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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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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마산 석전동 133번지- 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정미국채보상의거 김광제 집자리에 표지석 세우길…

  • 기사입력 : 2011-10-1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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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제는 1866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호를 동양자로 썼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완연히 왜로 손아귀에 들어가자 관직을 던지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하여 1907년부터 대구에서 조선 왕조 마지막 국가적 의열 활동이라 볼 수 있는 정미국채보상의거를 시작했다. 이 일을 발의하고 전국 규모 의거로 키워 한 해 가까이 이끌었다. 섬나라 오랑캐가 우리 곳간을 거들내기 위해 가져다 쓰도록 해 지게 된 나라빚을 갚고, 나라 힘을 되찾자는 투쟁이었다. 많은 이가 술을 끊고 담배를 끊어 힘을 보탰다.

    그러나 왜로 통감부의 사주를 받은 일진회 패거리와 부왜 관료에 의해 동양자를 비롯한 주도 세력은 모금액을 횡령했다는 모함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의거를 방해하기 위한 꾀였다. 그것이 혐의 없음으로 판명되어 옥을 나왔을 때는 이미 국채보상의거를 이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동양자는 그 뒤에도 의열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대한학회·교남교육회와 같은 학회를 중심으로 의기 높은 대중 연설가로서 온 나라를 누비며 국권회복과 애국계몽의 목청을 태웠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오랑캐에게 도륙을 당하자 동양자는 삶터를 마산으로 옮겼다. 출판과 노동 활동을 벌이며 위아래 앞뒤 계층 사람들을 묶어 권토중래를 노렸다. 그런 과정에서 낸 책이 세 권이었다. 그 하나가 1913년 신활자로 편 ‘마산문예구락부’ 1집이다. 국치 아래서도 한문 교양이나 희롱하던 서울의 매국 유림 지식층과 날카롭게 거리를 두면서 구국, 의열의 뜻을 펴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결과다. 비록 한문 표기에 머물렀으나 마산문예구락부는 오늘날 남아 있는 마산의 첫 근대문학 매체로 빛난다.

    이어 1920년 동양자는 서울에서 조선노동대회를 열었다. 우리나라 노동 활동의 서막을 여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와 맞물린 제2기미만세의거를 꾸민 혐의로 왜로에게 체포되었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동양자는 마산에서 1920년 7월 24일 저녁 초대를 받고 돌아와 복통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운명했다. 왜로의 독살이라 짐작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이 쉰다섯, 한창 일할 나이에 동양자는 원통한 죽음을 맞이했다. 남은 것은 지아비의 주검 앞에 피눈물을 뿌리는 아내와 어린 아들의 궁핍뿐이었다.

    마산단주회를 중심으로 한 도움으로 마산 공동묘지에 묻혔던 지사의 유해는 여섯 해 만에 표석을 얻었다. 일곱 해가 지나서야 고향 유지들의 모금으로 보령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 영결식에 7만이나 되는 애도객이 모였다. 놀란 왜로 경찰의 방해로 행사가 하루 늦추어지기까지 했다. 동양자는 1910년 이후부터 1920년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마산에 살면서 뜻을 펴고 터를 닦다 떠났다. 그러나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마산 사람은 없다. 며칠 전 대구에서 정미국채보상의거기념관이 섰다 한다. 그곳에서도 동양자가 중심이기보다는 후원자였던 지역 사람 서상돈을 떠받드는 전시 배치일 것임은 보지 않고도 짐작할 만한 일이다.

    동양자가 구국 의열의 뜻을 펴다 원사(寃死)한 통한의 땅이 마산이다. 주검을 뉘었던 집자리가 석전동 133번지. 지사가 처음 묻혔던 무덤 자리도 표석도 속절없이 잊혀졌건만, 살았던 지번은 오늘날까지 요행히 남았다. 국권회복기 대표적인 애국계몽 지식인 가운데 한 분으로 귀하게 살다 간 동양자에 대해 마산이 예의를 갖출 시기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 마산 대내동 1-1번지, 참으로 부끄러운 왜로 영사관 지번과 옛터에는 커다란 표지석을 세울 줄 아는 아량(?)을 지닌 지역사회다. 석전동 133번지, 그 뜨거운 자리에 지금이라도 표지석 하나 세우고 고개 숙일 줄 알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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