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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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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41세에 '실천문학' 대표이사 된 손택수 시인

“30년전 실천문학 초심 돌아가
변방의 정신으로 변방과 호흡
젊은 작가들의 놀이판 만들겠다”

  • 기사입력 : 2011-08-0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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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택수 실천문학 대표가 부산교육연수원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올봄 중앙 문예지 출판사에 화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40대 초입의, 지역출신에다, 지역대학 출신의 한 문인이 진보문예지인 ‘실천문학’ 대표이사를 맡았다.

    지역출신이 못 되란 법은 없지만 화제가 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시인인 손택수(41) 대표이사는 전남 담양 출생으로, 부산에서 주로 성장했으며, 경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스스로 ‘변방출신’인 그를 7월 하순 부산의 한 강연장에서 만나 실천문학의 포부와 미래 등을 들었다.



    손택수 대표가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실천문학 대표이사 손택수

    “변방의 정신으로 돌아가 리얼리즘을 되살리고 젊은 세대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겠습니다.”

    손 대표는 실천문학을 문단 내 지형으로 보면 변방에 있다고 했다. 지금은 출판사도 자본에 의해 재편되어 상업성이 강조되고 색깔 없는 문예지가 난무한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실천문학이 30년 전 창간 당시의 무크지 정신으로 돌아가 고여 있는 문단에 균열을 내겠단다. 리얼리즘을 소멸된 미학쯤으로 취급하고, 폐기처분해야 할 미학으로 인식하는 요즘 그것을 불러내어 새롭게 조명하겠다는 당찬 포부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자본에 의해 젊은 세대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광장에서 밀실로 들어간 1990년대와 2000년대 작가들을 다시 광장으로 나와서 놀도록, 그 놀이판을 실천문학이 맡겠다는 것.

    그는 그 희망을 체험하고 확신하고 있다. 밀실에서 견디다 못한 젊은 작가군들이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미학적 자폐성에 매몰된 줄만 알았던 그들이 현장으로 나오고 있고, 그것이 실천문학의 미래이자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6·9선언작가모임이 희망을 얘기하며 움직이고 있고,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버스에 그들이 탑승하기 시작했다.

    실천문학 30년을 묻자 할 말이 많다. 그는 실천문학의 정체성을 민중문학, 진보문학, 리얼리즘이라고 했다. 실천문학은 198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로 출발했다.

    “문학의 실천화, 실천의 문학화, 키워드는 실천운동이다. 출발 당시의 모토다. 작가들이 현장에서 활동하고 옥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난의 시절, 실천지성들이 실천문학에 모였다. 문인뿐만 아니라 영화계, 무용계, 민중가수 등 실천지성들이 모이는 문화계의 중요 매체였다”고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실천문학에 대해 반성도 했다. 실천문학조차도 사회현실과 인접 인문학으로부터 고립되었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친일문학과 북한문제에 집중하면서 현장과 틈이 벌어졌다.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실천운동의 가치를 북한과 통일, 생태문학 연구에 뒀다. 지금은 현실 속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고 그 부분에 더 집중해야 된다”고 했다.

    1990년대 들어 민중에 대한 개념이 흐릿해질 때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

    “변화된 현실 속에서 자본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했다. 2000년대는 문학 중심으로 초점화하면서 장(場)이 좁아졌다”면서 “그 반성으로 우리 삶 속에서 문학을 찾자는 것이다”고 했다.

    사회과학 담론 제공과 작가적 자유를 주장하는 그에게 유의미한 제안이지만 쉽지 않은 과제라고 했더니, “실천문학식으로 하겠다. 실천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담론, 즉 변방의 정신으로 변방을 대변하겠다. 중심이 아니라 변방과 함께 호흡하면서 감동을 찾아내겠다. 문학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고 답했다.

    “문학이 헤게모니를 쥐던 시대는 갔다. 여러 장르로 분담되었다”고 진단한 그는 문학의 지향성도 “문단의 제도적 틀이 중요한 시대는 아니다. 개인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제도의 틀에 기대는 문학은 빨리 결별해야 한다. 작가 한 사람이 문단이고, 시인 한 사람이 시단인 시대”라고 보았다.

    그에게 문학과 진보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문학은 가장 근본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 많은 사람들이 그리움을 잃고 있다. 지향하면서 있어야 될 당위에 대한, 꿈꾸어야 할 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움을 복원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실천문학의 자리다. 마음을 잃어버리면 무엇을 세우겠나. 문학이 생활 속에서 공동가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손 대표가 취임하면서 실천문학은 이사진과 편집주간도 젊은층으로 진용을 새로 꾸렸다. 세대교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새로운 세대와 변화된 세계에 교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생존에 대한 열망입니다. 이대로는 존재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죠. 자본에 의해 문학은 정체되었고, 새로운 작가들은 진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단은 이미 자정능력을 잃었습니다. 자정능력을 되살리려면 비판정신이 살아나야 합니다. 실천문학은 빚진 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소리를 낼 수가 있습니다.”

    경영위기가 실천문학의 변화를 가져온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회사를 이끄는 대표이사로서 쇄락하는 인쇄매체에 대한 돌파구를 물었다.

    “인쇄매체의 생명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쇄매체는 육체의 감각에 비유하고 싶다. 몸의 감각에 대한 향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인터넷 공간에 들어가도 몸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속과 단절은 같이 간다. 단절에 대비해야 한다. 전자북의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여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도 역시 쉽지는 않다고 고민의 일단을 비쳤다. 




    ◇ 시인 손택수

    손택수 시인은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호랑이발자국’ ‘목련전차’ ‘나무의 수사학’ 등 시집이 있다.

    현실과 접점을 잃지 않으며,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서정성을 잘 살려내 한국 서정시의 본령을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풍을 보면 진보나 실천문학과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고도 실천문학에서 기획위원 2년, 기획실장 2년, 편집주간 1년을 근무했다.

    시인은 “그만큼 실천문학의 폭이 넓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탄력적인 진보다. 각이 선 진보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마산의 체험도 소개했다. 25살 늦깎이로 대학생이 되어 가포와 현동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당시 지역의 저항적, 무정부주의 세대들의 세례를 충분히 받았다고 했다. 생래적으로 저항성이 있었다. 지역에서 문청동인들과도 같이 활동했다.

    장자의 천지편(天地篇)을 인용하면서 시인으로서, 실천문학 대표이사로서의 자세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노인이 밭에 힘들게 물을 길어 나르자 자공이 왜 용두레를 쓰지 않소라고 물었다. 노인은 용두레를 몰라서가 아니라 제 마음에 편리함만 좇아 정신과 본성이 안정되지 않을까봐 걱정이 돼서 그런다고 답했다. 대지와 접착을 놓지 않으려는 노인의 노력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글= 이학수기자 leehs@knnews.co.kr

    사진= 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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