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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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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살아 있나요?- 이서린(시인)

  • 기사입력 : 2011-04-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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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이 지나고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부서진 시멘트길 사이로 보랏빛 제비꽃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논과 밭, 도시의 외곽지대에도 우리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들이 “나, 여기 있다”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봄볕에 손을 흔듭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 새삼 생명의 모진 끈을 느끼기도 합니다.

    마당 한구석에 버린 부서진 화분에서,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는 씨앗이 자리를 잡아 움을 틔웠습니다. 모양새가 나리꽃 같습니다. 살아있다고, 숨을 쉬고 있다고 여기저기에서 소식을 알려 옵니다.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발생하여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진 풍경과 사람들. 무너진 건물 아래 처참히 숨을 거두었을 그들. 충격과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마주했을 그들이 할 말을 잃게 했습니다. 한쪽에선 욕심 많은 권력자 때문에 시민들이 총탄 아래 쓰러져 갑니다. 움켜쥔 권력을 놓지 않으려 백성을 무차별 사살하는 그들은 행복할까요. 무엇을 위하여 싸우는 것일까요. 맛있는 것을 얻기 위해 병 속의 움켜쥔 손을 놓지 않아 결국 사냥꾼에게 잡히는 원숭이처럼,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은 지도자입니다.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에선 만신창이가 된 시민들이 죽어가고, 또 한쪽에선 한 끼도 먹기 힘든 나날로 굶어죽는 목숨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살과의 전쟁이니 비만과의 싸움이니 난리를 치는 가운데 오늘도 천 원이 없어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 만 원이면 한 달을 살 수 있는 아이들에게 부디 자비를 베풀기를 바랍니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일고 홍수가 나고, 화산이 폭발하고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하고, 하고, 하고…. 그래서 죽어가는 생명들. 텔레비전에는 연일 사건 사고가 보도되고 지구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태어났으면 죽는 것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처참하게, 어이 없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비일비재한 요즘, 그대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지구 반대편, 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이 생을 견디며 살아 가고 있을 그대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잘 버티고 살아 있을 그대를 응원하며 봄을 맞이합니다. 오롯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 그대의 머리맡, 그곳에도 봄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어디 쉬이 오는 봄이 있던가요. 매서운 한파와 지독한 감기, 그리고 꽃샘추위를 지나 당도하는 봄. 봄이 너무 늦지는 않은지, 그대가 있는 곳은 아직 겨울 같은 주변이 아닌지 못내 걱정입니다. 상처 입은 그대의 마음에 봄 햇살이 따뜻하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까 파괴되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다만 인류가 멸망할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위주로 생각합니다. 세상 곳곳에서 각종 이변이 생겨도 지구는 여전히 돌아갑니다.

    그대와 내가 사라지거나 멸종될 뿐. 새로운 생명체가 계속 이 지구상에 남아 또 지구를 염려하겠지요. 살아가는 동안 그대의 주변은 숱한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온전히 살아 숨 쉬는 여기가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대가 피 흘리며 신음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오늘도 배불리 밥을 먹은 내가 죄스럽게 느껴집니다. 굶주린 배로 힘없이 하루를 이어가는 그대를 생각하면 한 잔의 커피도 부끄러운 사치가 되어 마음을 울립니다.

    그대와 나의 운명이 이렇게 달라도, 그대를 생각하며 기부하는 이들과 봉사자들이 위로가 되기를 손모둠합니다. 문득 마주한 한 줄의 글이, 한 소절의 음악이, 한 자락의 바람이 그대의 희망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그대, 살아 있나요?

    이서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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