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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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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보여 주는 노래- 민창홍(시인)

  • 기사입력 : 2011-09-0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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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학 중에 우리 반 아이가 서울로 전학을 갔다. 아이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 무엇인가 기를 불어넣듯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고는 “성공하고 첫 공연 때는 연락하라”고 격려했다. 그 아이의 장래희망은 연예인이다. 그것도 가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여고 2학년 아이가 홀로 서울행을 결심한 이유는 몇 군데 오디션을 거쳐 유명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담임교사로서 지켜보면서 정말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에 소위 뜨고 있다는 걸그룹이나 아이돌 가수가 되려면 춤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춤이 되는 아이를 선발해 거꾸로 노래를 연습시켜 가수를 만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노래가 되는 아이를 선발해 춤을 연습시키면 잘 안 되는 면이 있다고 한다. 아, 이 역설적인 발상으로 대중들이 열광하고 이웃나라 심지어 유럽까지 한류열풍에 휩싸이게 하는 K팝이 탄생하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가수라고 하면 적어도 노래에 자질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 학기를 가르치며 그 아이가 노래를 잘한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다. 제자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우리는 첨단의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당연히 첨단의 시대 한가운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까지 앞서가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조금 과장하면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취향에 맞추다 보니 듣는 노래보다 보여주는 노래의 열풍이 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수들은 조금 더 예뻐야 하고 조금 더 멋을 부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는 것은 아닐까.

    성형수술과 명품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실보다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겉치레가 아닐까. 체면치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수라고 한다면 가창력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기우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노래방 문화가 우리 주변에 일상화되어 있다. 가사가 있어야 노래를 할 수 있다는 사람이 많다. 학창시절 노래 한 곡을 배우기 위해 가사를 받아쓰고 외우던 풍속은 사라졌다. 컴퓨터를 켜면 가사와 음악이 나오고 노래방에 가면 신곡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많은데 굳이 쓰고 외울 필요가 있겠는가. 편리함이라는 장점과 함께 눈에 보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모 방송국 프로그램 중에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는 70년대 80년대에 불리던 곡들이다. 보이는 것에 익숙하던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수들도 가창력을 자랑하고 있다. 어쩌면 보여 주는 노래보다 듣는 노래에 대한 향수가 더 짙은 것은 아닐까.

    최근 우리 사회에 첨예하게 대두되는 각종 현안들도 일종의 보여 주기 위한 데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당사자들끼리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보다는 우리는 이만큼 하고 있다고 보여 주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자체의 수장들도 지역의 미래보다는 임기 내에 보여 주려는 정책들로 인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치가들도 수시로 국민들에게 문제를 만들어 보여 주고 관심을 끌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아닐까. 유권자를 향해 외치는 정책이나 사회적 이슈들이 정말로 민의(民意)를 위한 것인가,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사사건건 대립으로 치닫는 정당 간의 대결을 보면 모두가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치지도자라고 하면 보여 주기 위한 정책보다는 여야를 떠나 머리를 맞대고 국가와 사회를 위한 내실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 과정 안에서 비판이 가해지고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 진행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 지도자들이 보여 주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창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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