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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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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하동 '박경리 토지길'(제2코스)

경남의 길을 걷다 (13) 하동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 (제2코스)
흐드러진 연분홍 꽃터널 따라 여유로운 걸음
지리산 자락서 ‘왕의 녹차’ 한 모금을 머금다

  • 기사입력 : 2011-04-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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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하동 십리벚꽃길을 걷고 있다. 십리벚꽃길은 4월 중순까지 절정을 이루며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곳이다./전강용기자/
     
     
    하동에 있는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은 1코스(18㎞)가 걸어서 6시간, 2코스(13㎞)가 4시간 정도 걸린다.

    당일 1~2코스 모두를 둘러보는 것은 무리다.

    가족·연인·친목회 모임별로 1박2일 일정으로 둘러보면 전국 최고의 슬로시티 하동의 진면목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지난주에는 1코스를 걸으면서 마지막 방문지인 화개장터에서 글을 맺었다.

    화개장터는 1코스의 마지막 방문지이지만 2코스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4시간 코스를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화개장터의 번화한 난전의 기운을 한껏 받고 다시 출발해 보자.




    화개장터는 화개면 탑리에 있는데, 옛날 5일장이 활발하게 섰던 곳이다.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내려와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화개.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화개장터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 하나로 전국의 어느 시장보다 많은 사람이 붐볐던 곳이다. 이곳엔 5일장이 섰으며, 지리산 화전민들이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가져와서 팔고, 구례,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전국을 떠돌던 장꾼들도 이 장을 놓칠세라 생활용품을 가지고 왔으며, 여수, 광양, 남해, 삼천포, 통영, 거제 등지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해 미역, 청각, 고등어 등 수산물을 가득 싣고 와 화개장터에서 팔았다.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한 화개장터는 벚꽃 길 따라 수많은 관광객이 지리산 쌍계사 등지를 왕래하고 있으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도로변은 봄날이면 환상적인 벚꽃터널을 이룬다. 옛날 시골장터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화개장터에는 국밥집, 도토리묵, 재첩국집, 주막, 엿장수, 약재가게, 대장간 등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부쩍 늘어 화개장터의 명성을 엿볼 수 있다.

    화개장터를 떠나 이제 1시간 정도 십리벚꽃길을 걸어야 한다. 십리벚꽃길에는 안전한 데크길도 있지만 대부분 도로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차량을 조심해야 한다.

    십리벚꽃길은 일제 강점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생겼다. 지난 1929년부터 주민들이 직접 심은 벚꽃길은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이길을 함께 걸으면 영원한 사랑이 이뤄진다고 해서 ‘혼례길’이라고도 불린다. 오래된 벚나무들이 길가에 빽빽이 서 있으며, 새하얀 꽃송이들이 겹겹이 포개지고 얽혀 4월 중순까지 장관을 이룬다.

    김용택 섬진강 시인은 ‘바람에 날리는 꽃 이파리를 보며 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디겠는가’라는 시를 읊었고,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벚꽃이 피는 모습을 ‘봄의 정령이 돌파구를 만나 아우성을 치며 분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예찬했다.

    하동녹차체험장


    십리벚꽃길을 벗어나면 하동 녹차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는 차문화센터가 떡하니 보인다.

    차 문화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하동차문화센터는 하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차의 신비로움을 체험하는 차문화전시관과 전통수제다법으로 덖음차 만들기 체험과 하동녹차 다례체험을 할 수 있는 차 체험관이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데, 낮 12시에서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다. 개인과 단체로 체험할 수 있고, 전문 강사가 30~40분 정도 설명해 준다.(단체예약 ☏ 880-2833)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하동야생차 문화축제가 매년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는 5월 4일부터 8일까지 화개면·악양면 일대에서 제16회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가 개최돼 전국 다인(茶人)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하동녹차 시배지


    하동차문화센터 조금 위쪽 도로에는 차 시배지가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당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나무의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남녘인 화개동천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이를 진감선사가 널리 보급해 전통차의 문화가 싹트게 됐으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주변은 지방기념물 제61호인 ‘우리나라 차 시배지’로 지정됐고, ‘대렴공차시배추원비’가 세워졌다.

    차의 고장이자 차의 성지를 증명하듯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경상남도 지정기념물 제264호)가 인근 도심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7월 1일 한국기록원에서 최고 차나무에 대해 한국 차학회와 한국차문화연구회, 한국 양명학회의 실측자료를 근거로 ‘한국 최고 차나무’로 인증했으며, 차시배지는 삼국유사와 신라본기를 근거로 ‘한국 최초 차시배지’로 공식 인증을 받았다.


    차 시배지를 둘러보고 인근의 전통 음식점을 찾아 점심을 먹어야 한다. 이 일대가 유명 관광지여서 먹거리가 많다. 돌솥비빔밥과 산채비빔밥, 더덕구이, 파전, 감자전에 동동주 한모금을 곁들일 수 있다. 음식이 차려지면 쌍계사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소리와 길거리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식욕을 재촉한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명사(名寺)를 찾아 마음을 비우자. 쌍계사 입구에는 쌍계 석문바위가 있는데, 쌍바위 앞에 최치원 선생이 왼쪽에 쌍계란 글자를, 오른쪽에 석문이란 글자를 써놓았다.



    쌍계사 전경


    쌍계 석문바위에서 관광객들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쌍계사에 도착한다. 석가탄신일이 머지않은 듯 쌍계사 가는 길은 온통 연등행렬이다.

    신라 성덕왕 21년에 대비와 삼법 두 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 스님의 정상을 모셔와 ‘지리산곡 설리 갈화처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이곳을 찾아 절을 지어 조사를 봉안하고 옥천사라 이름지었다. 이후 문성왕 2년에 우리 불교 범패 종장인 진감국사께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쌍계사는 국보 1점, 보물 6점의 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천왕상, 정상탑, 사천왕수 등 수많은 문화유산과 칠불암, 국사암, 불일암 등 부속암자가 있다.

    쌍계사에서 이제 1시간 거리에 있는 불일폭포를 찾는다. 쌍계사 옆 옥천교를 지나면 불일폭포 가는 길이다. 요즘처럼 포근한 날에는 땀이 많이 나고,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면 쉬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올라가 폭포를 만나면 아름다운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어 그 힘든 과정의 보상으로 충분하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가는길.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등산코스로 연인들과 등산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높이 58m의 지리산 최고 폭포인 불일폭포. 전형적인 2단 폭포이다.


    불일폭포는 청학동으로 가는 입구라 해서 원래이름이 청학폭포였으며, 남명 조식 선생이 열 걸음에 한 번 쉬고, 열 걸음에 아홉 번 돌아보면서 불일암에 도착했을 정도로 불일폭포는 지리산에서 최고의 폭포이다. 높이가 58m로, 우리나라에서 설악산 대승폭포 다음으로 큰 거폭이다.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에서 쏟아진 물이 중간의 학연(鶴淵)에서 잠시 머물다 흘러내리는 전형적인 2단 폭포이다.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와 골바람으로 몸을 식힌 뒤 이제 하산한다. 올라올 때 1시간, 쌍계사까지 내려갈 때 1시간. 하지만 내려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하동 박경리 토지길 1코스, 2코스를 걷는 내내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인심에 반했고, 먹거리 볼거리에 취해 버린 여정이었다. 아쉬움도 많았다. 이 좋은 코스를 가족과 같이 걷지 못한 아쉬움. 조만간 다시 찾겠다는 생각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자꾸 멀어져 가는 하동의 풍경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계속 고개를 뒤로 돌렸다.


    화개장터서 보람이네 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신보람씨가 영지버섯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길에서 만난 사람- ‘보람이네 농원’ 신보람씨

    “화개장터 가게 하나하나가 하동의 얼굴이자 이미지죠”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화개장터에는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옛날 시골장터를 연상시키는 정겨운 정취를 느끼기 위해 지역주민은 물론 외지인들이 불원천리 찾는 곳이다.

    화개장터에서 약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보람이네 농원’ 신보람(61)씨는 늘 싱글벙글이다. 손님이 약재를 구입하든, 구경만 하고 가든,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귀찮게 하고 가든, 언제나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봄 꽃놀이철, 야생차축제, 여름 피서철, 가을 단풍철에는 밀려드는 손님으로 정신을 못 차린다. 겨울에는 안면 보고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그냥 가게를 열어놓아야 한다.

    신씨는 “손님들이 구경만 하고 가도 차후의 손님이 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면서 “화개장터 가게 하나하나의 얼굴이 하동의 얼굴이며, 손님에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하동군의 이미지를 올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가게에서 헛개, 상황버섯, 영지버섯, 민들레, 겨우살이,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 야생녹차, 대추, 구지뽕 등 120여 가지의 진귀한 약재를 취급하고 있는데,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이다. 국산만 취급하는데, 하동산이 80%이고, 지역의 우수한 특산품이 20%를 차지한다.

    서울에서 살다 하동에 정착하게 된 신씨는 화개장터에서 6년째 손님을 맞고 있다. 하동의 청정한 물과 공기에 반해 그냥 눌러 살게 된 경우이다.

    환갑을 넘긴 신씨는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신씨는 “장터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근무여건은 좋지 않지만 좋은 것 많이 먹고, 항상 즐겁게 생활하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늙지 않는다”고 젊어지는 비법을 소개했다.

    힘들게 일하지만 늘 기쁘다는 신씨는 약재 가게를 운영하면서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아기를 낳은 산모, 간경화로 고통받는 사람, 중풍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화개장터에서 약재를 구입해 달여 먹은 뒤 효과를 봤다고 할 때 난전에서 일하지만 정말 뿌듯하다”면서 “돈도 돈이지만 큰 보람을 안겨주는 이 일을 앞으로 힘이 될 때까지 계속하겠다”며 웃어 보였다. 보람이네 농원 ☏ 010-6760-5828.

    글=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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