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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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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마산 근주역~함안 파수역

경남의 길을 걷다 (9) 이야기가 있는 옛길 '자여도' (하)
선조들의 삶과 혼 담긴 정려각·순절비·서낭당…
곳곳서 만나는 유적은 길손 발걸음 멈추게 하고

  • 기사입력 : 2011-03-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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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사팀이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이수정을 둘러보고 있다. 이수정 안의 무진정은 조선 명종 때 무진(無盡) 조삼(趙參)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웠으며 매년 4월 초파일이면 낙화놀이가 펼쳐진다.
     
     
     
    답사팀이 걸은 근주역~파수역

    마티→ 중리→ 죽암마을 옛 관도발굴 현장→ 상고개→ 용담리 신주막→ 못안마을 →이리현(신당고개)→ 신산리→ 모곡리→ 입곡리 충신 안신갑 정려→ 할미당 고개(달현고개)→ 창선각→ 막돌탑→ 입암정 선돌→ 대밭고개 → 이즙 순절비→ 이씨 정려각과 왕버들 군락→ 도림서원 앞길→ 대산리→ 이수정→ 괴산리→ 함안읍성 북문→ 함안읍성 도착


    자여도 마지막 편은 마산 근주역(近珠驛)에서 함안 파수역(巴水驛)까지로 잡았다. 대략 20㎞에 이르는 거리다. 이번 답사에도 ‘자여도(한가람 刊)’ 저자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장이 안내를 맡았다.

    근주역이 있었던 곳은 마산 석전2동 뒤 구릉지로 짐작된다. 근방에 찰방선정비가 있고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근주는 옛 회원현의 다른 이름인 환주(還珠) 가까이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영남역지’에 근주역은 자여역 서쪽 30리 지점이고, 상등마 1필, 중등마 2필, 하등마 8필이 있었다고 한다.



    구릉에서 내려다본 근주역지.


    시내는 택시로 이동하고, 도보답사는 내서읍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시작했다. 이곳은 죽암선상지의 선단부와 광려천의 범람원이 만나는 이행대에 해당하는 곳으로, 2005년 공사 과정에서 고려~조선초기의 도로와 담장 등이 발굴되었다. 이 도로는 두척동과 중리 사이 마재고개를 넘어 광려천 유역을 통해 북쪽의 창녕과, 서쪽의 함안에 이를 수 있는 주요 교통로로 추정된다. 노면 너비가 7.2~8m다.

    마산대학쪽으로 조금만 가면 1억년 전 공룡발자국 화석이 나온다. 구마고속도로 확장공사를 하다 발견된 이 화석은 900㎡의 비탈진 암반면에 크고 작은 이구아나룡과에 속하는 공룡발자국 166개가 확인되었다. 안내판에 평행 또는 비스듬히 이동한 흔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훼손되어 육안으로 식별은 어렵다.

    함안으로 오가는 길은 지금의 1004번 지방도와 비슷한 선형을 따라 용담리를 거쳐 포덕산 서쪽 이리현(伊里峴·신당고개)를 넘는다. 용담마을회관 옆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고 가까이에 일제강점기에 세운 용담리청년회장이치윤돈풍수덕비가 있어 그 사이로 난 길이 옛길임을 일러준다. 신당고개로 이르는 옛길은 남해고속도로 동쪽의 산기슭에 붙은 곡벽을 따라 남아 있으며, 고개 못 미쳐 약 400년 된 또 다른 느티나무를 만난다. 둘레만도 장장 6m의 거목이다.


    고개를 넘어서면 함안 산인이다. 고개 동쪽 포덕산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포덕산성(飽德山城)이 있다. 해안에서 신당고개를 넘어 함안으로 이르는 길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산성의 축성기법이나 가야시대 토기편이 성내외에서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나 가야시대의 성으로 본다.

    산인공단을 지나 고속도로 밑 통로박스를 가로질러 모곡리 장내마을로 향한다. 이곳에는 널리 알려진 고려동 유적지가 있다. 모은(茅隱) 이오(李午)가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고려왕조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은거지 주위에 담을 쌓고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란 표비를 세워놓고 그 담장 안에서 전답을 개간하며 자급자족을 도모했다. 이오는 아들에게도 조선왕조에서 벼슬하지 말 것과 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했다. 그 후손들이 19대 600여 년에 걸쳐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경남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암초등학교에서 고속도로 통로박스를 지나면 입곡으로 드는 길목이다. 산비탈에는 충신 안신갑(安信甲)의 정려각이 있다.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 화살이 다 떨어지고 기운마저 쇠진하여 산청 객사 서쪽의 환아정(換鵝亭) 아래서 순절하였다. 답사팀은 모곡삼거리 식당에서 추어탕과 돌솥밥으로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린다.

    할미당골 달현고개를 넘어 입곡마을로 드는 길모퉁이에는 성산이공송덕비를 모신 창선각(昌善閣)과 삼우대유허비(三友臺遺墟碑)가 있고, 뒤 구릉에는 삼국시대 무덤들이 있다. 오른쪽에는 입곡저수지가 있는 군립공원이다. 송림 속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함안군 산인면 입곡마을 길가의 서낭당. 조산(造山) 또는 막돌탑이라고도 부른다.

    입곡마을 큰 길가에는 조산(造山) 또는 막돌탑이라 부르는 서낭당이 있고, 들녘 한가운데 선돌(立石)이 있다. 팽나무 한 그루와 선돌을 둘러싼 누석단이 있어 옛 길가에 두었던 이정표의 하나였다고 여겨진다.

    대밭골을 지나 대밭고개(竹峴)를 넘으면 함안면에 든다. 대밭고개는 함안의 형국이 비봉형(飛鳳形)이라 동헌 옆에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심고 이곳에 대밭을 조성하여 봉황을 머물게 하려는 의도로 조성한 비보림이다. 고갯마루를 넘자 이즙(李楫)의 순절비가 있다. 이즙은 정유재란 당시 함안군수 안옥과 함께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하여 창원에서 진주로 진격하던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절했다.

    답사팀이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입구에 있는 인천이씨 문중의 정려각과 보호수로 지정된 왕버들 옆을 걷고 있다./김승권기자/

    고개를 내려서면 인천이씨 문중의 정려각과 보호수로 지정된 왕버들이 나온다. 이곳에는 정려각 2, 하나의 비각에 모셔진 2기의 기념비와 그 바깥에 세운 비석 1기 등 5기의 기념물이 한곳에 모아져 있다.

    먼저 세워진 것은 가운데에 있는 이구삼(李垢森)의 정려로 1904년, 그 서쪽에 있는 함안조씨 정려는 그다음 해 세워졌다. 동쪽에 모신 이봉석(李奉錫)의 비석 중 동쪽의 혜율비는 1911년 대사동에서 세웠고, 서쪽의 불망비는 1912년 산내면에서 세웠다. 비각의 바깥에는 1925년 세운 담양 전씨 표창비 1기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곧장 들을 질러 함안읍성 동문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으나 답사팀은 도림마을에 있는 도림서원 남쪽으로 돌아서 걸었다. 지금의 산인면에서 함안면으로 드는 길은 대체로 지방도 1021번과 유사하다. 큰절마을(大寺谷)로도 불리는 대산리 절터에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는 3구의 불상과 만난다. 곳곳에 유적이 있어 길손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한다.

    드디어 괴산삼거리를 지나 이수정에 든다. 이수정 안의 무진정은 조선 명종 때 무진(無盡) 조삼(趙參)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 후손들이 세웠다. 매년 4월 초파일이면 이수정에서 낙화놀이가 펼쳐진다. 낙화놀이는 17세기 조선중엽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함안면민을 중심으로 낙화놀이보존회가 결성되어 지역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괴산리를 지나 함안면 소재지로 들어간다. 고인돌과 선돌을 살펴보고 함안읍성의 흔적을 더듬는다. 읍성은 비봉산(101.5m) 자락과 그 아래 들판에 걸쳐 쌓은 평산성식 읍성이다. 삼포왜변 직후에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1510년에 처음 쌓았고, 1555년에 고쳐 쌓을 때 북쪽을 넓혔다. 성은 거의 다 무너지고 헐렸지만, 동성벽과 남성벽이 민가의 담으로 이용되면서 남아 있다. 관아의 주춧돌과 선정비가 함성중학교 교정 한쪽에 모아져 있다. 함성중학교는 여자축구 스타 여민지의 모교이다.

    파수역이 있던 파수리 원촌마을.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고 답사팀은 함안면 장터에 들러 국밥을 시켜 먹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파수역은 함안면사무소에서 2㎞ 정도 떨어진 파수리 원촌마을로 추정된다. 원촌(院村)의 지명에서 알 수 있다. 원촌마을 앞의 논을 ‘마구덤’ 또는 ‘마위덤’으로 부르는데, 마위전(馬位田)은 역마를 기르기 위해 설정한 땅이다. 함주지에는 파수역에 대마 1, 중등마 2, 복마 9필이 있었다고 전한다.


    자여도 15개 역을 다 돌지 못하고 대표적인 역 6곳을 돌았다. 신작로가 생기면서 옛길이 끊기거나 멸실됐다. 그러나 우리의 옛길에는 이야기가 있다. 마을숲이 있고, 정려비가 있고, 서낭당이 있다. 조상들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지자체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복원할 수 있는 곳도 많다. 우선 안내판이나 이정표라도 설치했으면 좋겠다.


    ★ 마산 근주역과 함안 파수역 주변 옛길



    ◆창원읍성과 근주역 거쳐 칠원읍성 오가는 길

    창원읍성 출발 →창원읍성 서문 망미루 →적굴현 →박석골 →경상우도병마영성이던 합포성 →근주역이 있던 석전동 근주마을 →회산동 정자나무 →마티 들머리 →마티(두척고개) →호계리 →평성리 →예곡리 마을숲과 방축기념비 →작은 갈티와 그 아래의 혜적각 →용전리 석전마을 고인돌 →갈티 들머리 →갈티 →무기리 →구성리 →원구성 →칠원읍성 남문 →칠원읍성 도착



    ◆칠원읍성에서 창인역을 거쳐 함안 오가는 길

    칠원읍성 출발→ 읍성 서문→ 배나무고개→ 창인역이 있던 회산리 신산마을→ 회산리 고인돌→ 어령 들머리 →어령(어이현 또는 도적치)→ 운곡리→ 부봉리→ 내인리→ 송정리→ 검암리→ 대산리→ 산성 밑 이수정→ 괴산리 고인돌과 선돌→ 함안읍성 북문→ 함안읍성 도착



    ◆함안읍성에서 파수역과 춘곡역을 거쳐 진주 오가는 길

    함안읍성 서문 출발 →율현 들머리→ 율현→파수역이 있던 파수리 원촌→ 배달치→ 신암서원이 있던 신음리 신암마을→ 춘곡리 들머리의 숲들→ 춘곡리 마을숲→ 춘곡역이 있던 춘곡리 역말→ 윗 미드미고개→ 동촌리→ 덕촌리의 옛 사창과 외창 터→ 중암리→ 덕대리→ 덕대고개의 비석걸→ 하림리 들머리의 고바위 백세청풍 암각→ 원북리 서산서원→ 조종도여표비와 전의이씨여표비→ 채미정과 청풍대→ 어속현 들머리→ 어속현(어시기고개)→ 진주 경계 도착


    글=이학수기자 leehs@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답사 동행=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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