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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생소한 풍경 앞에서의 머뭇거림- 최영욱(시인·평사리문학관장)

  • 기사입력 : 2011-02-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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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란스럽다. 너무 소란스러워서 송신해 죽겠다. 지난 입춘에 힘입어 다소 풀리는 듯하던 날씨는 동해안에 폭탄 같은 눈을 퍼붓더니, 그 기세를 몰아 창원과 밀양 등 인근의 부산과 울산까지 하얀 아우성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를 엎친 데 덮친다 했던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기력마저 쇠잔한 이들이 넋을 놓을 태세다. 농민, 공무원들은 구제역으로 내몰리고, 도시의 빈민들은 가파른 물가상승과 고유가와 재개발로,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들은 크레인으로 혹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들도 생소한 풍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어제는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지난해 하동 평사리의 정월 대보름날 행사 준비는 예나 다름없이 거창했다. 지리산 기슭에서 베어낸 소나무며 대나무로 어느 곳보다 크고 거창한 달집이 세워졌다. 악양면 부녀회를 비롯한 청년회 회원들은 이 지역 주민과 소설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해 푸짐한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돼지가 15마리, 떡국과 과일, 그리고 푸짐한 막걸리까지. 그 한바탕 대보름 잔칫날, 떠오르는 달과 붉게 타오르는 달집을 향해 엎드리던 그 많던 비손들은 무엇을 빌었을까. 그 비손들의 염원 중에는 분명 대한민국의 안녕이 양념처럼 들어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평사리 들판은 허허해 쓸쓸하다. 아니 온 나라 안이 쓸쓸할 것이다. 지역마다 동네마다 저마다 경쟁하듯 더 크게, 더 풍요롭게를 외치며 달집을 지었을 것이며, 징과 북을 치고 상쇠는 꽹과리를 두들기며 판을 이끌었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 달집을 향해 소원을 빌던 그 예쁜 손들과 마음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폭설에 쓰러진 외양간을 다시 세우고, 눈으로 막혀버린 길을 뚫을 것이며,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다시 세우며 눈물을 훔치고 있을까. 혹은 혹한의 길바닥에서 구제역 방역에 내몰리고 있지는 않을까.

    구제역이 사람을 잡고 생활을 잡는 일상 속에서 얼마 전 필자가 아끼던 공무원 후배도 유명을 달리했다. 필자는 그 장례식장 귀퉁이에 앉아 아이들의 울음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이를 대놓고 비판하는 기사를 읽고, 빙그레 웃음만 짓는 방관자 혹은 비겁자의 자리에서 말이다.

    곧 우수(雨水)다. 또 경칩이 오겠지. 말 그대로 눈이 비로 바뀌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따뜻한 동풍이 불어올 것이다. 날이 풀리면 구제역이 소멸될 것이라는 소망이 팽배하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해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말일 것이다. 무기력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허나 그전에 우리의 임무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구제역과는 참으로 무관해 보이는 나라의 어른들이나 성직자들의 관심 같은, 즉 나라 안의 위급한 상황이나 혹은 중요한 사항들이 닥쳤을 때, 예전에는 그 어른들이나 성직자들이 나서서 ‘무슨무슨 조찬기도회’니, ‘무슨무슨 법회’니 대중없이 열더니, 300만 마리가 넘는 축생들이 살아서 땅에 묻히고, 또 그를 묻은 이들이 환청과 악몽에 시달리고, 그러다 죽고, 자식과 같던 소나 돼지들을 생매장해야만 했던 농민들을 위해서라도, 크게는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를 위해서라도 이 나라의 어른, 성직자들이 나서서 겸손한 자세로, 진정한 자세로, 육식에 대한 책무로서 그들을 위한 위로의 법회나 기도회, 진심이 담긴 따뜻한 한마디의 말이나 행동을 바란다는 것은, 정녕 허방을 짚는 말이고, 허옇게 눈이 덮인 산야에서의 길 찾기일까.

    어느 아침 신문의 사진 한 장, 온전하게 만들어진 눈사람에 입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길게 비뚤어져 있고, 눈은 브이 자로 넓게 째져 있었으며, 머리에는 돌 하나 얹혀 있었다. 이 눈사람의 입과 눈을 바로잡아 환하게 웃게 만들고, 머리 위에는 돌 대신 예쁜 모자를 씌워주는 것 또한, 그들의 몫 혹은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싶다. 오늘 이 시대의 생소한 풍경들 앞에서 너무 오래 머뭇거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봄이 코앞이다.

    최영욱(시인·평사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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