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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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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을 걷다 (1) 지리산 둘레길(上)

나, 걸어가리라 그곳에 길이 있기에
걷다 보면 산골 사람들의 삶을 만나고…

  • 기사입력 : 2011-01-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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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둘레길 탐방객이 산청군 수철리~함양군 동강리 구간의 시작점인 수철마을에서 고동재 구간을 걷고 있다./김승권기자/

    사람들이 길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세간의 시름과 고통을 비우려고 길을 걷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이들도 있다.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함께 길을 찾아 나선다. 그 ‘길’에 답이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답을 찾고 싶다. 사람들이 왜 길을 찾아 걷는지. 길의 매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다.

    경남신문도 길을 걷기로 했다. 경남의 길이다. 유명세를 겪고 있는 경남의 길도. 익숙하기에 누구나 관심을 주지 않았던 우리 주변에 있는 경남의 숨은 길도 모두 걸어보기로 했다.

    어느 길이든 절대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2011년 경남신문과 함께 걷는 길, 그 길의 매력을 찾아 독자들께 전해드리고자 한다.

    이번 기획의 가장 첫걸음은 지리산에서 떼기로 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3박4일에 걸쳐 산청의 수철마을에서부터 전북 남원의 주천마을까지 5개 구간, 약 70㎞ 거리를 직접 걸었다.

    탐방객이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고동재 구간을 걷고 있다.

    ◆수철(산청군 금서면 수철리)~동강(함양군 휴천면 동강리)11.9㎞·약 4시간

    수철마을에서 동강마을 구간은 12㎞ 거리이다. 행정구역으로 보자면 수철이 위치한 산청군에서 동강의 함양군을 넘어 가게 되는 경로다.

    수철마을회관에서 시작된 첫걸음은 시원하고 경쾌하다. 지리산을 따라 내려왔을 작은 계곡의 물줄기 소리와 함께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어서이다. 마을회관 앞의 작은 계곡에 놓인 다리가 동강마을로 가는 입구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구간 구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철~동강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쉽지 않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잘 닦여진 신작로를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고동을 닮아 지어졌다는 ‘고동재’까지 이 오르막 신작로가 줄곧 이어진다. 물론 지리산을 직접 오르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곳이 지리산 둘레가 맞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가파르다.

    둘레길 표지판을 따라 잘 닦여진 신작로를 한 시간쯤 걸었을까. 산길이 그리워질 때쯤 숲속 길이 시작되는 고동재를 만나게 된다.

    지리산 둘레길이라 해서 숲속을 헤집고 다닐 것을 상상한 둘레꾼들이 반가워할 구간이다. 5개 구간의 둘레길에서 흔치 않은 산속 길이 이어진다.

    탐방객이 낙엽으로 뒤덮인 산청 고동재 구간을 걷고 있다.

    고동재에서 30분쯤 숲을 걸으면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에 이르게 된다. 산불감시초소다. 산불을 감시하기 위해 사방이 모두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려다 보니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탁 트인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왼쪽으로 산청 읍내 전체가 펼쳐진다. 오른쪽으론 지리산의 동북부 능선들이 그림처럼 이어져 있다. 능선을 따라 조금 더 몸을 돌리면 함양인 방곡마을, 동강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천왕봉, 중봉까지 모두 보인다. 산청과 함양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다”며 산불감시요원 이춘생(64)씨가 이곳의 전망을 자랑했다.

    180m 고지인 수철마을에서부터 약 640m의 산불감시초소까지 오는 동안 흘렸던 땀방울을 시원한 바람에 식히기에 딱 좋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산길을 내려오면 평탄한 산책로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방곡마을까지의 길이 재미있다. 편안한 산책로를 한 10여 분 심심하게 걸으면, 작은 계곡 물줄기와 함께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또 10여 분 걸으면 돌계단길로 연결되고 다시 오솔길이 펼쳐진다. 그 사이 바위를 타고 내리는 계곡의 물줄기는 넓어지고, 걷는 이들에게 둘레길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탐방객이 산불감시초소에서 방곡마을 구간 중 계곡에 놓인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넓어진 계곡은 물이 맑고 투명해 잠시 땀을 닦기에도 좋다. 방곡마을을 향해 계곡길을 조금만 더 따라 가면, 20여m 높이의 상사폭포에 떨어지는 시원한 낙수 소리가 지나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방곡마을까지. 걷는 이들에게 참 많은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해 심심치 않은 길이다.

    방곡마을에서 동강마을까지는 함양서 남원까지 이어지는 엄천강 줄기를 따라 걷는 길이다.

    방곡마을서 표지판을 따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길을 1시간가량 걸으면 구간 도착지점인 동강마을이 나온다.

    딱딱한 도로를 걸어야 하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길이 이어지지만 탁 트인 엄천강 줄기와 함께 걸을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엄천강을 끼고 있는 동강마을의 앞과 뒤에는 강과 산이 흐르는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동강(함양군 휴천면 동강리)~금계(함양군 마천면 금계리)11㎞·약 4시간

    동강에서 금계까지 이어지는 구간 약 11㎞는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엄천강 줄기와 함께한다. 이 구간에 자리 잡은 6개 마을은 모두 지리산 자락 깊숙이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산골 마을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구간이다.

    이 구간은 재미가 없다. 목적지인 금계까지 줄곧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나마 엄천강변이 구간이 끝나는 금계까지 줄곧 함께한다는 점이 한 가지 위안거리다.

    동강에서 출발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운서마을이다. 조용한 시골마을이었을 이곳은 최근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둘레길이 유명세를 타면서 마을마다 펜션을 짓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뚝딱거리는 소리를 지나 마을을 빠져 나온 뒤 엄천강변을 따라 1시간쯤 걸으면 세동마을(송전마을)이 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전형적인 지리산 산골마을인 세동마을은 약 5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종이를 생산했던 곳이다. 종이 재료인 닥나무가 지천에 깔려 있어서였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지금은 종이 생산을 하지 않는다. 지리산에 의지해 살아가던 주민들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약 30여 가구 주민들 중 상당수가 살던 집을 조금씩 개조해 민박집을 운영하게 됐다. 둘레꾼들은 걷느라 노곤해진 몸을 누일 수 있는 따뜻한 온돌방 외에도 한 끼 5000원에 산골 주민들의 식사를 민박집에서 나눌 수 있다.

    일찍 해가 떨어지는 산골 마을이어서 도시보다 일찍 밤이 시작되는 데도 늦은 시간 찾아 온 객(客)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 줄 만큼 주민들은 정감이 넘친다.

    세동마을을 떠나면 또 한 가지 볼거리가 있다. 소나무 쉼터로 이름 붙여진 자연이 만든 휴식터이다.

    함양군 휴천면 동강~마천면 금계 구간 중 세동마을 인근의 400년 된 소나무와 너른바위가 있는 소나무 쉼터.

    세동마을서 조금만 오르막을 오르면 열 사람이 넓게 둘러앉아도 너끈할 너른 바위 한편에 400년 된 소나무가 떡하니 자리잡아 그늘을 만들고 있다. 널리 엄천강을 내려다보는 이곳은 옛 선인들이 장기를 두었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바위에 올라 엄천강변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잠시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간은 참 아쉽다. 당초 둘레길은 소나무 쉼터에서 벽송사까지 산길을 따라 코스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단체이용객이 늘면서 무분별하게 농작물을 채취하고, 주변을 훼손시키는 등 주민들 피해가 생겨 ‘폐쇄’되고 말았다.

    동강~금계 구간 유일한 숲길이 폐쇄되자 결국 세동마을서 금계마을까지는 콘크리트 임도와 대형버스와 트럭이 지나다니는 위험한 국도를 따라 금계로 향해야 한다. 간섭하고, 소유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가장 재미없는 둘레길을 만들고 말았다. 그렇기에 누구 한 명 ‘재미없고, 위험하다’는 툴툴거림을 쉽게 던지기가 어렵다.

    ☞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를 연결하는 장거리 도보길이다. 지리산 전체를 이을 경우 3개 도(경남, 전북, 전남), 5개 시군(산청, 함양, 하동, 구례, 남원)이 연결된다. 16개 읍면에 80여 개 마을이 걸쳐 있는 길이다. 총 길이 300㎞에 달한다.

    2007년 1월 설립된 (사)숲길에서 조사와 정비를 통해 지리산 주변의 예실,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 마을길 등을 연결해 도보 여행코스를 만들고 있다.

    현재는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과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14km의 운봉-주천 구간을 비롯해, 운봉-인월, 인월-금계, 금계-동강, 동강-수철 등의 다섯 구간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70㎞. 지금까지 조성된 지리산 둘레길이다. 둘레길은 지난 12월 27일부터 오는 2월 28일까지 정비기간으로 이용이 제한된다.

    ★ 길에서 만난 사람- 이춘생 산불감시요원

    “왼쪽은 수철마을…오른쪽은 동강마을…”

    설명하기 바쁜 ‘붉은 옷 둘레길 해설가’

    수철-동강 구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산불감시초소. 이곳에 오르면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초소의 산불감시요원이자 수철마을 주민인 이춘생(65)씨이다.

    이씨는 지난 10년간 산불감시요원으로 자신의 터전인 지리산을 지켜왔다. 11월부터 봄이 올 때까지 지리산을 지키는 그에게 최근 또 다른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둘레길 해설가’이다. 초소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가 워낙 좋다 보니 둘레꾼들은 이곳에서 꼭 한 번은 쉬어가게 되는데, 누가 시킨 것이 아닌데도 이곳을 지키는 그가 자연스럽게 ‘둘레길 해설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왼쪽으로 보이는 붉은 지붕 있는 곳이 수철마을이고, 오른쪽으로는 동강마을까지 모두 보이죠. 날씨가 조금만 더 좋으면 천왕봉에 쌓인 하얀 눈과 중봉을 볼 텐데…”라며 설명이 바빠진다.

    행여나 둘레길을 찾은 사람들이 무엇 하나 눈에 담지 못하고 가는 게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엿보인다.

    혹 수철~동강 코스의 산불감시초소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산불감시요원을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알지 못하던 둘레길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뿐 아니라 덤으로 산청에 자리한 왕산의 유래까지 전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이헌장기자 lovely@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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