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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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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 꽃메아리- 김연희(시인)

  • 기사입력 : 2011-03-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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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양각색의 봄꽃을 한아름 안고 걸어오는 여인을 보았다.

    하아아…! 봄, 설레는 봄이 저만치서 걸어오누나! 꽃다발이 한발자국씩 가까이 다가오는 경이로운 모습에 나의 입술에선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예상치 못했던 폭설과 강추위로 곳곳에서 수도관이 얼어터지고 절수를 감내해야 했던 겨울자락이 아직도 어깨와 옷섶에 남아있는 탓인지 뜻밖의 손님 무지개를 본 듯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진 마음이 화악 풀어지는 것이다. 모진 추위를 뚫고 나온 저 고운 꽃의 자태가 어찌 가상하지 않을 텐가! 꽃을 안은 여인과 버스를 같이 타고 운 좋게도 옆자리에 앉은 나는 꽃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모양도 색상도 다양한 꽃송이 송이에게 눈을 마주치면서 잎사귀도 꼼꼼 살펴보면서 속삭였다. 당신은 좁은 문을 통과한 아름다운 봄꽃이 아니고 겨울 천사군요. 겨울 천사님. 돌아와 주셔서 고마워요. 연초록 잎사귀에도 방울방울 낯익은 눈웃음이 고였다.

    그해 어린 자식을 두고 홀연히 떠난 어미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걱정했다. 저승길 아니거든 돌아와 달라고 빌었다. 그 무엇이 가로막아도 아침마다 부서지는 공중 소리를 저 나뭇가지 새들처럼 듣는다면 돌아와 달라고 빌고 빌었다. 푸른 내일을 예언하는 더 깊은 어머니 눈 속으로 향기 머금은 사랑으로 돌아오라고 염원했다. 그 겨울은 그리도 길었다. 기다림 끝에 어느 날 창밖 산 중턱에서는 진달래가 붉게 돌아와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돌아온 진달래꽃만으로도 반가움이 물결쳤다. 여태 눈먼 불시착의 봄을 맞이했던 우둔함을 자책하면서 홀로 두근거리던 봄. 세상사 그때 돌아오는 것은 모두 아름다운 사랑임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긴 삭막의 터널을 뚫고 소중하게 돌아온 만물들은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피안에서 꿈틀거린다. 연민의 근원 찬란한 봄,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꽃으로 승화되어 돌아오는 목소리는 사랑의 빛으로 메아리친다.

    꽃메아리는 어스름 피어나는 화음 속에서 당찬 오렌지 품안 환희를 외치고 있다. 피어나는 봄의 소리, 소리들. 하품하는 새싹들. 꿈속처럼 깊고 아득하다. 부드러운 바람 되어 흔들리는 그리움이 소르르 전해진다. 그대는 정녕 그리움이 안고 도는 사랑의 목소리를 듣는가? 정겨운 메아리가 된 봄꽃. 숨결같이 가까이에서 들린다. 저마다 혼신의 힘으로 꽃대를 올리는 그들의 체온은 몇 도나 될까? 아마도 맞이하는 스스로의 마음만큼 수은주는 오를 것이다.

    구제역으로 가축 매몰지에서는 봄이 두렵다고 한다. 심한 봄앓이를 하려나 보다. 환경오염으로 수도권 식수원 안전성도 근심이다. 염려가 이미 열병으로 진단되어 간단하게 해열제 한 알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우리 집 뒹굴이(고양이)도 안하던 짓을 하면서 봄을 앓고 있다. 미약한 인간의 모습이 그와 같을지라. 세상살이 길목마다 봄을 앓는가 보다. 비록 앓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그 수많은 무엇들은 슬픈 곡조를 이겨내기에 아름다울 것이다.

    올 봄날에는 가련한 듯이 돌아온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다. 만나는 이에게 함박웃음이나 미소 한 번일지라도 피어서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한 송이 꽃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누구에겐가 숨은 듯 돌아오는 잔잔한 메아리가 되고 싶다. 노을꽃 천사들과 더불어 누군가에게 봄 길을 여는 꽃메아리 엽서가 되고 싶다.

    그대의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어머니의 기도와 별에 대하여, 날개와 달빛, 강물, 나비, 기쁨, 향기, 새벽, 희망, 풍금소리, 휘파람소리, 감사, 겸손, 신뢰, 고요. 아픔과 평화….

    꽃메아리처럼 하얀 속삭임에 대한 음률을 담아 드린다. 입춘대길에 화기치상- 가정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온 집안에 가득하기를 빌며.

    김연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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