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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현장에서 버티는 무게
방역의 고삐를 죌수록 숨통이 조이는 사람들
좀 나아질란가 했드만… 집 잃고 가게에서 반년째 '지하생활'
유흥업주ㅣ"지하생활" 하는 이유
고숙자(가명)씨는 창원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유흥업주다.
고씨는 집이 아닌 노래방에서 산다. 벌써 반년째다.
노래방은 상가 건물 지하 1층에 있다. 고씨가 노래방 살이를 '지하생활'이라고 한 이유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되니까. 3월인가, 있던 방도 빼고 여기 와서 지하생활을 하고 있다 아입니꺼"
코로나 사태로 버는 돈은 줄었지만 나가야 할 돈은 그대로였다. 월 100만원에 달하는 노래방 임대료와 전기·수도 요금, 통신비·보험료, 집세, 대출 상환금까지 매달 200만원가량이 필요했다.
이미 빚이 있어 더이상 돈을 빌릴 곳이 없었다. 고씨는 집 보증금 2000만원을 돌려받고, 매달 나가는 월세 30만원을 아껴야 했다.
예순이 넘는 나이에 반년째 지하생활을 하다보니 고씨는 평소 좋지 않던 기관지가 더 나빠졌다고 했다.
고씨가 반년째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노래방의 2평 남짓한 공간.
ㅣ이젠 끝나나 했다… 2주간 영업중지
희망이 없었던 것도 아니라고 고씨는 말했다. 지난 2월 말부터 시작된 경남 코로나 상황은 6~7월 들어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수도권발 감염이 터졌다. 경남도는 8월 23일 고씨가 운영하는 노래방 포함 고위험시설 12종에 집합금지(영업중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2주 동안 문 닫으라고 하니까. 막막했지. 우찌 묵고 살란 말인가…"
고씨는 "앞에 (정부가) 방역을 잘해서 인자(이제) 좀 나아질란가 했드만… (서울 광화문) 집회, 그거 때문에"라며 "온국민이 다같이 고생을 한다 아입니꺼! 각자 뭐 믿는 것도 있지만. 이럴 때는 자기들도 자제를 해줘야지. 자기들만 사는 나라도 아닌데"고 분개했다.
고씨와 같은 유흥업주들만 겪은 일은 아니다.
코로나 재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취해진 강력한 방역 조치, 그 기간 동안 누군가는 '생존 위협'에 가까운 부담을 견디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경남의 한 가게가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코로나 충격으로 경남 고용시장에서 취업자가 6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ㅣ"방역에 협조했는데… 유흥이라는 이유만으로"
9월 7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피해 입은 업종과 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여기서 유흥업은 빠졌다.
접객원(여성 도우미)을 동원해 술을 팔고 노래·춤 등 유흥을 제공하는 업종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고씨는 "우리는 (방역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다 했다 아입니꺼. 문 닫으라면 닫고. 다 했다. 다른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는 지원금도 있고, 대출 받는 것도 있드만 우리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간 출입명부 작성 등 핵심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누구보다 방역에 협조했다는 사실도 고씨는 누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지 유흥, 유흥이라는 이유만으로 코로나 시기 이런 일을 겪고 있다"는 허탈함을 숨기지 않았다.
ㅣ방역의 관점에서
9월 14~15일 창원시와 경남도는 정부의 코로나 위기극복 지원대상에서 최종적으로 제외된다면 경남의 유흥주점을 자체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남 고위험시설 12종(PC방 포함. PC방 9.15부로 제외됨) 중 절반 이상(52%)이 유흥주점이다.
영업중지를 감수한 이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참여는 향후 방역에서도 꼭 필요한 협조다.
다음날인 9월 16일 경남 여성단체는 "김경수 도지사와 허성무 창원시장은 성차별·성착취의 온상인 유흥업소의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철회하라"고 했다.
창원시는 "이번 고위험시설 전 업종 지원은 공정한 지원을 위한 결정일 뿐"이라며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착실하게 지킨 업체엔 차별없이 공정한 지원이 가야 한다"고 했다.
국회는 9월 22일 코로나 재확산으로 피해를 본 계층을 맞춤형 지원하는 4차 추경안을 통과하면서 여야 합의로 정부안에서 제외된 유흥주점과 콜라텍을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시장에 사람이라고는 상인들뿐…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ㅣ시장상인ㅣ문자음 울리자 사람들이 사라졌다
박정호씨는 창원 가음정시장 상인이다. 박씨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코로나 확진자 동선이 공개된 날이었다. 동선에 가음정시장이 포함됐다.
"시장이 꽤 붐볐는데 동선 공개 문자가 오자마자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장 보기를 그만두고 썰물 빠지듯이 빠졌다"
이튿날부터 거짓말처럼 몇 달 동안 손님이 뚝 끊겼다.
박씨는 "시장에 사람이라고는 상인들 밖에 없으니,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땐 진짜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ㅣ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단골손님
박씨 가게는 떡갈비, 초벌 삼겹살을 판다. 사람들이 줄 서서 포장해가는 맛집이다. 장 보고 돌아가는 길에 저녁거리로 간편한 떡갈비나 초벌 삼겹살을 한 두 팩씩 사가는 단골들이 많았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도 어느 정도 코로나에 익숙해졌는지 하나둘 다시 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골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바닥 친 매출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박씨는 예전에 비해 평균 30% 이상 떨어진 채로 올해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코로나는 다시 왔다.
창원 가음정시장에서 박정호씨가 판매하는 수제 떡갈비와 초벌 삼겹살.
ㅣ직장 그만두고 뛰어든 자영업… 코로나와 보내다
2년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박씨. 전통시장을 기반으로 한 음식사업에 대한 꿈이 있어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가게를 낸 뒤 상당 시간을 코로나와 함께 하고 있다.
박씨는 "이제 막 사업에 진입한 사람들, 저처럼 젊은 사업자들이 코로나19에 가장 많이 흔들린다. 비슷한 시기에 제 또래의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가게 4곳이 가음정시장에 자리를 잡아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ㅣ발버둥… 온라인 주문배달 시작
"시쳇말로 정말 뭐라도 해야 할 판이랄까요. 여기서 더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거죠"
박씨는 '전통시장 온라인 주문 배달 서비스'의 시작했다. 경남도는 코로나로 온라인 매출이 증가하자, 전통시장 장 보기 배송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창원 도계부부시장과 가음정시장, 진주 자유시장, 김해 삼방시장 4곳이 선정돼 8월 31일부터 본격 서비스에 들어갔다.
박씨는 "코로나가 지나가고, 다시 시장이 활기를 띄고, 시장을 찾은 손님들께 환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버텨봐야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