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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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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1급 지체장애 치과의사 성제경

장애 딛고 얻은 새 삶, 이젠 ‘세상의 빛’이 되렵니다

  • 기사입력 : 2011-08-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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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급 지체장애 치과의사인 성제경 셀플란트치과 대표 원장이 전동휠체어에 탄 채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받은 은혜 이젠 이웃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무더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8월 말, 갑자기 찾아온 지체장애를 딛고 새 삶을 개척하고 있는 ‘세상의 빛’과 만났다.

    1급 지체장애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환자를 돌보는 성제경(55) 셀플란트 치과(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대표 원장이다.



    교통사고

    패러글라이딩과 스킨스쿠버를 즐길 만큼 활동적이었던 그가 휠체어에 몸을 의탁하게된 것은 교통사고 때문이다.

    사고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1996년 6월30일 오후 진해에서 부산으로 가던 도중이었다. 타고 있던 승용차가 커브길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그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차가 구르면서 의자와 분리되고 안전벨트마저 풀려 몸이 창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주변에 있던 등산객들의 신고로 구조돼 마산 모 병원으로 이송됐다.

    부상은 참혹했다. 목에서부터 복부까지 장기가 뒤틀리는 복합장기손상에다 양팔, 쇄골, 갈비뼈 13개가 부러지고 오른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데다 척추마저 손상됐다.

    “입원할 때 다들 성제경이는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도 척추를 다쳐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36번이나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만 18번, 중환자실에만 84일을 입원했다. 수술 중에 4번이나 뇌파가 정지되기도 했다. 그는 2년간 병실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죽음을 넘나드는 투병을 끝내고 세상과 마주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던 그는 휠체어를 타고 치과로 출근했다.



    재활, 재개원

    퇴원한 그는 사고 후 3~4년간은 집과 병원, 교회 3곳에만 집중했다. 두 다리를 쓰지 못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치과의사가 다리로 일하냐? 손과 머리, 입으로 한다”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까지 다리를 못 써 힘들거나 좌절한 적은 없다.

    그는 “다 지나고 보니까 하늘의 뜻이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치과는 생각보다 잘 됐다. 한번은 주변에서 그가 의사를 고용하고 진료는 하지 않는다는 투서가 들어와 보건소 직원과 언론사에서 출동하는 해프닝까지 빚었을 정도. 수술 도중 피묻은 손을 보여주며 이들을 돌려세웠다.

    30년 넘게 치과의사로 살아온 그는 환자의 고통과 동통을 내 것으로 알고 아픔을 공유해 몸도 마음도 함께 치료해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



    치과의사

    치과의사였던 아버지는 그에게 “너는 치과의사로 태어났다”고 늘 말했다.

    공부를 꽤 잘해 고시공부도 해봤지만 그는 숙명 같은 치과의사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교통사고 후 재기에 성공한 것도 치과의사 면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버지의 혜안 덕분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치과 일을 배웠다. 처음에는 병원 청소부터 했다. 일본에서 공부를 한 아버지는 도제 개념을 갖고 있어서인지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기공 등 여러 일을 가르쳤다.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1983년 대구에서 첫 개업을 했다. 보증사고 때문에 전 재산을 날렸지만 1990년 말 빚을 모두 청산했다.

    1990년 초 도지사 관사 앞에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집을 구했다. 네 식구가 추운 겨울을 옥탑방에서 지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았다.

    대전의 모 병원 과장을 거쳐 산청에서 1년간 개업을 했다. 당시 환자가 줄을 섰다고 한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도 근무한 뒤 1994년 창원시 성산구 반림동 한 아파트 상가에 치과를 개원했다.

    교통사고 후에는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성원주상가로 치과를 옮겼다. 2009년 환자들을 보다 안락하게 돌보기 위해 지금의 치과병원으로 확장이전했다.



    장애인으로 살기

    그는 지난 1월 휠체어에 의지해 택시를 타고 혼자서 12시간 동안 창원시내 백화점과 관공서, 학교 등을 돌아다녔다. 10㎝의 턱과 서너 개의 계단은 휠체어를 타고 넘기엔 너무 높은 성벽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도움으로 계단 위의 문을 지나 장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12시간 동안 도움을 받으며 500번이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돈 잘 버는 치과의사인 그에게 곳곳에서 손을 벌렸다. 처음에는 매번 도움을 줬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고민 끝에 장애인기본권 확보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정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장애인이 국방의 의무는 못하더라도 근로, 납세, 교육의 의무는 할 수 있어야 따뜻한 대한민국, 진정한 공정 사회입니다.”



    사회복지 운동

    1급 지체장애인인 그는 병원 밖에서 장애인의 고통과 고민을 공유하고 한 몸이 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사회복지 운동에 나섰다. 무료검진, 무료의치시술 등을 하며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삶의 지침으로 여겼다. 민주평통자문위원, 경남사회복지포럼과 사회복지법인 나눔 등 각계각층의 사회복지기관 활동을 통해 지역 복지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복지는 성장 뒤에 따라오는 보상이 아닙니다. 복지는 성장으로 인한 통증을 완화하는 안전장치, 새로운 성장을 가능케 하는 필요조건입니다.”

    성공했다고 스스로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생을 낭비하며 살지는 않았다는 그에게서 책임과 의무감으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었다.


    ☞성제경 원장 = 1956년 창녕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를 대구에서 다닌 뒤 조선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개업을 했다. 41세 되던 해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마비가 됐지만 장애를 짊어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대구에서 중등 영어교사로 있던 부인 김영숙(54)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부인은 현재 투자회사인 (주)포레스트 대표로 있고, 아들 기원(28)씨는 가톨릭대 생명공학부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준비 중이며, 딸 경희(26)씨는 가톨릭대 대학원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다. 성 원장은 시, 수필 등 글쓰기를 좋아해 성장과정, 교통사고와 재활 등을 담은 자서전을 올가을 펴낼 예정이다.


    글=김진호기자 kimjh@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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