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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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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목숨값을 베고 자다- 이영득(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1-01-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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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을 좋아하는 사람 몇이 편백 숲에 갔다. 쭉쭉 뻗은 편백나무 길을 걷고, 열매를 주워 베개를 만들기로 했다. 열매 크기가 베갯속으로 쓰기에 알맞다. 향기도 좋고, 무엇보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와서 아토피 환자나 암환자한테 좋다 한다. 건강한 사람한테야 말해 무엇 할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시간과 정성을 보태야 하는 일은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지난 연말에 계기가 생겼다. 꽃모임 회원 몇이 편백 숲에 갔다가 편백 베개를 파는 걸 봤다. 코를 갖다 대니 냄새가 훅 들어왔다. 향긋했다.

    ‘음! 집에서도 이런 냄새 맡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며 값을 보니 하나에 6만원 했다. 그 순간 알레르기가 있는 딸이 생각났다.

    ‘우리 딸 알레르기가 있는데, 살까 말까? 남편도 나이 드니 건강에 빨간 신호가 들어오던데, 사 줄까? 짐만 늘리는 게 아닐까? 아 참, 이런 말이 있지. 여행 갈까 말까 망설이면 떠나고, 물건 살까 말까 망설이면 사지 마라.’

    결국 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속이 궁금해 열어 보았다. 속은 잎과 잔가지를 잘라 넣어 놓았다. 깔끔한 느낌이 덜하고, 잎이 부서지면 가루가 생길 것 같았다.

    베개를 슬그머니 놓고 나와 편백 숲으로 들어섰다. 쭉쭉 뻗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가던 꽃님 하나가 이런다.

    “편백 열매로 베개 만들어 남편한테 선물하는 게 올 목표 가운데 하나였어요. 그런데 아직 못했어요.”

    “어잉! 올해도 며칠 안 남았구마. 이참에 목표 달성 하이소! 우리가 도와줄게요.”

    우린 어느새 다 같이 엎드려 편백 열매를 주워 주었다. 손이 시린 데도 마른 꽃봉오리 같기도 하고, 구슬 같기도 한 열매를 줍는데, 마치 보물을 줍는 것 같다. 손에 닿는 느낌이 좋다. 열매를 주울 때마다 코에 대고 킁킁댄다. 음, 향긋한 냄새!

    한 알 한 알 주워주다가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나도 남편 베개 하나 만들어 주고 싶다.”

    그 욕심 덕분에 모두 베개를 만들기로 했다. 숲에 엎드려 새가 모이 줍듯, 황금을 줍듯 그렇게 주웠다.

    “이거 베고 자면 날마다 숲에서 자는 것 같겠죠?”

    숲을 베고 자는 상상을 하자 가슴에 싹이 돋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 것도 만들고 싶었다. 이런저런 상상으로 어찌나 행복하고 감사하던지, 엉뚱하게도 이 순간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해 보고 싶었다. 값이 어마어마해서 도저히 계산을 못할 거라 여기며 일행들한테 물었다.

    “우리가 지금 이 숲에서 삼림욕을 하고, 맑은 공기 마시며 절로 운동을 하고, 식구들 위해서 열매를 줍고,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감동하고, 자연한테 또는 서로한테 끝없이 배우고, 맘 맞는 사람끼리 하하 호호 즐거운 이야기도 하고… 이걸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랬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한 사람이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야 목숨값이죠!”

    와! 그 짧은 순간 어쩌면 200% 공감할 수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게 바로 우문현답,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이 아닐까.

    정말 그랬다. 그 시간에 맘 맞는 사람들하고 숲에 있는 현실이 고맙고 감사했다. 베개 말을 꺼낸 사람도 고맙고, 말 꺼내자마자 즐기며 함께하는 사람들도 고마웠다. 숲이 되어 준 나무도 고맙고, 맑은 공기도 고맙고, 숲에 반응하는 몸도 고맙고, 고운 노래 불러주는 박새도 고맙고, 살아서 느낄 수 있다는 자체가 고맙다.

    대답을 듣고자 한 물음이 아니었는데, 뜻밖의 물음 덕분에 목숨값을 공짜로 베고 자게 생겼다.

    이영득(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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