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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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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내 인생의 멘토, 그 사람은- 원은희(시인)

  • 기사입력 : 2011-07-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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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아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을 아는가는 더 중요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 즉 멘토(Mentor)가 우리 곁에 있다면 인생의 의미는 더없이 풍요롭고 깊어질 수 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함석헌의 시가 뒤통수를 한 대 치고 가던 날, 내 가슴은 뜨끔했었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선뜻 답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무대에서,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이나 삶의 전환점에서 서성일 때 나의 손을 잡아주고 격려해줄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챙겨야 할 사람이 더 많았다. 혼자서는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장벽 앞에서 끝없는 물음으로 서성일 때도 ‘그 사람’은 없었다. 해서 서둘러 사랑이라는 환상을 좇아 결혼을 했는지 모른다. 시처럼 아이를 낳으면 그 고독감과 적막이 사라지는 줄 믿었었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더 외롭고 쓸쓸함의 옷을 껴입고 있으니 어쩌랴. “우적우적 밥을 먹을 때도 식어버린 커피를 마실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이라는 문정희의 시구처럼. 쓸쓸은 되레 더 뜨겁게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내 고향 사천은 바다에 삶을 의탁한 사람들이 많은 어촌이다. 떠올리면 늘 가슴 한켠에 비릿한 갯바람이 불고 푸른 물결이 출렁이며 밀물져 오는 곳이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도시를 다니며 그 고향도 차츰 마음에서 멀어져 가던 어느 날, 유년의 고향이 TV화면에 오버랩됐다. 그를 본 순간이었다.

    그와 나는 유년을 함께한 죽마고우다. 세 집 건너 이웃한 그는 줄줄이 딸들만 있는 틈바구니에서 외아들로, 나는 첫딸로 태어나 초등시절을 함께 보냈다. 어머니들 또한 자연 가깝게 지낸 이웃이었다.

    가족들의 귀염과 사랑으로 시작된 그의 탄생의 기쁨은 네 해를 넘기지 못했다. 굴을 따러 바다에 갔던 그의 어머니가 물귀신이 되면서 그 또한 찬밥 신세가 됐다. 새어머니가 낳은 여동생이 늘어나면서 그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내게도 덩치 큰 바보처럼 각인돼 있는 그였다.

    순둥이에 키만 커서 늘 친구들의 놀림에도 화낸 적이 없는, 우직하고 순진했던 그가 마라토너가 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을 걸고 어린 시절 추운 들판을 달릴 때처럼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의 새어머니는 혹한의 겨울에도 십 리가 넘는 곳으로 매일 심부름을 보냈단다. 살을 에는 칼바람 속을 그는 홑바지에 양말도 없이 바람처럼 달렸단다. 허허벌판을 가로지르며 추위를 잊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단다. 그에게 마라톤은 설움과 추위와 차별의 벽을 허물기 위한 자기검열의 세월이었으리라.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뽑아 축복의 바탕으로 수놓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전율 같은 것이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남보다 덜 가지고 덜 누리며 살아도 저마다의 인생의 좌표는 자유롭듯이 20여년 전, 한국마라톤 1위의 영예와 2연패의 신기록 진입을 이뤄낸 쾌거는 그의 자유의지가 빚은 빛나는 훈장이었다.

    한국 마라톤계의 한 획을 그은 그는 지금은 체육교사로 후학을 길러내고 있다.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어릴 적 얘기가 그의 무용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새어머니로 인한 상처가 남아있을 만한데도 그런 혹독한 내침이 자신을 단련하는 원동력이 되었단다. 오늘의 마라토너가 되게 한 새어머니가 늘 감사하다는 그를 보며 긍정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존재, 더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묶어두려 한다. 종교를 믿는 일이나 위대한 인격을 흠모하는 일 등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가 시를 쓰는 일 또한 그래선지 모른다.

    누군가 시는 눌린 자의 몫이라 했다. 미래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나는 격정의 싹을 시 쓰며 다시 태어나고 싶다. 자신의 한계를 마라톤으로 극복한 그 친구의 심저에 깔린 격정을 통해, 내 혼이 찬란하게 광채를 발휘할 시인으로서의 분투를 생각한다. 반항할 수밖에 없는 현실, 권위, 억눌린 삶 등이 내 인생의 멘토, 그 사람이 아니었을까도.

    원은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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