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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기타 치는 노인처럼- 김승강(시인)

  • 기사입력 : 2011-0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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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늦게 기타를 배우게 되리라고는 기타를 배우기 전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기타가 내 품으로 들어왔고 나는 기타를 안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를 안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누군가가 기타로 바뀌었을 것이다.

    요즘도 간혹 등산을 하거나 산책을 하다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에서 색소폰을 불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본다. 처음에는 한적한 곳에서 색소폰을 배워야 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이제 와서 저렇게 배워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그랬던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은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한때 나는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린 적이 있다. 머리를 빡빡 밀고 나타났더니 아내가 기겁을 했다. 아내를 놀래주려고도 한 일이어서 속으로 고소해했다. 그런데 아내의 그다음 말을 듣고는 실망하고 말았다. 내 머리통이 너무 못생겼다는 것이었다.

    얼마 안 남은 머리카락이 간신히 다시 길자 이번에는 수염을 길러 사람들의 눈길을 아래로 돌려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염도 아무나 기르는 게 아니었다. 전혀 폼이 나지 않았다. 그 뒤로 대머리를 인정하기로 했다.

    한때 개량한복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도 개량한복이 잘 어울리는 사람을 보고 나도 개량한복을 입으면 사람이 좀 달라 보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좀 촌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에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며칠 전 소설가 천명관의 소설을 읽었는데, 그는 개량한복을 입고 삼보일배를 하는 풍경이 그가 본 가장 기이하고 우스꽝스런 퍼포먼스였다고 썼다. 그때 내 생각이 천명관의 생각과 같았던 모양이다.

    사실은 내가 기타를 배우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유튜브로 본 UCC 동영상 때문이다. 우연히 본 동영상에서는 나이 많고 초췌한 노인과 젊고 예쁜 여자가 같은 무대에서 베사메무초를 연주했다. 노인의 기타 실력은 변변찮았다. 그에 반해 젊은 여인의 바이올린 실력은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나는 노인에게 진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나는 그 동영상을 잘 만든 아름다운 동영상으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그 동영상을 만든 작가의 의도는 그러한 대비가 아니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노인의 기타 실력이 빼어났더라면, 기타 치는 사람이 노인이 아니고 젊은 청년이었더라면 크게 감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젊은 여인과 노인의 대비는 나에게 그 노인의 젊은 날을 생각하게 했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이 있듯이 그 노인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웠을 젊은 날이.

    며칠 전에 신문을 보니까 베트남에 사는 한인 소녀가 유튜브를 통해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워 카네기홀에 서게 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유튜브로 기타 연주 동영상을 보고 기타를 배우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기사였다. 그 외에도 UCC 동영상으로 악기를 배워 유명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그들의 스승은 UCC 동영상인 것이다.

    스승이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시를 쓰는 나는 특별히 누구에게 시를 배운 적이 없다. 시는 배워서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한몫했을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쓰면 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제 악기를 그렇게 배우고 있다.

    나는 등단을 늦게 했다. 그 이유가 내가 써놓고도 내 손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 시를 완성하기도 전에 찢어버리고 찢어버리고 해서 그렇다고 하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컴퓨터 자판으로 내 생각을 온전히 옮길 수 있었고 그래서 등단하게 되었노라고 말하면 더 크게 웃을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내 스승인 셈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다. 동영상을 스승으로 삼고 새삼스럽게 기타를 배우는 나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김승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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