다는 증서를 거금(?)을 지불하고 받아내지 않는가!

    거창하게 먹이사슬이니 공생상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개미 한 마리 얼씬 못하게 화학 처리된 곳이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 어찌 이롭기만 하겠는가? 생각하면 이것만큼 비위생적이고 비자연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일본의 한 생태학자가 제초제나 살충제의 사용으로 멸종되어 버린 생물체를 복원하기 위해 원시 형태의 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했다. 실험에 들어간 지 5년을 기다린 후에야 멸종되었던 생물체를 복원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한 종(種)의 생물체의 사라짐은 먹이사슬의 연결 고리의 단절을 의미하고 그 단절은 생태 환경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결국엔 지구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고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었다.

    세계를 관장하는 조물주가 있다면, 편리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늪에 빠져 자연 생태계를 무참하게 파괴하는 화학약품과 기계기술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현대인이야말로 세계 밖으로 과감하게 가지치기해버려야 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광우병 조류독감 구제역 신종풀루 슈퍼박테리아 기상이변 등 인간의 방어능력을 벗어나는 살상인자들이 활개치고 있는 오늘, 이 세계가 무섭다.

    조은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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