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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남지 낙동강 개비리길

경남의 길을 걷다 (29) 창녕 남지 낙동강 개비리길
낙동강변 벼랑 따라 굽이굽이 오솔길
저 멀리 추억 깃든 남지철교 아스라이…

  • 기사입력 : 2011-08-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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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 낙동강 둔치에 조성된 공원. 멀리 등록문화재 145호로 등재된 파란색의 남지철교와 빨간색의 새 남지교가 보인다.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에서 영아지에 이르는 개비리길은 강변 절벽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다.
     

    낙동강 1300리 중에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혹자는 이 길을 낙동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하고, 혹자는 인근 마을 주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안동 하회마을을 감싸듯 휘돌고 있는 구간은 강과 절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면 낙동강 개비리길은 유유히 흐르는 강과 나란히 오래도록 길을 걸을 수 있고, 경관도 수려해 아름다운 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걷기에 불편함이 없을 만큼 간간이 비가 내린다.

    개비리길은 당초 창녕군 남지읍 용산마을서 영아지마을(조금만 더 가면 창아지마을이 있다)을 잇는 4㎞ 구간이다. 둘레길이 아니어서 다시 이 길을 오면 8㎞, 20리가 된다.

    그러나 10년 전 낙동강 제방공사로 인해 둔치가 잘 정비돼 있어 남지읍 남포동 둑방길에서 걸어도 좋다. 재방 구간은 2㎞쯤 된다. 제방공사로 인해 생긴 낙동강 둔치는 단일 규모로 국내 최대를 자랑하는 40만㎡ 규모의 유채밭이 조성돼 있고, 오토바이 경기장과 야구장, 운동장 등이 있다. 봄이면 노란 유채밭과, 여름이면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한 낙동강을 감상할 수 있다.

    유채밭 중간쯤에 등록문화재 145호로 등재된 남지철교가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이 철교를 한 번쯤 걸어보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지만 답사를 마친 이틀 후 2번 교각 일부가 내려앉아 걸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하류 쪽으로 내려가면 함안보가 나온다.

    개비리길의 시작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용산마을이다.

    자동차는 마을 입구에 세워둬야 한다. 영남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농어촌개발공사의 용산양수장 인근에 차를 세워둘 수도 있지만 마주 오는 차와 만나면 교행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길 초입 좌측에는 강에서 파낸 흙인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대형 굴착기의 소음이 귓전을 울린다.


    옆마을로 팔려간 짝 못잊던 견공

    그리운 얼굴 보고싶어 찾아가던 ‘개비리길’

     
    발 밑 아득한 벼랑길엔 바위가 울퉁불퉁

    그 옛날 아이들 자전거 타고 학교 다녀

     
    이제는 폭 좁은 구간 조금 더 넓혀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길 됐으면…



    사실상 인적이 끊긴 이 길은 잡초가 우거져 있다. 영아지마을 사람들이 이 길 대신 박진 쪽으로 새로 뚫린 도로로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낙동강변의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굽이굽이 좁은 길이 이어지는 이 절벽에 오솔길이 나게 된 전설이 아름답다.

    옛날 영아지마을의 어느 집에서 키우던 개가 용산마을로 팔려가 헤어진 여자 친구를 만나러 다니면서 길이 나게 됐는데 개가 처음에 낸 길이라 해서 개비리길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또 원래 ‘개비리’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이 있다. 개는 ‘물가’를 뜻하는 말이고 비리는 ‘벼랑’의 이곳 토박이 말이다. 그러니까 ‘강가의 벼랑길’이라는 뜻이다.

    초입에서 이 길을 걷고 오는 부부를 만났다. 인사를 건네고 좋더냐고 물었다. 다 걷지는 못했고, 중간쯤에서 돌아왔는데 조용해서 좋았다고 했다.

    초입에서 20분쯤 걸으면 용수를 공급하는 용산 양수장이 나온다. 양수장 관리자도 외로워서일까. 흑염소 몇 마리를 키우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절벽길이다. 강에서 높이가 30~50m는 족히 되는 벼랑길이 계속된다. 벼랑쪽에는 소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많아 충분한 그늘을 제공한다. 멀리 굽이치는 강줄기를 감상할 수 있고, 뒤를 돌아보면 남강 끝자락이 보인다. 강 건너편에는 의령이다. 강 건너 마을은 강이 실어다준 모래로 제법 넓은 들을 만들고 있다. 산과 들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작은 마을들이 길게 이어지고 유난히 눈에 띄는 교회 건물이 마을의 평화로움을 더해준다.

    그러나 4대강 사업으로 강의 은빛 모래톱을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움이다. 계절적으로 모래톱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비가 많이 와 강물이 불어 있을 시기지만 그래도 강 언저리에는 간간이 모래톱이 있었다. 특히 갈수기의 모래톱은 그 자체로 일품이다. 만약 4대강 사업을 하기 이전 가을에 이 길을 걸었다면 그 찬란한 은빛 모래톱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 됐을 것이다.

    오물을 모두 강물에 씻겨 보내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오롯이 온몸으로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던 그 은빛 모래톱은 이제 볼 수 없다. 강바닥을 파고 보를 만들어 수위를 올리기 때문이다.


    탐방에 나선 지 30분쯤 지났을까. 보기 드문 파랑새 한 마리가 놀라 날아오른다. 파랑새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던가.

    용산 양수장을 지나 강에서는 조금 멀어지나 했는데 이내 벼랑길이 다시 시작된다.

    한 시민이 구름이 산위로 올라가는 풍경을 보며 걷고 있다.

    길 모퉁이에 고운 연분홍 봉선화가 활짝 피어 있다.


    밑을 보니 정신이 아득하다. 발가락도 간질간질한 것이 반사적으로 몸은 산쪽으로 붙는다. 오른쪽 산과 왼쪽 강과의 거리는 불과 1~2m.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영아지마을 중학생들은 10리 길이 더 되는 남지중학교까지 이 길을 용감무쌍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나마 좁은 길에는 바위가 울퉁불퉁 솟아나 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다녔을까. 길을 걷는 내내 신기했다.

    큰 강은 소리 내어 흐르지 않는다. 사색하며 길을 걷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듯. 울적하거나 심신이 피로한 사람이 이 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두에 이 길이 인근 주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라고 한 건 사실상 주민들이 이 길을 만들었다. 장비도 없는 시절에 곡괭이와 삽으로 바위길을 냈다.

    읍내로 다니던 오솔길은 오래전에도 있었다. 그나마 사람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일제시대 주민들이 부역으로 길을 넓혔고, 또 새마을운동으로 길을 한 차례 더 넓혔다고 마을사람들이 전했다.

    그런데도 길이 좁아 짐이 많을 때는 뱃길을 이용했다. 남지 장날이나 명절 때면 주민들은 배를 타고 장을 보러 왔다. 이곳 영아지·창아지마을의 비극은 어쩌면 지금은 찾지 않는 이 길에 연유한다.

    1970년대 초 추석을 앞두고 대목장을 보고 영아지로 가던 배가 남지철교 교각을 들이받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황씨와 차씨 집성촌인 이곳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추석앞에 마을 전체가 제삿날이다. 마을의 거의 모든 집에 같은 날 제사가 있는 이유다.

    이 길이 새삼 조명을 받는 것은 낙동강 사업 때문인데, 정작 이 길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길을 낸 마을 사람들보다 낙동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낙동강 사업의 적정성이나 찬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개비리길이 주목받는 것은 이분들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니 고맙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길을 절대 개발하거나 손대면 안 된다고 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길을 넓히면 자칫 이 길의 원형이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애초에 자연발생적인 길이 아니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낙동강 전 구간을 탐방해보지 않아 개비리길이 낙동강 1300리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길임에는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아지·창아지마을 사람들이, 남지 사람들이 이 길을 다시 오갔으면 좋겠다.


    한 시민이 용산양수장 옆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만든 그늘 아래에서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지점에 포클레인 등 중장비들이 낙동강사업 공사를 하고 있다.


    벼랑에 나무로 된 안전 난간을 만들고, 길에 솟아 있는 바위도 깨는 등 최소한의 안전시설은 필요하다.

    폭이 1m도 안 되는 구간은 조금 넓히고, 욕심 같아서는 이 길로 자전거 하이킹도 했으면 좋겠다. 계획에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길을 넓히기 위해, 벼랑이나 산자락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내고 산 절개지가 흉하게 드러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거기에 또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포장을 하는 무지막지한 사고를 치지 않을까 하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일제시대와 새마을운동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된 도로를 현시대에 맞게 최소한으로 정비했으면 한다. 기자 개인의 생각이나 주장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친구들과 이웃들의 말이다.

    이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디 이 길이 아름답게 정비돼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김용대·김병희기자 jiji@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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