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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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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양산 통도사 암자순례길 (하)

경남의 길을 걷다 (15) 양산 통도사 암자순례길 (하)
고개 숙인 두 소나무 길손을 맞이하고
신록 길 걷다 보면 온몸에 새로운 활력이…

  • 기사입력 : 2011-05-1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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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도사 옥련암의 ‘큰빛의 집’ 입구 양편 소나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듯한 형상으로 신도들을 맞이하고 있다./김승권기자/

    통도사 사명암을 찾은 신도들이 암자 앞 연못을 따라 걷고 있다.
     

    4월 말에 이어 양산 통도사 암자순례길의 나머지 암자들을 둘러보고 소개한다. 창원 경남신문사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통도사 내 양산시관광안내소에 도착한 시간은 9시20분. 두 번째 만남인지라 안내소 직원들도 답사팀을 반갑게 맞는다. 앞번 기사를 보고 암자순례길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고 그간 소식을 전한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관광안내소 김태야씨의 안내로 길을 나섰다.

    이번 일정은 사명암→백련암→옥련암→서운암→수도암→취운암→보타암을 둘러보고, 통도사 밖에 있는 축서암을 찾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통도사 암자순례길은 사실 걷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코스다. 신도들의 편의를 위해 차량소통이 쉽도록 아스팔트 포장길을 내다 보니 흙길 같은 촉감은 없고, 차량이 많아 안전에도 유의해야 한다. 암자와 암자 사이로 산길이 있다고 하는데, 일반인의 눈에는 잘 띄지도 않을 뿐더러 수행에 방해가 될 것 같아 굳이 찾아들지는 않았다.

    사명암은 관광안내소에서 약 1.5㎞, 걸어서 20분 거리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길 옆 계곡 물소리가 맑고 제법 우렁차다. 1.1㎞쯤 걸으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서운암, 오른쪽은 사명암, 백련암, 옥련암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400m쯤 들어가니 사명암이 나온다. 이번 순례에서 느낀 것이지만 통도사 암자는 규모면에서 어지간한 절 못지않다. 입구에 꽤 큰 인공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로 대리석 다리를 지나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연못 옆에 ‘일승대(日昇臺)’ 와 ‘무작정(無作亭)’이라는 두 개의 정자까지 더해져 궁궐 같은 느낌이며, 기자가 보기에는 호화롭고 사치스럽다. 극락보전 오른편 수행공간 한 건물의 전면에 ‘무량광불(無量光佛)’ ‘인지위덕(忍之爲德)’ ‘대호쾌활(大好快活)’ 등 다양한 글씨체의 편액들이 이채롭다.

    사명암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기능 보유자였던 혜각스님이 머물던 곳이다. 국내 주요 사찰의 단청은 물론 숭례문, 홍인문, 경회루, 촉석루 등 국보급 유물에도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스님은 생전에 모은 고서화 500여 점을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기증했다.

    백련암 담장 옆의 수백년 된 은행나무.

    백련암으로 가는 길이 신록으로 우거져 있다.


    사명암에서 남쪽 숲속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암자가 백련암이다. 입구에 ‘백련정사(白蓮精舍)’라는 안내석이 있다. 대한제국 말기에 남방의 선찰(禪刹)로 유명했다고 한다. 초파일을 앞두고 법당 앞마당에는 연등 설치가 한창이다. 500살 이상 돼 보이는 큰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옥련암은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 위 약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로 유명한 암자. 이 장군수를 매일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절 스님들이 당하지를 못했다고 한다. 인근 식당 등에서 이 물을 많이 받아 간다고 한다.

    옥련암 ‘큰빛의 집’

    가운데 건물은 ‘큰빛의 집’이라는 한글 현판이고, 주련도 한글로 한 것이 특징이다. 어려운 한자 대신 쉽게 풀어쓴 한글, 쉽지 않은 변화를 실천했다.

    큰빛의 집 안에는 부처님 제자 1200아라한을 모셨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박찬수씨의 작품이다. 무량수전의 후불탱화도 목조각품으로, 그 세밀함에 대단한 공력이 느껴진다. 앞마당에는 거대한 반송이 자리 잡았는데, 청도 운문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처진 소나무’ 다음으로 큰 것이라고 한다. 마침 점심공양 시간이라 불청객 답사팀도 숟가락을 얻었다.


    5000개가 넘는 서운암 장독과 금낭화.

    삼천불상을 흙으로 구워낸 서운암 도자삼천불.


    일행은 서운암으로 길을 잡았다. 옥련암에서 600m 남짓 내려오면 서운암 안내석이 나온다. 서운암은 볼거리가 많아 널리 알려진 곳. 가족단위로 한나절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서운암 하면 성파스님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통도사 주지를 지낸 스님은 이곳에서 1985년부터 5년 동안 삼천불상을 흙으로 구워내 도자삼천불(陶磁三千佛)을 모셨다. 이어 16만 도자대장경 불사를 91년 시작해 10년 만인 2000년 9월에 완성했다. 도자대장경은 서운암 위쪽 산중턱에 조성한 장경각에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스님은 생약재를 첨가한 전통 약된장과 간장을 개발, 보급 중이다. 줄지어 있는 5000개가 넘는 장독은 장관이다. 또 전통 천연 염색인 쪽 염색기법과 전통 한지인 감지를 재현했다. 서운암 주변 15만여㎡의 야산에 100여 종의 야생화 수만 송이를 심어 군락지를 조성했다. 산책로 주변 금낭화와 겹황매화가 만개했다. 내방객들이 사진찍기에 열중하며 봄을 만끽하고 있다. 이곳에는 봄이면 들꽃축제를 연다. 스님은 시조에도 관심을 가져 성파시조문학상을 제정했으며, 시조전문지 ‘화중련(火中蓮)’ 발행인을 맡고 있다.
    통도사 서운암 산중턱 등산로변에 조성된 꽃길.

    한 아이가 스님의 목탁을 두드리고 있다.


    서운암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도암을 거쳐 취운암(翠雲庵)에 당도했다. 취운암은 통도사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건립했다고 한다. 근래까지만 해도 취운암 법당 뒤쪽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으나, 지금은 통도사 부도전으로 모두 옮겼다. 6동 128칸에 이르는 건물로 통도사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자다. 취운암은 영축율원과 함께 있다. 율원(律院)은 보통 총림(叢林)을 두고 있는 큰 절에 설치하는데, 비구승 중 특별히 계율을 연구하는 이가 입학한다. 일반불자들의 선원으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보타암


    취운암에서 200m쯤 내려오면 보타암이 있다. 보타암은 비구니 스님들만 계신 곳이라 더욱 조심이 된다. 깨끗하고 깔끔하다. 이로써 통도사내 암자는 모두 돌았다.

    관광안내소에 들러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며 작별을 했다. 통도사 울타리 밖에는 관음암, 보문암, 축서암, 무량암 등 4곳의 암자가 있는데, 일정상 축서암만 둘러보기로 한다.

    축서암은 통도사에서 북서쪽으로 3㎞ 떨어진 지점에 있다. 통토환타지아를 지나 지산리 양지농원쪽으로 올라가면 나온다. 선화가로 유명한 수안스님이 계셨던 곳이다.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로 선승의 해학적인 표정을 잘 그렸다.

    마침 그곳에서 통도사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세봉스님을 만났다. 방문 목적을 말했더니, 스님은 꼭 이 말은 써 달란다. “정해진 등산로를 이용하고 암자 뒷길 함부로 다니지 마라. 수백년 된 소나무가 한 해 30그루 이상 죽어 간다.” 등산객들이 많이 다닌 길은 다져져서 제대로 양분 공급이 안되고, 약해진 소나무들이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넘어져 죽는다는 설명이다.

    특히 매표소를 피해서 샛길을 자꾸 만들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산림을 훼손한다고 한다. ‘얌체족’들이 많은 모양이다. 부처님 앞에 참회하고, 더 이상 죄짓지 말자.

    통도사 주지 정우스님의 법문으로 암자순례길을 마무리한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하고, 시기질투하고, 권모술수 써가며 목적지에 도착한들 거기가 극락이겠습니까. 그곳은 지옥입니다. 우리는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월간 보궁 5월호에서)

    글= 이학수기자 leehs@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답사안내=양산관광안내소 김태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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