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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四柱이야기] 울지마 톤즈

  • 기사입력 : 2011-01-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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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2년 9월 19일생, 2010년 1월 14일 사망.

    태어난 사주를 보고 사망일과의 관련성을 찾아봐도 뚜렷한 이유를 찾아볼 수가 없다. 대운(大運)을 살펴보니 충(沖)하는 기운이 강하고, 재물운에 들어왔다. 능력 발휘의 기운은 강하지만 돈 버는 것 하고는 상관없는 사람이, 운에서 재물을 만나는 것은 다른 암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갈 때가 된 것이다.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부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 선 소년들은 환하게 웃고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났다. 마흔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다.

    며칠 전 TV에서 방영했던 영상을 보고 더 많은 내용이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조조시간 하루에 한 번밖에 상영하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운동도 포기하고 서둘렀다.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간 영화관은 소문과 다르게 텅 비어 있었다. 그 넓은 좌석에 은은히 비추는 조명과 허한 공기만 가득할 뿐이다. 너무나 슬픈 그 영화는 가수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과 함께 그렇게 쓸쓸히 시작됐다.

    “‘없는 것이 없는’ 한국과는 반대로 이곳은 말 그대로 ‘있는 것이 없는’ 곳이다. 옷과 신발이 부족해 벌거벗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많고 부시 마을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 생전 처음 보는 사탕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껍질도 벗기지 않고 입속에 넣어 버리는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화장실은 물론 화장지도 없다. 넓은 들판에 나가 뒤를 해결하고 마무리를 한다. 팬티라는 것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자신이 쓴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의 본문에 나오는 말처럼, 의사로서 ‘있는 것이 없는’ 오지에 가서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이태석 신부의 삶을 조명한 ‘울지마 톤즈’는 인간의 한계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게 했다.

    내 눈에 비친 것은 신부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무한봉사를 실행한 것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어디까지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했다.

    의사이면서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의사니까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집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집열판을 제작해서 태양열로 전기가 들어오게 하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음악가로서의 능력도 발휘한다.

    신(神)은 재능 많은 한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해서 꼭 필요한 곳에 잠시 머물게 했다 데려간 것이다. 그가 떠난 후 톤즈의 생활은 예전으로 돌아갔지만 영화가 만들어지고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곳에 가겠다는 의사와 간호사가 늘어나고 물질적인 후원도 많아졌다고 했다. 신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그 암시는 사주에 숨겨두었다.

    (역학 연구가)

    정연태이름연구소(www.jna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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