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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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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춘(殘春)- 박구경

  • 기사입력 : 2011-03-03 09: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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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새 내린 비는 이랑에 따스하게 스몄는가보다

    마주치는 곳마다 햇살 잘바닥거리더라니

    나라도 눈부시다

    어디서 들려오는 살육의 소식을 무시하고도

    밭둑마다 작은 기운의 풀들이 생업으로 근질거린다

    터지려는 꽃,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살아야 할 대부분이다

    -박구경 ‘잔춘(殘春)’ 전문(시집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2008)


    ☞ 봄에 몸이 마르는 슬픔을 ‘춘수(春瘦)’라고 한다. 사람들은 봄을 탄다고도 하는데, 박구경 시인은 해마다 ‘춘수(春瘦)’를 앓을 것 같은 사람이다. 스스로를 ‘야만스런 조선 년’이라 칭하지만 생명에 대한 경외의 마음은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이 테러와 살육의 시대, 불신과 맹목의 시대, 내 편과 네 편의 시대에 늦봄의 아지랑이와 노곤함을 세상과 연결하는 꽃들이, 풀들이, 봄비에 젖은 흙덩이와 가지들을 두드리며 올라오고 있다. 전쟁을 생중계하는 세상쯤이야 저 멀리 밀쳐두고 작은 생명들에 눈을 돌리는 시인의 시선이 살갑다.

    기차가 들어오지 않는 사천에서 오늘도 기차를 기다리는 시인. 감수성의 과잉도 없고, 난해의 골목을 기웃거리지도 않는 이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연민과 포용을 통해 생의 진실과 사랑을 풀어낸다.

    이월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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