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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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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장두노미(藏頭露尾)- 여환부(대한건설협회 경남도회장)

  • 기사입력 : 2011-08-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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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두노미(藏頭露尾). 맹수에게 쫓기던 타조가 갈 길을 잃자 머리만 덤불 속에 처박고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한 채 쩔쩔맨다고 해서 생겨난 말로 진실을 숨겨두려 하지만 그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일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한 건설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도내 지자체에서 발주한 공사에 낙찰이 되었단다. 그런데도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낙찰 한 건 받기가 얼마나 힘든 시기인데…’ 싶었으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마음이 금세 사라졌다. 공사내역을 검토해 보니 거의 절반 정도 손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같은 지자체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고도 했다.

    건설업은 천수답과 같다고들 한다. 비가 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천수답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업체들은 관(官)에서 공사를 발주해야만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건설업체에게 공공기관 공사는 그만큼 절대적인 존재와 같다는 뜻이다.

    이처럼 영향력을 가진 관이라 할지라도 공사비를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가를 비롯한 각종 경비를 계산해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방법도 정해져 있고 낙찰자를 선정하는 기준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소건설업체들의 공사비 부족에 대한 하소연이 증가하고 있다. 발주처와의 관계를 우려해 쉬쉬하던 종전과는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입찰 한 번 잘못 들어갔다가 수천만원씩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니 조용히 덮으려 들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주민 복지와 관련된 공사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부족한 예산으로 최대의 편익을 내어야 하다 보니 그 피해가 고스란히 건설사에 돌아가는 것이다. 이윤은 처음부터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적자를 보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손실이 예상되더라도 대부분의 건설업체는 공사를 강행한다. 낙찰자가 계약을 포기할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부정당업자’로 분류되어 입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향후 발주될 지자체 공사에 참여를 제한받는 등의 불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발주기관과 껄끄러워져 봐야 좋을 것 없다는 생각 역시 이런 현상에 한몫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온 업체는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잘잘못을 따질 작정이었다. 소송 등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사비 부당 삭감이 정당한 계약 포기 사유가 아니라면 무엇이 정당한 사유냐”며 억울해 했다.

    적정 공사비가 반영되지 않으면 미숙한 시공기술자가 저급자재를 사용해 날림공사를 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유지·관리·보수에 소요되는 비용이 늘어날 것이고, 국민들은 불편하고 불안한 시설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절약하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시설물에 예산이 부족하게 반영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의 몫이 된다. 건설업계가 적정 공사비를 계상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두에 언급한 타조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굶주린 맹수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공사비 부족도 마찬가지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그대로 발주했다간 나중에 더 큰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 피해를 해결하려면 또 비용이 소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예정가격 작성시 최신 표준품셈에 따라 물량을 정확하게 산출하도록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그간 아쉬움이 많았던 정책의 미비가 다소간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아 한시름 놓인다. 이번 조치로 제값 주고 제값 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건설문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부실시공의 해결책을 찾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여환부(대한건설협회 경남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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