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6일 (수)
전체메뉴

[작가칼럼] 산을 제대로 오르는 법-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10-12-24 00:00:00
  •   
  • 산을 제대로 오르기 위해서는 산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좋다. 완만한 산과 거칠고 험악한 산, 잡풀이 우거진 산과 야생초가 자생하고 들다람쥐가 도토리를 굴리는 산은 분명 다르다.

    산을 알아보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다. 그저 가만히 산을 바라보면 된다.

    오랫동안 묵묵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산의 모습이 보인다.

    발가락부터 종아리를 거쳐 무릎관절을 타고 뻗은 허리를 볼 수 있고 등선을 따라 목덜미를 이어 푸른 하늘에 이마를 비비는 얼굴을 볼 수 있다.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수 있고 늘씬하거나 비만하고 둔탁할 수 있으니 취향에 따라 마음이 먼저 달려가 안기고 싶은 산을 선택하면 된다.

    산을 정하면 산을 오르는 길을 택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 반질반질하게 벗겨진 산길은 산의 상처다. 그 상처를 더 도지게 할 필요 없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산의 옆구리가 가려운 산길 하나 정해 살방살방 올라보는 일도 재미있다.

    새 길을 만들어 간다는 건 조금은 불안하고 두렵지만 흥미 또한 진지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랐다가 미끄러지듯 사람들 무리에 떠밀려 내려오는 것은 산을 오르는 재미를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다.

    산을 오르면 산의 숨소리를 듣고 산과 얘기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산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은 산을 외롭게 하지 않는다.

    이성선 시인은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산 발가락에 달라붙은 소슬바람을 데리고 싸각싸각 낙엽 밟으며 오르는 산길은 가뿐하고도 즐겁다.

    산 노루나 고라니가 몸 눕혀 잠 잔 탓에 포근하게 모로 누운 마른 풀 숲에 내려와 앉는 햇살은 눈부시고 떡갈나무 가지에 앉아 물똥을 싸며 우는 산새소리는 정겹다. 제살 파먹는 딱따구리 나무라지 않고 미련 버리듯 마른가지 스스로 떨어뜨리는 고목에 걸려 찢어진 하늘은 또한 얼마나 눈물겹게 아름다운가.

    산길을 걸으며 주위를 돌아보면 산에 세 들어 사는 반가운 얼굴들도 만날 수 있다.

    물쇠뜨기, 쥐털이풀, 박주가리, 난장이버들, 콩버들, 노루오줌, 각시둥굴레, 죽대아재비, 두루미꽃들에게 눈인사 건네고 팽이눈에게도 손길 뻗어 보자.

    산허리 중턱에 올라 숨이 차고 초입부터 따라붙은 소슬바람도 근육이 붙어 시퍼렇게 핏줄을 드러내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의 속살에 잠시 몸을 눕혀보는 것도 좋다. 제법 따스한 산의 체온이 전해지며 산의 숨소리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궁이 살아 꿈틀거리는 흙냄새에 온 몸을 맡겨 보면 마른 가슴속 축축이 물기 배어들며 새싹 하나 돋아날 듯 비릿한 생산의 힘이 발꿈치를 쳐드는 듯하다. 산의 정기를 가득 받기 때문이다. 산허리 지나고 목줄기에 이르러 갈증 날쯤이면 산은 미리 제 살 상처 내어 샘물 채워둔다.

    한바가지 퍼 올려 하늘까지 담아 마셔 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간 샘물은 메말라 있던 내 영혼의 뿌리까지 적셔 버린다는 것을. 유독 산을 오르며 느낀 갈증만이 아닌 갈증까지 고스란히 해갈되는 듯한 희망이 폐부를 타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기운으로 벅차오른다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듯 그리운 마음으로 정상에 올라 보면 그 기분은 절정에 이른다. 파란 하늘에 이마를 비비는 그 얼굴을 가만히 만져 보면 근육질의 바람처럼 심장이 요동친다. 산을 제대로 오르는 방법은 산과 한통속이 되어 보는 것이다. 산과 팔을 걸고 걸으며 연애하는 일은 짜릿하도록 즐겁고도 행복하다.

    산을 빨리 오르내리는 사람은 산을 외롭게 하는 것이다.

    김시탁(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