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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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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선임, 멘토의 자격- 이주언(시인)

  • 기사입력 : 2011-07-2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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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부대의 잇단 사고로 인해 걱정이 많다. 특히 두 아들을 동시에 군대에 보내놓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들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뉴스에서 그런 보도가 나오면 먼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군의 환경이나 복지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모욕을 주고받는 감정의 되물림은 아직 면치 못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집단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적 신뢰임을 인지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군대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를 상명하복의 관계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부대 내에서 ‘병사 간의 계급은 명령복종 관계의 지표가 아니다’라고 교육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임병사는 후임에게 과대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상명하복의 관계가 아니라 멘토의 위치에 있음에도 후임 병사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업무시간 외에도 같은 내무반에서 늘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후임병사의 일거수일투족은 선임병사의 감시체제 안에 있는 셈이다. 이등병이나 일등병은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자신의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선임이 해야 할 일까지 도맡아서 해야 한다. 그것도 직접 지시하지 않고 교묘하게 실행하도록 만드는데, 선임의 일을 해주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일을 끝내고 달려가서는 항상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어야 된다고 애초부터 교육을 시킨단다. 게다가 후임병사가 모든 일에서 입 속의 혀같이 굴지 않으면 교묘히 심적으로 괴로움을 주는 선임도 있어 더욱 적응하기 힘든 경우도 있단다.

    우리나라 군대의 이런 악습은 옛날부터 너무나 당연시되어 왔다. 전쟁의 위협 속에서 긴장을 늦출까봐 생겨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악습이 일제의 잔재라고 하니 더욱 씁쓸하다. 선임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인 경우 ‘유사시에 선임부터 쏘고 전쟁에 나가겠다’는 말이 도는 곳도 있다니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물론 선임병사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웬만한 인격을 갖춘 선임이라도 이런 악습의 유혹에는 쉽게 빠진다고 하니 이는 우리 군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금의 젊은이들을 아버지 세대의 군 환경에 던져놓고 견뎌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민간사회와 군대생활과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적응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 격차를 좁혀 주는 데는 국가의 역할이 클 것이다. 이 악습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주지 못하면 대대로 이어져 갈 것이므로 국가뿐만 아니라 군 관계자와 장교, 그리고 병사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대에서의 왕따현상도 이런 체제 속에서 생기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한 병사가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상관이 직접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 아랫사람은 또 자신의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이런 식으로 질책이 이어지다 보면 다수가 그 일에 연루되어서 사소했던 일이 집단적 성향으로 변한다고 한다. 물론 왕따를 당하는 병사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더더욱 상관과 동료의 배려가 필요하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랑 똑같을 수는 없다. 제각각의 색깔을 지닌 사람들끼리 한 시대 한 장소에서 어울려 살려면 남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군에 가기 전의 아들과 군인으로서의 아들, 제대 후 아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지만 역지사지의 마음이 가장 필요한 지점에 던져져 있는 것 같다. 군 생활이 결코 인격의 파괴와 단절, 격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힘들어하는 내 아들은 선임이 되면 군의 악습을 꼭 끊고 후임들에게 훌륭한 멘토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후임이 많아질수록 악습의 고리를 끊을 희망은 커진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이룰 수 있도록 군 당국에서도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후임들이 선임의 자리에 섰을 때 자신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 군의 미래가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이주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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