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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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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환상(幻想)으로의 초대- 이부용(시인·영문학 박사)

  • 기사입력 : 2011-06-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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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살아가는 것이 덧없고, 허무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세상을 살 만큼 살아왔고 세상을 어지간히 아는 사람들의 말이다.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금방 끝나버리는 듯해 보이는 삶과 그 왜소함의 체감 때문일 것이다.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은 썩어가기 마련이므로 그 안의 물고기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이 요구되듯이 허무에 빠진 사람들이 현실세계에 제한된 고정관념의 웅덩이에 계속 머물고 있을 때 삶에 파고드는 허무의 병을 감당하기 어렵다.

    필자는 이 아침에 나 자신은 물론 이들을 위한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해본다. 풍요로운 환상으로 삶의 폭을 확장시킴으로써 허무를 치유하자는 것이다.

    스페인 극작가 칼데론은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 연기와 모든 세상사는 단지 신의 눈 밑에서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말한다. 신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운명의 끈을 쥐고 있다는 견해이다.

    교회에 가면 이 운명의 끈에 구속되고자 모여든 사람들의 머리가 수많은 무덤을 이룬다. 인간이 가지는 잡다한 오만을 죽여서 신의 은총으로 거듭나려는 믿음이 호수처럼 고요하다. 그래서 영원히 산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적어도 현실세계에 머물 때 신의 이런 약속이 비록 없을지라도, 불안해하거나 우울한 안개의 장막을 걷어내는 실존적 대안을 떠올린다. 환상이다.

    인간의 육신은 일정한 모습으로 묶여 있지만 무한한 사고의 자유에서 가지는 환상이 육체의 유한성을 극복하게 하는 인간의 조건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의 날개를 달고 있다고 할까.

    환상의 엉뚱함 속에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내는 진리가 숨어 있다. 달걀을 세울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매어 있는 사람들 앞에서 달걀의 밑 부분을 깨뜨려 바로 세우는 엉뚱함을 연출한 콜럼버스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달걀은 절대로 바로 세울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오늘날 거대한 문명은 물론 위대한 예술 또한 바로 이 환상의 본질인 발상의 전환으로 이끌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든 예술이 미학을 창출하듯이 특히 시는 엉뚱한 생각으로 엉뚱한 언어들을 조립하여 환상적 미학을 낳는다.

    미당 서정주는 밤하늘에 뜬 초승달을 보고 지은 그의 시 ‘동천’에서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 걸어 놓았다”고 했으며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병든 문명의 거리를 “노란 안개의 거리”로 둔갑시킨 것, 이 모두가 다 엉뚱한 환상에서 이끌어낸 시를 통해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살아가는 마음이 뻥 뚫린 허무의 병을 물질적인 풍요라는 항생제가 해결하지 못한다.

    타인이 엉뚱하게 끌어낸 환상을 음미하거나 스스로의 환상적 태도를 통해 자가 치료를 실행해 보자.

    우리는 짧은 인생을 한탄할 필요도 없으며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없다고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제한된 인식의 범주 내에 머물고 있어서는 우울함이 늘 스며든다.

    이제 그 우울함을 닦아내자. 환상의 날개를 펴고 날아 현실세계의 영역을 확장시킴으로써 새로운 신비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늘 찾자.

    가령 길을 걷다가 발이 돌에 차일 때 아프다는 느낌만으로 지나쳐 버리지 말고 ‘이놈, 나를 사랑하는 모양이지?’라고 돌에게 농을 던짐으로써 비로소 돌이 싱긋이 미소 짓는 새로운 세계의 기쁨을 만날 것이다.

    시공을 무궁무진하게 확장시키는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침내 죽음 자체도 현실세계의 확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부용(시인·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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