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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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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학생과 교사 사이- 김진희(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1-06-1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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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정 곳곳에 원시의 향내 뿌리며 고개 내민 꽃들이 햇빛에 반짝인다. 살랑살랑 잎새를 건드는 바람도 유난히 간지럽다. 싱그러운 녹색이 전하는 평화로움이 한껏 충만한 계절이다.

    도서관에 꽂힌 많은 책 중에서 하임 기너트의 ‘교사와 학생 사이’, 조벽의 ‘나는 대한민국 교사다’를 집어든 것은 맹랑한 녀석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등 2학년생은 아직 교사의 손짓, 목소리에 푸들푸들 피어나는 새싹들이라 생각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뒤엎고 수업을 마치고 나면 온 몸에서 힘이 빠진다. 기너트는 “교실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교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품행과 인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교사의 반응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모든 상황들을 교사가 인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특별한 기술’이다”고 하였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영특하기까지 한 녀석들에게도 새삼 그 특별한 기술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데 교사의 바람직한 인격도 중요하지만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따뜻하고 인내심 있고 상냥한 교사도 여전히 교실의 문제를 극복하기란 어렵다고 하니, 학생들의 기억 속에 남는 좋은 선생님 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 제자와 스승, 나와 너, 우리들 사이 등 사회의 무수한 관계망 속에 있다. 사이란 틈이다. 그 틈으로 희로애락은 물론 훈훈한 웃음소리, 미세한 신경전, 서러운 바람을 맞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를 둘러싼 그 틈에서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된서리를 맞지 않도록 간격을 잘 유지하고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학생과 교사, 제자와 스승 사이에서 부쩍 그 틈이 유난함을 느낀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과 벌어지는 세대간의 벽 때문일까? 교사의 체벌 논란, 교실에서의 폭행, 동영상 등으로 학생들에게 비쳐진 교사의 권위는 어디쯤 있을까? 생각의 씨앗이 한창 자라고 있을 아이들에게 훗날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내가 시를 가까이 하고 특히 시조를 사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이상은 국어 선생님 덕분인 것 같다. 선생님은 서울에서 오신 멋쟁이셨다. 항상 단정한 모습으로 흐트러짐이 없었던 선생님의 옷맵시며 걸음걸이, 표정은 우리를 늘 긴장하게 하였다. 거기다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낭독할 때면 친구들은 온몸이 녹아드는 표정이었다.

    친구 영아는 서울 말씨의 선생님 흉내를 내며 콧소리로 읽어서 우리들은 키득키득 웃곤 하였다. 선생님은 특히 노산 이은상을 이야기할 때 얼굴에 빛이 나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분이라며 무척 존경하였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의 이름자와 비슷하니까 좋아하나 보다’, ‘친척분이신가?’ 생각할 정도였다.

    ‘가고파’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고지가 바로 저긴데’ 등 주옥 같은 노랫말을 읽으며 좋은 시를 베껴 쓰고 문예부에서 시집을 만들던 그때 저 깊은 곳에서 시심이 자라고 있었다. 선생님의 표정, 말씨, 옷맵시 등 모든 것이 선생님만의 ‘특별한 기술’로 우리들 마음속에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란 특별난 무엇이 아니라 교사의 본업인 잘 가르치는 창조적 행위와 열정은 물론 지금까지 쌓아온 오랜 경험이나 교사의 말씨, 옷맵시, 표정도 그중의 하나인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학교현장에서 교사는 학생과의 사이에서 이상 기후나 움직임에 너무 민감하지 않고 그 틈을 잘 대처해가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부단한 자기 연수로 자기만의 ‘특별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듬어 주고 어른인 교사가 참고 인내하는 넓은 아량을 베풀자.

    학생의 인권에 밀리는 교권, 학부모의 요구, 학생과 교사 사이의 경직된 사고 등으로 많은 교사들이 명예퇴직하여 교단을 떠나고 있다. 교사의 길은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무한한 인내가 요구된다. 어떤 첨단 매체보다 개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며 나만의 ‘특별한 기술’로 어떤 제자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교사의 굳건한 마음이 절실한 때다.

    김진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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