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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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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을 걷다 (2) 지리산 둘레길(中) 금계~인월 구간

오전엔 경상도 함양 오후엔 전라도 남원
숲길 돌아서면 웅장한 천왕봉이 한눈에…

  • 기사입력 : 2011-0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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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둘레길 탐방객이 함양군과 전북 남원시의 경계인 등구재를 지나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로 가는 솔밭 길을 걷고 있다./김승권기자/

    경상도를 넘어 전라도까지 연결된 구간이다.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에서 전북 남원시 인월면까지 이어진다. 약 20㎞로 느긋한 걸음으로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한다.

    금계에서 인월은 조성된 5개 둘레길 구간 중 가장 길다. 길게 이어진 구간도 인상적이지만, 경상도에서 전라도를 걸어서 넘어간다는 게 흥미롭다. 이 구간을 걷는 동안 오전에는 경상도 사투리를, 오후에는 전라도 사투리를 듣는 것도 이곳의 색다른 재미다.

    이 구간은 큼직한 마을들이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어 산골 마을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적당히 산을 오르고, 제방, 농로, 임도 등이 전 구간에 고루 퍼져 있어 심심하지가 않다.

    출발은 금계마을에서 시작했다. 금계마을은 지리산 칠선계곡을 가까이한 곳이다. 등산객들의 왕래가 잦았던 마을이었기 때문인지 앞서 지났던, 산중 마을에 비해서는 꽤 규모가 큰 느낌이다. 마을 곳곳에는 민박, 펜션을 홍보하는 간판들이 있어 이 모습만 보고도 마을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금계마을도 서서히 민박과 펜션 촌으로 변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금계마을을 지나 창원마을로 향한다. 창원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금계마을 뒤편 언덕을 올라야 한다. 이곳이 주는 의외의 볼거리가 발길을 붙잡는다.

    금계마을 뒤편 언덕에서 지리산 명소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서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무에게나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천왕봉이다. 천왕봉의 웅장함에 잠시 취해 본다. 천왕봉을 따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한국 3대 계곡 중 하나인 칠선계곡의 시작 지점과 그곳에 자리 잡은 의총, 의탄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천왕봉의 장엄함을 뒤로한 채 둘레길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1시간쯤 걸었을까. 창원마을에 도착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향하는 진행 과정에서 창원마을은 경상도의 가장 마지막 마을이 된다.

    지리산 둘레길 탐방객들이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제석봉이 보이는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구간을 걷고 있다.

    함양군 마천면 창원농장 쉼터에 탐방객들이 적은 소망 쪽지가 붙여져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넉넉한 곳간 마을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부유하진 않지만,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마을 입구의 다랭이논과 집집마다 서있는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옛 부자마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은 대부분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마을이 형성돼 있다. 이곳 창원마을도 전형적인 산골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을 지나기 위해선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창원마을 곳곳에는 산골 마을의 이색 겨울 풍경을 맛볼 수 있다. 한겨울 써야 할 땔감 장작으로 빼곡하게 담을 쌓아놓은 집들이 마을 골목을 따라 줄지어 있어 그 모습이 이채롭다. 지리산 자락에서 살아가는 산골 마을 사람들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창원마을을 지나면 등구재를 향하게 된다. 창원마을부터 등구재까지 약 30여분 이상 줄곧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지나야 한다.

    해발 650m의 등구재는 거북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거슬러 등구재에 올라서면, 그곳이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구분하는 경계지점이다. 경상남도 산청부터 함양을 지나 드디어 전라북도 남원까지 걸어서 도착한 것이다. 등구재에 서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니 괜한 뿌듯함과 조금의 감격스러움이 가슴 한쪽을 살짝 간질인다.

    등구재를 지나 상황마을을 향해 10여 분 산길을 내려오면, 산비탈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다랭이논이 한눈에 들어온다. 논 하나하나에 층층이 돌담으로 경계를 만들어 놓은, 마을주민들의 정성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둘레길의 유명세가 만들어 낸 모습이 있다. 저마다 특성을 가진 간이식당 격의 쉼터들이 등구재를 내려와 약 1㎞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친 여행자의 심신을 달래기에 제격인 쉼터는 인간이 만든 둘레길의 또다른 볼거리가 됐다. 이곳 쉼터에서는 ‘구절초 식혜’, ‘고구마 김치국밥’ 등 지역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논뚝길 쉼터를 운영하는 윤용철(49)씨는 “주로 둘레길 인근마을 주민들이 쉼터를 운영한다. 그 마을에서 먹던 전통 음식을 쉼터에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하면 부족함보다 못한 법이다. 둘레길 곳곳에 새로운 쉼터들이 자리잡을 준비를 하고 있어 자칫 쉼터 난립으로 둘레길 주변 환경이 훼손될 우려도 낳고 있다.

    두 시간여 번갈아 나타나는 숲길과 임도를 따라 걸으면 매동마을에 도착한다. 매화꽃을 닮아 ‘매동’이란 이름을 갖게 된 매동마을은 울창한 송림이 마을을 둘러싼 명당이다. 우거진 소나무를 뒤로 두르고, 그 앞으로는 만수천을 놓고 있어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남원 매동마을 노인들이 나무 지팡이를 짚고 둘레길을 산책하고 있다.

    매동마을 앞에 놓인 만수천을 따라 마을들이 줄줄이 자리를 잡고 있다. 모두 뒤에는 지리산 자락을, 앞으로는 천을 낀 배산임수 지형이다. 워낙 지형조건이 좋은 탓에 산골 마을인데도 마을 규모가 크고, 주민들의 삶의 여건이 좋아 보인다.

    매동마을을 지나 만수천 위에 놓인 장항교를 건너면 장항마을에 도착한다. 장항마을은 수려한 풍모의 소나무 당산이 웅장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지금도 매년 당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낼 만큼, 전통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버스정류장과 큰 도로가 있는 장항마을은 인근의 인월읍, 함양 등으로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이다.

    장항마을서 약 1시간 배너미재를 넘으면 이번 구간의 종착지인 인월면의 길목에 있는 중군마을에 이르게 된다. 지리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덕두봉을 뒤로하고, 남강 상류인 만수천을 앞에 둔 중군마을은 본업인 농사 외에도 잣과 송이 채취로 부수입을 올리는 부촌이다.

    남원 중군마을의 한 민박집 담장에 그려진 벽화.

    마을앞에 흐르는 하천을 건너 중군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벽화가 눈에 띈다. 다양한 꽃 그림과 둘레길 코스를 그려 놓은 벽화가 여행자들에게 포근함을 전한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참 살기 좋은 곳’이란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곳에서 만난 마을주민 김용협(55)씨는 “우리 마을은 빈집이 없당께~”라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마을 자랑에 목소리를 한껏 돋운다.

    그는 “예부터 중군마을은 물 좋고, 산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앞에 흐르는 하천은 1급수로 다양한 어종의 민물고기가 살고 있다”면서 “50호 이상 집들이 있는데, 다른 마을과 달리 모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낯선 여행자에게 마을 이름을 가진 내력도 전해줬다. 그는 “고려말 지금으로 말하면 중대본부, 당시 불리던 중군이 있었던 곳이라 중군마을이 됐다”고 했다.

    중군마을을 지나 하천 따라 이어진 제방길을 20여 분 정도 성큼성큼 걸으면 종착지인 인월면에 도착한다.

    인월면은 지금까지 조성된 5개 코스의 중심지로 보면 된다. 민박집과 모텔 등 숙소는 물론 약국, 식당, 대형마트, 시외버스터미널 등이 있어 산골 마을을 지나는 동안 필요했던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곳이다.

    또 이곳은 둘레길 여행자들이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지리산길 안내센터가 있다. 추운 겨울에는 안내센터에서 언 몸을 녹이며 센터 직원들과 둘레길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자 향후 일정에 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리산안내센터는 한창 겨울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방문객이 적은 겨울철을 이용해 둘레길 정비를 펼치고 있어서이다.

    지리산길 안내센터 측은 “12월 27일부터 2월 말까지 우리 자체적으로 둘레길 폐쇄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이정표 말뚝과 길을 정비한다”면서 “하지만 길을 막을 수는 없어 강제 폐쇄를 할 수는 없다. 겨울철 둘레길에 위험성도 있는 만큼 이 기간만큼은 둘레길 이용을 자제해 주시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 길에서 맛본 음식- 구절초식혜·고구마김치국밥

    전북 상황마을 주민들이 예부터 먹던 음식

    시원함·특이함에 끌려 둘레꾼 별미로 인기

    논뚝길 쉼터에서 맛본 구절초 식혜(사진)는 전북 남원시 인월면 상황마을에서 예부터 전해내려온 음식이다. 국화과 식물의 약초로 쓰이는 구절초로 만든 식혜는 흔히 생각하는 쌀로 만든 식혜와는 겉보기도 맛도 다르다.

    탁한 모습과 한 모금 입에 넣었을 때 먼저 느껴지는 시큼함이 마신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지만, 이내 시원하면서도 개운함이 입안에 퍼진다.

    길을 걸으며 부족했던 수분을 채우고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달달한 일반 식혜보다는 더 효과적이란 느낌을 갖게 한다.

    상황마을에서 먹던 고구마김치국밥도 이색적이다. 옛날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 부족한 쌀을 대체하기 위해 고구마를 넣어 끓여 먹던 것이 지금은 둘레길 여행자들의 별미가 됐다.

    논뚝길 쉼터의 윤용철(49)씨는 “상황마을에서만 먹던 구절초 식혜와 고구마김치국밥이 인기인데, 특이함에 이끌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면서 “마을 주민들만 즐겨 먹던 음식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글=이헌장기자 lovely@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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