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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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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창원 숲속나들이길

경남의 길을 걷다 (27) 창원 숲속나들이길
독수리 바위·춤추는 소나무·시원한 계곡…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눈도 마음도 즐겁더라

  • 기사입력 : 2011-08-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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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숲속나들이길은 숲이 울창해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의 시원한 길이다. 한 시민이 초록빛으로 그늘진 비목나무 군락지를 걷고 있다./김승권기자/

    최근 잦은 비로 숲속나들이길의 계곡은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낸다. 한 시민이 용추계곡을 가로지르는 용추5교를 건너고 있다.



    김훈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의 주인공은 스물아홉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민통선 안 국립수목원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일을 한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타인들을 피해 숲으로 숨어들었다고나 할까. 고요한 숲 길에서 각종 나무와 꽃을 관찰하면서 그녀는 숲이 태어나고 소멸하는 과정이 사람의 일생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 길 위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 그녀는 서른이 되는 이듬해 봄, 조용히 수목원을 떠난다. 숲속나들이길을 걷는 내내 '내 젊은 날의 숲'의 주인공 생각이 났다. 그녀가 가로질러 걷고, 때로는 앉아서 오래 쳐다보았을 그 숲도 분명 이렇게 아늑하지 않았을까 하고.


    숲속나들이길은 창원시 의창구 명곡동 태복산에서 웅남동 산성산을 잇는 연장 71.4㎞의 기나긴 길이다. 이 길은 말 그대로 ‘둘레’길인데, 창원시를 에워싸고 있는 가장자리 산들을 연결한 숲길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구간은 정병산 아래 사격장 뒤에서 성주동 대암산 평바위까지 15.4km, 두 번째 구간은 명곡동 태복산 체육공원에서 창원사격장을 잇는 8㎞, 가장 긴 세 번째 구간은 성주동 대암산 평바위에서 웅남동 산성산까지의 48㎞, 이렇게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이 길은 아직 제 모습을 다 갖추지 못한 미완성이다. 얼마 전 공사를 끝마친 첫 번째 구간만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고, 두 번째 구간은 현재 조성 중이며, 세 번째 구간은 내년에 공사를 시작해 오는 2014년에 완성될 예정이다. 탐방팀은 누구도 찾아가보지 못한 처녀지를 탐방하는 개척자가 가질 법한 호기로움으로 사격장주차장에서 용추5교를 지나 괴산약수터로 빠져나오는 7㎞ 구간을 이번 탐방길로 정했다.




    ▲사격장약수터

    탐방팀은 창원시 의창구 퇴촌동에 자리한 창원사격장 뒤편 등산로를 따라 숲속나들이길을 찾아들었다. 숲속나들이길은 사격장에서 1.2㎞ 떨어진 사격장약수터에서 시작된다. 자가용을 가지고 왔을 경우 사격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표지판을 따라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된다. 약수터를 거쳐갈 수도 있고, 지나쳐서 바로 정병산의 허리춤에 오를 수도 있다. 이정표가 길 곳곳에 설치돼 있어 지금 어느 위치를, 얼마나 걸었는지 수시로 알려줘 구간과 시간을 조정하기가 용이하다. 약수터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걷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깊은 골을 이루며 길 위를 흐르는 계곡을 만난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계곡물이 유난히 세차고 맑다. 손을 한 번 담가 본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시민들이 편백나무 숲을 걷고 있다.


    ▲편백나무 군락지

    계곡을 지나 만나게 되는 길은 숲속길답게 각종 활엽과 침엽수림이 양옆으로 우거져 강한 햇빛을 가려준다. 비목나무, 떡갈나무, 느티나무, 굴참나무 등 아름다운 모양과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 군데군데 숲을 이루고 있다. 그중 가장 크게 군락을 이룬 편백나무가 산 중턱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등산객들의 쉼터가 되어 주고 있다. 탐방팀이 길을 걸은 날도 평일 점심때쯤임에도 비교적 많은 등산객들이 편백림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거나 텐트를 치고 담소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편백림을 지나 걷는 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무 사이사이로 창원대학교와 법원에서부터 성산아트홀과 높은 굴뚝이 우뚝 선 공업단지까지 창원 시가지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독수리바위

    사격장약수터로부터 1.5㎞ 정도 떨어진 곳에 다다르면 돌연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바위 하나가 창원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아래쪽으로 여러 크기의 바위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그 위를 넝쿨이 촘촘이 피어올라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범상치 않은 모양의 바위 이름이 독수리바위란다. 곧 산 전체가 활개 치며 날아오를 듯하다. 간신히 독수리를 잘 타일러 정병산 자락에 주저앉힌 후 다시 길을 나선다. 독수리바위처럼 돌이 많은 곳 부근에는 어김없이 자그마한 돌탑을 만나게 되는데, 탐방팀도 각자의 소망 하나씩 탑 위에 다소곳이 얹어두었다. 숲이 우거진 길 곳곳에서 좁지만 깊은 골짜기를 지날 수 있게 마련된 목재다리를 만날 수 있다. 몇몇 다리 아래로는 산 정상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물로 자그마한 계곡을 이룬다.


    ▲팔군무송(八群舞松)

    독수리바위를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팔군무송이라는 지점을 만난다. 김복근 경남문인협회장이 쓴 ‘비바람 눈보라의 역경을 이겨낸 여덟 소나무 푸른 하늘을 바라섰다. 휘늘어진 가지 제 흥에 겨워 환희의 춤을 춘다. 이를 일러 팔군무송이라 이름한다’는 푯말 뒤로 정말 여덟 그루의 수려한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니 과연 그 형상이 춤을 추는 듯하다. 이 지점에도 등산객들이 쉴 수 있는 마루와 벤치가 여러 개 설치돼 있다.





    시민들이 창원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월유정 구간을 걷고 있다.


    ▲월유정(月遊亭)

    소나무의 춤사위를 감상한 후 다시 길을 나서자 연이어 탁 트인 산마루가 나온다. 이곳에는 정자형의 쉼터를 마련해 두었는데, 이 쉼터의 이름은 월유정. 이름 그대로 달도 머물다 갈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 보이는 정자라 붙은 이름이란다. 바로 아래쪽으로 창원대학교 운동장과 기숙사를 비롯한 학교 부지 전체가 보인다. 숲속나들이길 자체가 정상 가까운 등산로 아래의 낮은 능선을 따라 조성한 길이라 시가지와 건물들이 비교적 가깝게 보인다.



    숲속나들이길에 설치된 詩 명판.

    ▲용추5교

    월유정을 지나면 사격장으로부터 3㎞ 정도 걸은 셈이다. 여기서 용추 5교까지 다시 1.5㎞를 걷는다. 이 길 중간중간에는 시(詩) 명판이 설치돼 등산객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강은교, 곽재구, 정끝별, 정호승, 안도현, 정일근, 복효근 등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서정시인들의 명시를 목판에 새겨 두었다. 또 나무 사이사이로 정병산 아래에서 한창 공사 중인 국도 25호선의 전체적인 윤곽도 관망할 수 있다. 이 길은 정병산 능선을 넘어 비음산에 접어드는 길로 용추5교를 중심으로 크게 굴곡을 그린다.

    조금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어디선가 시원한 물소리가 골 깊은 쪽에서부터 들리기 시작한다. 서늘한 냉기도 감돈다. 과연, 곧 용추폭포가 시원스레 흘러 내리고 폭포를 가로지르는 다리인 용추5교가 나온다. 탐방팀이 다리에 다다랐을 때, 곳곳에 등산객들이 쉬고 있었다. 나들이길을 걷는 등산객답게 간단한 간식을 싸와 나눠먹거나 시원한 물가에서 달콤한 오수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다리를 건너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왼편의 오르막길인 등산로로 길을 잡으면 진례산성 남문을 향하게 된다. 진례산성 남문 길을 걷는다 해도 2.2㎞ 정도의 산길을 걸어 괴산약수터에서 다시 숲속나들이길과 만나게 되므로 어느 길을 선택해도 무방하다.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에는 진례산성 남문으로 가는 길이 특히 가을철에 좋다고 하니, 올가을 단풍이 고운 날 걸어 보기로 기약한다.



    ▲괴산약수터

    용추5교에서 오른편 길로 2.5㎞를 더 걸으면 괴산약수터가 나온다. 평탄한 산책길인 숲속나들이길도 이 구간만큼은 산길답게 가파르고 험해 등산을 한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비가 온 후에는 땅이 질어서 미끄러우므로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약수터 위쪽으로는 비음산 정상, 아래로는 고산신덕마을, 앞으로 재치고개와 토월공원이 자리해 있다. 이곳에는 맑고 시원한 물뿐 아니라 여러 가지 운동 기구도 구비돼 있어 인근 주민들이 운동이나 산책을 할 때 애용하는 장소다. 거꾸로 괴산약수터를 시작으로 사격장까지 걷는 것도 좋고, 철쭉이 피는 5~6월에는 괴산약수터에서 출발해 진례산성 남문을 거쳐 비음산 정상에 올랐다가 포곡정을 통해 다시 괴산약수터로 내려오는 4㎞ 정도의 구간도 좋다고 하니 계절마다 숲속나들이길과 연계된 등산로 여러 곳을 구간별로 나누어 걸어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될 듯하다.

    괴산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후 고산신덕마을을 통해 산을 내려오면 도로변에 활짝 만개한 무궁화와 목을 툭툭 꺾은 능소화를 볼 수 있다. 남자인 김훈이 스물아홉의 여성으로 분해 숲의 일생을 화폭에 담으며 깨달았을, 타인에 대한 용서와 이해를 조금은 알 듯 싶었다. 주인공처럼 삶의 무게에서 놓여나고 싶을 때, 나무와 꽃, 나비와 바위를 오래 들여다보고 싶을 때 ‘내 젊은 날의 숲’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숲속나들이길을 찾아오자.

    창원의 대표적인 산 정병산, 비음산, 대암산의 중턱을 연결한 숲속나들이길. 머지않아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공되어 무학산둘레길, 저도비치로드, 진해드림로드와 함께 창원의 명품 둘레길이 되기를 바라 본다.


    글=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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