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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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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함양 선비문화탐방로

경남의 길을 걷다 (37) 함양 선비문화탐방로
계곡정취 옆에 끼고 정자마다 쉬어가니
선비들도 그랬을까 세상 시름 잊혀지네

  • 기사입력 : 2011-10-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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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한다는 거연정.
    화림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나무데크.
    동호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 추수가 끝난 논길이 나온다.



    선조의 멋과 풍류를 한껏 누릴 수 있는 길, 함양 선비문화탐방로를 소개한다.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거연정에서 안의면 월림리 농월정국민관광지까지 6㎞ 구간.

    이 길은 함양군이 2004년부터 2년간 16억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

    화림동 계곡을 끼고 나무데크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걷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함양은 예로부터 ‘좌 안동 우 함양’으로 불리던 선비의 고장이다.

    선비의 고장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 개 세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화림동(花林洞) 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비단 같은 물결,

    금천(錦川)이 흘러내리면서 멋진 너럭바위와 담과 소를 만들며 정자와 절경을 이뤄

    ‘팔담팔정(八潭八亭·8개의 못과 8개 정자)’으로 불렸다. 선비문화탐방로는 ‘대통령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이곳 사람들은 이렇게도 부른다)와 국도 26호선을 양쪽에 두고 가운데로 나 있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 ‘지리산 동남쪽’편에서 이곳을 소개하면서 영호남의 정자문화를 비교했다. 영남의 정자들이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를 찾아 세운 것이 많은 반면 호남의 정자들은 삶의 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 일종의 전원생활 현장에 세운 것이 많다는 차이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놀이문화의 정자와 생활문화의 정자라고 했다. 영남 유생들은 육십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이곳에 수많은 정자를 남기며 풍류를 즐겼다.


    탐방은 거연정(居然亭)에서 시작했다. 거연정은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全時敍)가 소요하던 곳에 후손이 추모하기 위해 1872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 건물로 내부에는 판방을 1칸 두고 있다. 자연 바위를 주춧돌로 삼았고, 고르지 않은 표면에 맞게 나무기둥의 밑부분을 깎은 ‘그렝이질’ 공법을 사용했다. 인공과 자연의 조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다른 정자가 계곡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과 달리 거연정은 계곡의 가운데 섬을 이룬 너럭바위 위에 만들었다. 무지개 철제다리를 건너서 들어가는데, 녹슨 철제다리가 주변 풍광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 정자 옆을 끼고 도는 깊은 못에 곱게 내려앉은 단풍이 가을의 운치를 더한다.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하는 곳이다.

    거연정에서 조금 내려오면 군자정(君子亭)을 만난다. 군자정은 전시서 공의 5대손인 전세걸(全世杰)이 일두 정여창(鄭汝昌)을 기념하기 위해 1802년에 짓고,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불렀다. 이곳 봉전마을은 정여창의 처가가 있는 마을로 처가에 들러 머물 때에는 여기를 유영했다고 전한다. 거연정에 비해 규모가 작으며 아담하고 소박하다. 따로 단청도 하지 않은 대신 난간에 연꽃 모양을 새겨 넣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폐교된 봉전초등학교에 선비문화관을 짓는다고 한다.

    군자정에서 봉전교를 건너면 화림계곡 탐방안내 간판이 나온다. 목적지별 거리가 잘 나와 있다. 이곳부터 탐방데크를 따라 걷는다. 우렁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우거진 노송에 몸과 마음은 그 옛날 선비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300m쯤 내려가면 영귀정(詠歸亭)에 이른다. 영귀대(詠歸臺)라고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는 바위절벽 위에 팔각정자로 만들었다. 영귀(詠歸)라는 글귀는 노래하면서 돌아온다는 안빈낙도의 뜻으로 유래를 논어에서 찾는다.

    영귀정 옆에는 부속정자가 새로 만들어져 있다. 봄에는 데크 주변에 야생화가 즐비하단다. 영귀정에서 700m쯤 내려가면 다곡마을과 대황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탐방로가 잠시 헷갈린다. 초심자를 위해 작은 안내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황금들녘을 보면서 한가하게 농촌을 걷는 것도 안빈낙도일 터. 탐방로 왼쪽 황석산에 단풍이 많이 내려왔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나무데크를 따라가다 보면 옛 선비들의 멋과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아담하고 소박한 군자정.
    노래하면서 돌아온다는 영귀정.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한 동호정.
    근래에 세워진 경모정.
    화재로 초석만 남아 있는 농월정.


    드디어 동호정(東湖亭)에 다다른다. 동호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동호 장만리(章萬里)의 충성심을 기려 그 후손들이 1890년경 세웠다. 장만리는 서하면 황산마을 태생인데, 임진왜란 때 선조를 등에 업고 의주로 피란했다. 후에 고종이 좌승지에 추증하고 충신 정려를 내렸다. 동호정은 암반 위에 건립된 정자로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1층 기둥은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그대로 사용했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통나무를 도끼로 찍어 투박하게 만들었다. 이에 비해 단청은 화려하고 문양도 다양하다. 대들보 위를 가로지르는 중도리는 여의주를 문 청룡과 물고기를 문 황룡 형상이 마주보고 있다. 공자 일대기를 그림으로도 남겼다.

    그 아래로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흐르며 물 가운데 수백명이 들어설 수 있는 차일암(遮日巖)이란 너럭바위가 있다. 해를 덮을 만큼 큰 바위란 뜻이다. 너럭바위 위에는 시가를 읊조리고 노래하는 곳이라는 ‘詠歌臺(영가대)’와 거문고와 피리를 부는 바위라는 ‘琴笛岩(금적암)’ 한자가 새겨져 있다. 동호정에, 혹은 마당처럼 넓고 아늑한 차일암에 앉으면 시심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동호정과 탐방로를 오가는 징검다리 간격이 너무 벌어져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동호정에서 나와 아래쪽 소나무 숲 끝으로 가면 탐방로로 이어진다. 논옆으로 돌길을 만들었다. 호성마을을 지나면 경모정(景慕亭)과 남천정(川亭)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근래에 세워졌다.

    남천정에서 계곡을 건너 맞은편 둑길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1.5㎞ 정도 걸어 황암사(黃巖祠)에 도착했다. 황암사는 정유재란 때 이곳 황석산성에서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삼일 동안 처절하게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하지만 중과부적, 참혹한 희생으로 시신은 산을 덮고 계곡은 피로 물들었단다. 2001년 조성했다. 숙연한 기운이 감돈다.

    이제 탐방로 마지막 정자인 농월정(弄月亭)으로 향한다. 황암사 앞 서하교를 건너 왼쪽으로, 옛 도로로 들어선다. 잠시만 더 걸으면 왼쪽에 황토색 계단이 보이고 탐방로가 계속된다. 계곡은 여기 와서 흙을 쓸어내고 어마어마한 너럭바위를 선물했다. 너럭바위 곳곳에 조물주가 물길을 내었고, 좁아진 물길은 힘차게 물을 내려 보낸다. 물살이 파 놓은 웅덩이들의 잔잔한 얼룩무늬도 구경거리다.

    농월정은 화림동 최고 정자였지만, 아쉽게도 2003년 화재로 전부 불타고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안의면 성북 출신인 지족당 박명부(朴明)가 광해군의 폭정을 직간하다 파직돼 이곳에서 은거생활을 했으며, 노년에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정자 앞 오른쪽 암반에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이라는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之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농월정은 소나무 우거진 숲을 등지고 달이 비치는 작은 웅덩이 월연(月淵)을 안고 있는 너럭바위 월연암을 굽어보고 있었다.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하늘에 휘영청 뜬 달과 월연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술잔에 뜬 달을 마시던 곳이었다. 달을 보며 즐기는 정자라는 이름이 그래서 생겼다.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 쉬엄쉬엄 걸으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되돌아가는 길은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선비문화탐방로는 음풍농월, 유유자적하던 선비들의 풍류와 멋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글= 이학수기자 leehs@knnews.co.kr

    사진= 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안내= 임숙조 문화해설사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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