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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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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인터페이스 도시와 스토리텔링- 차민기(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1-06-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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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가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 가운데 ‘문화예술 네트워크를 통한 도시재생사업’이 있다고 한다. 박완수 창원시장이 국토해양부와 환경부를 직접 찾아다니며 예산을 챙길 정도라고 하니, 이 사업에 쏟는 창원시의 열정을 가늠해 볼 만하다. 예산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관의 여러 노력들이 민의 감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하는 일일 것이다.

    통합 창원시 출범 이후 ‘세계 속의 명품도시’를 표방한 창원시의 여러 노력들은 도심지 곳곳에서 찾아진다. 옥외간판 정비나 테마거리 조성 등이 그러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러한 도시정비의 결과물들이 시민들과 전혀 교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재작년, 영화 ‘아바타’가 전 세계 관객들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스토리 자체의 참신함이나 새로운 주제 의식 때문이 아니었다. 아바타는 ‘매트릭스’에서 이미 보여준 바 있는 ‘가상-실재’의 경계 넘나듦을 서사 틀거리로 삼아, ‘환경보호’ 또는 ‘인간성 중시’라는 뻔한 주제 의식을 그 안에 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은 역대 최고였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는 영화가 발명된 이후 100여 년 동안, 오직 시청각에만 의존해 왔던 관객들의 평면적 감각을 입체적으로 확장시킨 기술에 있었다. 붙박이 스크린에 국한되었던 영상 체험이 3차원적 공간 체험으로 확장된 것이다.

    ‘체험의 확장’. 도시 디자인이 놓쳐선 안 될 아이콘이다. 생산과 소비의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으로 구성된 근대 도시는 오래도록 빈곤과 범죄의 그늘을 아울러 왔다. 이제 도시는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터이면서 동시에 쉼터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도시 설계는, 시민들이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접속해서 즐길 수 있는 인터페이스 환경을 구축하는 일에 신경 써야 한다. 시민들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도시를 체감하거나 도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 지역에 KTX가 들어온 지 반 년이 지났다. 그러나 곳곳에 번듯하게 지어올린 역사(驛舍)는 규모만 커졌을 뿐 기능은 이전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는 표를 끊고 제 시간에 열차를 타고 떠나면 그뿐. 만약, 역 광장에 ‘미디어폴’이라도 하나 세웠더라면 어땠을까? 미디어폴에 내장된 카메라 앞에서 연인들이 다정스레 사진을 찍으면 창원시청 옥외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영상을 띄울 수도 있다. 이 영상을 접한 시민들은 생방송을 진행 중인 라디오 DJ에게 신청곡과 함께 그 감상을 전할 것이다.

    아이들은 뒷날, KTX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으로 어린 날의 한때를 추억하고, 창원을 찾은 관광객들은 떠나기 전, 창원의 여러 풍경들을 미디어로 전송해 계절마다 서로 뽐내기 경연을 벌일 수도 있으리라. 시심이 동한 이들이 거기에 몇 줄을 보태면 ‘창원’을 테마로 한 스토리가 마련될 것이고, 해마다 그렇게 뽐내기 대회에서 1등을 먹은 사람에겐 명예 창원시민상을 수여하자.

    언제부터인가 시내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버스 도착 알림 모니터도 아쉬움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시간이 안 맞는 건 예사고 고장 난 것도 여럿이다. 더 심각한 건 이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창원의 역사나 문화를 담은 곳이라면 그 앞의 버스정류장에는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스토리보드를 마련하면 어떨까? ‘성산패총’ ‘3·15기념탑’ ‘국립 3·15민주묘지’ ‘마산왜성’ ‘월영대’….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생활 속에서 창원의 역사를 익힐 것이다. 상남동, 중앙동 같은 번잡한 도심이나 성주동, 대방동 같은 아파트 밀집 지역엔 그곳의 20년, 30년 전 모습을 걸어두는 것도 좋으리라. 버스를 기다리는 토박이들은 옛 추억에 젖을 것이고, 어린 학생들은 개발 전 동네를 상상할 것이다. 신마산 댓거리에 파도가 출렁였고, 해안도로가 ‘가고파’의 남쪽바다였음을 요즘 애들은 알까?

    미래도시 디자인은 번듯한 외관에만 치중하는 ‘공간’ 디자인이어선 안 된다. 그 도시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시를 체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 디자인에 맞춰져야 한다. 그것이 ‘인터페이스 도시’의 참된 면모이다.

    차민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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