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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83) 자유롭게 쓰는 글

글쓰기에 다듬기 과정이 왜 중요할까

  • 기사입력 : 2011-04-1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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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 형식으로 자유롭게 쓴 신문방송학과 대학생들의 습작 글에 다듬기 조언을 한 사례.
     

    글짱: 안녕하세요.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입니다. 글샘의 뉴스취재실무 강의를 듣는 제자랍니다. 올해 첫 수업 때 자유로운 형식으로 글을 써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그다음 시간에 학생들마다 일일이 평가했고요. 이름을 밝히지 않고 했지만 제 글의 허점을 지적할 때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글샘: 그 수업시간에 기사가 무엇인지 설명한 뒤에 기사를 쓰기에 앞서 글을 먼저 써 보라고 했죠. 글쓰기에 부담을 떨치도록 해주려는 의도였고요. 첫 수업의 분위기나 느낌을 글로 가볍게 표현해 보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제가 주문한 대로 대부분 수필 형태로 잘 써왔어요.

    글짱: 수필이라면 붓 가는 대로 쓰면 되는 글이잖아요. 국어사전에도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이라고 나와 있고요. 자유롭게 쓰라고 하고선 왜 다듬기 과정을 강조했는지 궁금해요?

    글샘: 글이 주제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구성에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였죠. 남이 읽었을 때 어떤 의미로 썼는지 이해가 되어야 한다는 게 기본이라고 했을 겁니다. 또 글을 쓰는 전문가로부터 부족한 점을 조언받으면 훨씬 나은 글이 될 수 있다고 했죠. 그래서 주변에 멘토가 있다면 도움이 된다고 얘기한 거죠.

    글짱: 이달 초 수업 때 어느 수필가의 다듬기 과정을 예로 든 게 그것 때문이었군요. 오후 졸리는 시간대라 제가 허투루 들은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그 대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래요?

    글샘: 글쎄요. 리바이벌은 안 한다는 게 제 강의 철학인데…. 이번만 해볼게요. 제가 예를 든 수필집은 지난 2008년에 출간된 <글의 씨앗>이었어요. 그 당시 수필의 길에 들어선 지 7년째 되던 박옥근씨의 작품이죠. 이 수필집의 가장 큰 특징은 한 편의 수필마다 ‘창작노트’라는 뒷이야기를 담았다는 거죠. 그걸 보면 하나의 수필이 발표되기까지 수필가가 어떠한 다듬기 과정을 거쳤는지 알게 돼요. 제가 설명한 대목도 그 ‘창작노트’에 나와 있답니다.

    글짱: 수업 시간 때 예로 든 것 중에 산행 이야기를 쓴 수필이 있었잖아요?


    글샘: 그 수필은 ‘모성(母性)’이라는 작품으로, 수업시간에 제가 다듬기(퇴고)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할 수 있다고 했을 겁니다. 그 대목을 다시 예로 들게요. 그 수필가가 처음에 쓴 구절을 주변의 선배와 지도교수에게 자문해 글맛을 한층 더해 가는 과정이랍니다. 이 습작을 쓴 뒤 동인지에 발표할 때까지 2년이나 걸렸다니 수필가가 다듬기에 기울인 정성을 엿볼 수 있겠죠?

    <습작 글> 우리 집에서 장산 중턱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은~~~(생략) 숨이 차면 잠시 발을 멈추고 앉을 곳을 찾는다. 너럭바위가 잠시 쉬어 가라며 손목을 잡는다.

    <다듬은 글> 우리 집에서 장산 중턱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은~~~(생략) 숨이 차면 잠시 발을 멈추고 앉을 곳을 찾는다. 너럭바위가 잠시 쉬어 가라며 발목을 잡는다.

    <발표 글> 우리 집에서 장산 중턱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은~~~(생략) 숨이 차면 잠시 발을 멈추고 앉을 곳을 찾는다. 그런 때는 너럭바위가 반갑다.

    글샘: 그분의 다른 수필 ‘집에 가자’를 예로 들게요. 이 수필은 어느 한 구절의 표현을 다듬는 게 아니라, 글의 전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조언받은 사례죠. 시댁 마을의 한 ‘할머니’이자 ‘시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쓴 글이었다고 하네요. 처음엔 제목을 ‘유모차’로 정해 작자의 목소리로 썼답니다. 그런데 수필을 쓰는 지인으로부터 글 속의 할머니를 필자의 할머니로 읽었다는 얘길 듣고는 그 ‘할머니’를 다시 ‘그녀’로 바꿨다는 겁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고민하다 작자의 목소리를 ‘유모차’로 의인화하고 ‘할머니’라는 표현은 ‘그’로 바꿔 완성했다고 합니다. 글머리가 바뀐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습작 글> 할머니는 유모차를 밀고 갑니다.

    <다듬은 글> 그녀는 유모차를 밀고 갑니다.<발표 글> 나는 유모차입니다. 내 품속엔 아기가 없습니다. 아기가 있어야 할 자리엔 장바구니가 있습니다. 그가 나를 밀며 “장에 가자. 장에 가자”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집을 나섭니다.

    글샘: 이 수필의 백미는 글머리와 마지막 대목의 조화랍니다. 아래에 있는 마지막 대목을 글머리와 비교해 읽어 보세요. 제가 수업시간에 강조한 천칭 구조의 글이 어떤 건지 알게 될 겁니다.

    <마지막 대목> 그가 나를 밀며 장터를 빠져나옵니다. 내 품속엔 아기가 없습니다. 아기가 있어야 할 자리엔 장거리가 있습니다. 그가 나를 보며 “집에 가자. 집에 가자”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갑니다.

    글짱: 멋지네요. 주인공 인칭을 달리 표현하면서 전체 문맥까지 바꿔야 했겠지만, 구성은 훨씬 탄탄해진 것 같네요.

    글샘: 바로 그런 거랍니다. 그래서 필자가 제목도 ‘유모차’에서 ‘집에 가자’로 바꾼 것이겠죠. 이 수필집을 펴낸 박옥근씨가 ‘작가의 말’에 남긴 글을 예로 들며 오늘 글쓰기 조언을 마칠게요.

    “수필 공부를 하면서 문학에 대한 갈증으로 절망에 허덕이는 날이 많았습니다. 굳이 ‘창작노트’를 곁들인 까닭은 누군가 절감할지도 모를 유사한 갈증에 한 모금이나마 표주박에 담긴 물처럼 갈증 해소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어설픈 마음에서입니다.”

    글짱: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멋진 얘기군요. 저 같은 글쓰기 꿈나무에게 하는 말 같아요. 오늘 특별 수업 고맙습니다.

    글샘: 아 참, 가능하면 이런 값진 경험을 담은 수필집 <글의 씨앗>을 구입해 읽어 보면 글쓰기에 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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