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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산청 명품녹색길(1)

경남의 길을 걷다 (31) 산청 명품녹색길(1)- 남명의 길
남명이 거닐던 백운동 계곡서 찌든 마음 씻고
그의 자취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선비가 된 듯

  • 기사입력 : 2011-09-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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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동 계곡에서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탁영대에서 바라본 덕천강변 경치. 맑은 물과 시원한 풍치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남명 조식 선생이 기거했던 산천재에서 이곳까지 거닐며 경치를 음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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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동 계곡 입구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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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에는 역사를 배우고 도덕의 진미를 체득하면서 걷을 수 있는 길을 소개한다.

    산청군에는 명품녹색길이라는 코스가 3개나 있는데, 첫째가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선생이 산청에 머물면서 곳곳에 흔적을 남겼던 곳을 찾아가는 ‘남명의 길’이고, 두 번째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잠들어 있는 ‘구형왕릉 가는 길’이다. 세 번째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인데, 이번에는 ‘남명의 길’과 ‘구형왕릉 가는 길’ 코스를 2주 연달아 소개한다.


    ‘남명의 길’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물소리·바람소리에 굵은 땀방울을 씻을 수 있는 옛 선비들의 정신수양의 길이다.

    ‘남명의 길’을 떠나기에 앞서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에 대해 알아보자.

    선생은 합천군 삼가에서 태어나 어려서 정시에 장원급제한 아버지를 따라 26살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그 후 김해에서 18년, 다시 합천 삼가에서 12년을 살다가 61세가 되던 해에 산청군 시천면 덕산동에 들어와 72세에 별세, 덕산에 묻혔다.

    일생 동안 임금이 불러도 나가지 않아 벼슬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사후에 문정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영의정에 추증되기도 했다.



    남명 조식선생 동상


    만길 절벽 같은 기상으로 높이 서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만나 곽재우 장군 등 50명이 넘는 의병장이 그의 문하에서 나라를 지켰다.

    이론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길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울 수 있으니 이쯤 하고 산청 명품녹색길 제1코스 ‘남명의 길’을 떠나자.

    남명 선생의 도덕적 흔적을 추적하는 남명의 길은 국도를 많이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걸어서 찾기에는 상당히 위험하다. 차들이 쌩쌩 달리기 때문. 일부 백운동 구간은 편안하게 걸을 수 있지만 대부분 코스는 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지리산대로(국도20호선)를 따라 지리산을 향해 가다가 칠정마을을 지나면 ‘도구대’가 나온다. 도구대는 역사적 유래가 깊어 찾아가는 곳인데, 모퉁이 형상의 이 도구대에서는 주변 경치를 잘 볼 수 있다. 도구대는 옛날 질그릇(도기, 사기)을 굽던 마을의 언덕이 있던 곳인데, 남명 선생의 제자 도구 이제신(1510~1582)이 정자를 짓고 살던 곳이다.

    남명 조식선생 14대 후손인 관광해설사 조종명 선생은 “훗날 남명의 유적을 찾는 수많은 학자들이 산청 덕산으로 들어가며 맨 먼저 찾는 곳이 도구대였다. 눌암 박지서(1754~1819), 면우 곽종석(1846~1919), 송호문(1862~1907) 등이 수많은 글을 지어 이곳 도구대를 통해서 남명을 만나는 첫 번째 명승지로 삼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도구대에서 백운동 계곡을 찾아가야 한다. 백운동까지 걸어서 40~50분, 차를 타면 10여 분이면 계곡에 도착한다. 백운동 계곡 입구에는 남명선생을 기리는 시비가 하나 서 있다.

    남명이 즐겨 찾았다는 백운동 계곡의 바위.

    백운동 계곡 입구에 있는 남명 선생 시비.


    시비에는 남명선생이 쓴 ‘유백운동(遊白雲洞)’이라는 시가 적혀있는데, 지난 2001년 남명 탄신 500주년을 기념해 경남도가 남명 유적지 15곳에 시비를 세운 것 중의 하나이다. 이 시비는 경상대 허권수 교수가 번역하고, 윤효석이 글을 썼다.

    시비를 지나 계곡이 있는 산으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산도 넉넉하고, 길도 한적해 걷기에 딱 좋은 곳이다. 지금은 익어가는 벼의 한없이 내려가는 고개를 볼 수 있어 도덕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는 인간의 도리를 깨우쳐주는 듯하다.

    시골마을을 가로질러 계속 올라가면 펜션이 많이 나온다. 백운동 계곡은 남명선생이 즐겨 찾아 술 마시고, 놀고, 제자들과 손님들과 이야기꽃을 피운 곳이었으니 그 산세를 논해서 무엇하랴. 지금도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여름이면 찾아 휴양하고 가는 곳이라는 말로 그 답을 대신한다.

    백운동 계곡은 웅석봉 산자락이 길게 뻗어나와 덕천강으로 계류를 쏟아내는 곳이다. 목욕을 하면 절로 아는 것이 생긴다는 다지소와 백운폭포, 다섯 곳의 폭포와 담이 있는 오담폭포, 물살이 하늘로 오른다는 등천대가 유명하다.

    백운동 계곡 중간지점에 있는 공중화장실 150m 위쪽에는 남명선생이 즐겨 놀았던 자리가 나온다. 기암괴석과 그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너무 아름다워 남명선생이 “야 정말 좋은 곳이구나”라고 감탄했을 법하다.

    이곳에 있는 바위에 ‘남명선생장구지소’라고 새긴 글귀가 나온다. 남명선생이 작대기와 신발을 벗고 놀았던 곳이라는 뜻이다.



    이 바위 앞에는 줄잡아 100여 명이 앉아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쉴 수 있는 넓고 큰 바위가 있다. 아마도 남명선생은 경치가 뛰어난 이곳에서 제자들과 손님들과 난장판 정치판을 멀리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으리라.

    이제 백운동을 나와 남명선생이 기거하며 후학을 가르쳤던 산천재, 덕천서원으로 찾아가야 한다. 그 길목에 있는 것이 입덕문과 덕문정, 탁영대이다.

    입덕문은 백운동 쪽에서 덕산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큰 벼랑을 뜻한다. 지금의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 암벽에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이었다. 이 길을 들어서면서 남명선생이 입덕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도로공사로 인해 도로변 한쪽에 옮겨놓았는데, 붉은 글씨로 ‘입덕문(入德門)’이라고 쓰여 있다.

    입덕문 앞에는 1996년에 세운 덕문정이 있다. 남명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입덕문 보승계’에서 세운 것이다. 해마다 5월 10일이면 보승계 모임이 여기서 열린다.

    입덕문 바위 앞에서 150m 정도 걸어가 덕천강변으로 내려가면 탁영대를 만난다. 갓끈을 씻을 수 있다는 뜻으로, 탁영은 굴원(屈原·BC 343~277)의 ‘이소(離騷)’에 나오는 말인데,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는 뜻에서 그만큼 물이 맑다는 뜻이다.

    이제 남명선생이 주로 머물렀던 곳으로 찾아가자.

    우선 남명기념관을 찾아 남명선생과 그 후학에 대해 알아보자. 남명기념관은 2001년 남명선생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건립이 추진됐으며, 2004년 7월 기념관이 완공됐다. 3개의 전시관이 있으며, 영상실, 교육관, 세미나실, 유물 수장고가 있다.


    산천재는 남명 선생이 1572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기거하고 강학하면서 공부했던 곳이다.


    남명기념관 바로 앞에는 산천재(山天齋)가 있다. 남명선생이 산청으로 1561년에 오셔서 1572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기거하면서 강학하고 공부한 장소이다.

    남명선생이 61세 되던 1561년(명종 16년)에 건립됐으며, 산천재 마루 위 벽 중앙과 좌우에는 3폭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산천재 옆 장판각에는 남명선생의 문집 목판을 보관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순조 14년(1818년)에 복원됐다. 산천재 마당에서는 지리산 제일봉 ‘천왕봉’이 바로 보이며, 천왕봉은 자신보다 더 높은 남명선생의 ‘도덕봉(道德峰)’을 늘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산천재 마당에는 남명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가 있으며, 단성면의 ‘원정매’, ‘정당매’와 함께 산청의 3매(梅)로 불리고 있다.


    남명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선생 사후 4년 뒤에 지어진 덕천서원. 남명학파의 본산이다.


    이제 남명의 길 마지막 코스 ‘덕천서원’이다. 덕천서원은 산천재에서 걸어서 2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다.

    덕천서원은 강우유맥 남명학파의 본산이며, 인조반정 등으로 풍파를 겪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됐다가 1920년대에 복원됐다.

    남명선생 제자 영무성 하응도가 땅을 기증해 지었으며, 하응도가 남명선생 생전에 초옥을 구입해 선생이 이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거닐었고, 선생 사후 4년 뒤 지어졌다.

    이곳에서는 매년 10월 둘째주 ‘남명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35회이다. 덕천서원이 조선시대 사립학교였던 만큼 남명제의 종헌관은 사립중고교 교장선생님 중 한 명이 집례한다. 이곳 원장은 12년째 이현재 전 국무총리가 맡고 있다.

    전국의 서원이 쇠퇴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덕천서원은 산청군에서 예산을 지원해줘 5~6월에 어린이 서원체험을 1박2일 갖고 있어 어린이들에게 도덕세계를 알리고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 박여량(함양 선비) 선생이 남명선생이 보고 싶어 “천길 천왕봉에 올라 덕산을 바라보니 또다시 천길 벼랑이 있더라”라고 하면서 도덕의 경지가 가늠이 되지 않는 남명선생을 따르거나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했다.

    또 경상대 강희근 교수는 “천왕봉을 갈 때 덕천서원을 들르지 않으면 무효다”라고 할 만큼 남명선생 자체가 천왕봉이고, 남명선생의 그 도덕이 천왕봉이라고 표현했다.

    남명선생의 도덕의 길을 따라가 본 ‘남명의 길’은 역사공부와 함께 도덕의 경지를 논하면서 선비 된 기분으로 걷기에 좋은 길이다.



    ★ 길에서 만난 맛집 - 물레방아 식당

    남명의 길 중간쯤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있는 ‘물레방아 식당’에 들르면 ‘전통 피리조림’을 맛볼 수 있다.

    덕천강 일대에서 잡은 피리(피라미)로 요리하는데, 피리를 1차 튀긴 뒤 마늘과 고춧가루, 무, 감자 등을 팍팍 넣고 30분 정도 조려낸 것이 전통 피리조림이다. 피리는 피라미, 잘피리, 천어, 볼거지, 잘너리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잉어과 민물고기. 그런데 물때를 잘못 만나면 피리가 없어 피리조림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는 메기조림이 대신한다. 메기조림도 방법과 양념이 비슷하기 때문에 피리조림을 대신하고 있다. 피리든 메기든 조림에는 보리밥이 나오고, 전통방식으로 담아낸 밑반찬이 상을 꾸린다.

    허정철 대표는 “피리는 주로 튀김, 조림으로 요리되며 조림은 맑은 물에서 볼 수 있는 피리와 각종 채소, 좋은 한약재가 들어가 보약이다”고 자랑했다. 물레방아 식당 ☏ 972-8290.



    글=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도움말=남명 조식선생 14대 후손 조종명 선생(문화관광해설사)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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