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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문학과 꼬리표- 강현순(수필가·경남문학 편집장)

  • 기사입력 : 2010-12-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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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록 책이, 문학이 푸대접 받는 인터넷 시대라지만 그래도 문학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자신의 나이는 잊은 채 책가방을 들고 문학강좌가 있는 곳을 기웃거리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들은 “그냥 문학적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어서” 혹은 “ 작가가 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시나 소설 수필 등의 형식을 빌려 독자의 정신세계에 침투되는 문학은, 인간의 영혼을 미화, 정화, 상승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때론 우리들 삶이 허위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정신적 방부제 역할을 하는가 하면 참다운 자유와 진리가 우리들 삶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외롭거나 쓸쓸할 때 한 편의 따뜻한 글을 읽노라면 마치 그 작가가 자신의 귓전에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정하게 속삭여주는 듯하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문학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성급하게 등단부터 서두르는 사람이 있다.

    ‘등단’이란 일종의 작가 자격증이다.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와 문예지 또는 작품집 발간으로 시인이 되고 소설가 수필가 아동문학가가 된다.

    지금 문학을 시작하는 문학지망생들에게 귀띔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절대로 등단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아직 덜 익은 열매 상태로 응모해 본들 될 리도 만무하지만 지도교수한테 떼를 써서 등단을 시켜달라고 하면 마지못해 문예지에 추천을 해주기도 하는데 문제는 작품 수준이다. 그 지도교수는 작품 수준과 맞는 곳에 추천을 해주기 마련이다. 처음엔 작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문학의 세계를 알게 되면서부터 후회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디로 통해서 등단했는가 하는 꼬리표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므로.

    작가가 되어 작품을 발표하면 학력은 안 쓰지만 등단지는 꼭 써야 하기 때문에 등단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문학모임에서 인사를 할 때면 어디 출신자인지 묻게 되고 그 등단지를 들으면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사람의 작품 수준을 지레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성급하게 등단할 생각은 결코 가져선 안 된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의 좋은 작품을 10편 정도 쟁여 놓다 보면 모르긴 해도 주위에서 빨리 등단하라고 재촉을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여야 한다. 그냥 작가가 아닌, 글 잘 쓰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이론 습득을 거쳐 폭넓게 읽고(多讀), 깊이 사유하고(多思), 끊임없이 습작(多作)하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 한 편의 글이라도 꼼꼼한 퇴고(글다듬기)의 과정을 거친다. 문맥은 정확한가, 내용의 모방은 없는가, 단락의 구분은 정확한가, 부자연스런 점은 없는가,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는 맞게 썼는가 등.

    또한 본인만 아는 어려운 어휘나 문장은 피하고 되도록 쉽고 설득력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전을 항상 가까이 두고 볼 것이며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독창성)가 있어야 한다.

    독자가 한 편의 글을 읽었을 때 밋밋하거나 싱겁다는 느낌이 들면 화가 난다. 시간만 허비했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읽었을 때 가벼운 떨림과 종소리 같은 여운이 있다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지망생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결코 등단작이 대표작이 되어서는 안 되며 허영심이나 명예심으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현순(수필가·경남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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