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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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밤나무골 추억에 얽힌 봄의 단상- 이동욱(진솔학원 원장)

  • 기사입력 : 2011-05-0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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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맘때를 두고 백낙천은 “복사꽃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흩날리고, 배꽃은 아득히 내리는 눈처럼 떨어진다”(桃飄火焰焰, 梨墮雪漠漠)라고 했을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단순히 복사꽃잎과 배꽃잎이 바람에 흩날리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시라고 볼 수 있으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순식간에 가는 봄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실 우리네 사계절 중에 봄만큼 빨리 지나가는 계절도 없을 것이다. 살며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새로운 만남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순식간에 여름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곤 하는 이 짧고 아름다운 계절이 다시 돌아와 지금 한참 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있는 감나무의 변화를 보는 이때쯤이면 작은 어촌 밤나무골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돌이켜 보면 그간 지나왔던 세월이 짧지도 길지도 않지만 또래의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듯한 공식처럼 졸업과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서 불도저처럼 부지런히 삶을 개척해 오다가 문득 돌아보니 갓난아기였던 자식들은 벌써 고등학생이 되어 내년 대학생이 될 준비를 하고 있고, 나 자신은 어언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빠르고도 숨가쁜 시간의 흐름 속에 요즘 들어 가장 반가운 일은 그간 바쁜 삶속에서 잊고 지냈던, 지금은 모두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옛 동무들의 근황을 듣고 또 얼굴을 보는 재미이다.

    그중에서도 정말 우연히 그 흔한 동창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근처에 있는 이웃도 아니지만, 동향이라는 이유로 참으로 선하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정겹게 다가온 인연이 있으니 그 인연이 평소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밤나무골 사람들과의 인연이라 더 정겹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 T.S. 엘리엇이 그의 시 ‘황무지’에서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던 요즘의 4월을 조금 지나면 시골 야산 군데군데에서 자생하는 밤나무의 꽃 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가운데 크고 작은 섬들이 군데군데 늘어서 있고 그 섬 사이 사이로 조그마한 고깃배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곳, 맑은 아침 저녁으로 일출과 석양이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하는 대마도(對馬島)의 아소만(淺芽濁)보다도 더 그림 같은 우리 어촌 그곳이 밤나무골이다.

    경험론자이며 교육사상가인 존 로크는 인간은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하얀 백지와 같은 상태로 태어나서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빈방을 하나씩 채워 가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 또래는 현실의 어려움과 자식의 장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나이인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돌봄에 있어서도 가족에 대한 고민에 비례할 만큼 충실할 필요가 있는 나이이기도 한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했던 세월 속에 외모는 상당히 달라져 있고 또 앞으로 더 달라져 가겠지만 가식 없이 그리고 허물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만날 수 있는 동무가 있어 또 다르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봄이다.

    이 봄이 지나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오고 가더라도 항상 올봄과 같이 따뜻하게 진심을 얘기하고 받아주는 그런 진정한 동무가 변함없이 오랫동안 주위에 있기를 바라면서 햇살 포근한 날에 잠시 짬을 내어 짧은 생각에 잠겨 본다.

    이동욱(진솔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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