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동그라미- 이대흠

  • 기사입력 : 2010-12-30 00:00:00
  •   

  •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순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이대흠, ‘동그라미’ 전문(시집 ‘물 속의 불’, 천년의 시작 2007)

    ☞ 어머니는 말만 둥근 게 아니고요, 자식을 품은 마음과 보듬는 몸이 다 둥글다는 걸 알게 합니다. 둥근 품에서 나오는 둥근 먹이를 먹고 자란 자식들도 마음과 몸이 둥글 거라는 걸 알게 합니다. 더불어 형제와 이웃의 마음도 둥글어서 세상을 다 한 덩어리로 굴러가게 하는 게 결국 어머니라는 걸 알게 합니다.

    어머니의 둥근 마음에서 나오는 둥근 말들이 세상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종내는 어머니의 허리마저 둥글어져 굴러가는 바퀴가 되어 저승까지 세상을 싣고 가겠지요. 어머니의 몸에서 생겨나 어머니의 마음과 말을 받은 우리도 그렇게 한 세상 구르다가 가게 되겠지요. 그래도 어머니는 한사코 오순도순 살라고 당부를 합니다. 어머니처럼 낮은 몸, 낮은 마음이라야 안전하게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걸 알게 합니다. 연말연시, 둥근 몸과 마음으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긍가요 안 긍가요? 어머니의 말을 한번 따라 해보는데요, 몸속이 덜컹거리고 마디마디 쑤시는 게 쉽지 않네요. -최석균(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