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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평화의 소리

  • 기사입력 : 2011-09-1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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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왕 케촉의 피리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음정 박자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은 그의 소리에 평화를 느끼는 이유는, 그가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악보조차 볼 줄 모른다는 역설적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즉흥곡, 그냥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연주한다고 한다.

    그는 본래 티베트 사람으로 달라이 라마의 수행승이었는데 달라이 라마가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아까워해서 환속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환속시킨 달라이 라마의 큰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문득 소리가 먼저일까, 말씀이 먼저일까 하는 어리석은 화두를 떠올려 본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그 정확성을 증명할 수 없다. 다만 소리에 비해 말씀이 많이 오염돼 있다면 누구나 동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세상이 수없이 많은 이익집단으로 얽혀져 있다 보니 본래는 순수했을 그 말씀을 각자의 입장에서 구부려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은 종교 정치 경제 노동 등 각 분야의 엘리트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과 세계 각국의 언어로 얼룩져 있다.

    영감과 지식 양면에서 세계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달라이 라마가 나왕을 환속시킨 까닭을 “말씀보다 순수한 소리를 공부함으로써 성불하라”는 뜻으로 해석해 본다.

    나왕의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와 같은 소리를 생각해보면 교육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유명 교수에게 거액을 지불하고 레슨을 받지 않으면 음악가로서 문턱조차 넘어설 수 없는 실상이 본래부터 있었던 진리의 모습일까. 그 레슨이란 것도 이기주의에 오염된 말씀, 즉 이데올로기는 아닌지. 그 오염이 느껴지지 않기에 나왕의 투박한 소리는 인간의 마음을 편하게 할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남태평양 사모아섬에서 쓴 보고서를 읽노라면 문명이란 게 꼭 필요한지 새삼스럽게 의문이 든다. 나서 자라고, 지천에 널려 있는 식량을 채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성인이 되고, 마음에 맞는 이성이 있으면 언제라도 부모의 동의 없이 분가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그들이 어째서 불행한 사람들인가. 문명세계에서 태어나 인생의 황금기를 입시준비에 시달리면서 소모하는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을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기에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지 않았는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뜻은 “단순해져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나왕의 소리가 평화롭게 느껴지는 이유, 뉴욕에서 사망 직전의 한 환자가 그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의 음악을 듣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전해지는 이유도 그의 소리가 단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단순함’에 대한 그리움은 아마도 영원한 희망사항으로 남을 것 같다.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인 평화는 복잡한 것들을 잘 조화시킬 때 가능해진다. 복잡한 것들은 수많은 불평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그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종교의 역할은 말씀이 우선이겠으나, 나왕의 피리 소리와 같은 원형의 소리를 찾아내는 일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소리는 만국 공용어인 동시에 인류의 영혼을 순화시켜 주는, 보다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재승(창원통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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