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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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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교사의 권위는 지켜져야 한다- 정기홍(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12-11-1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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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문입설(程門立雪),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 중국 송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는 대유학자 정호(程顥)의 제자였다. 정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양시와 유초는 정호의 동생인 정이천(程伊川)을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갔다. 그들이 정이천의 집에 이르렀을 때 정이천은 눈을 감고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은 마당에서 정이천이 눈을 뜨기를 기다렸는데 밖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 뒤 정이천이 눈을 뜨고 양시와 유초를 보았을 때 문 밖에는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몸이 언 채로 두 사람은 스승을 뵙고자 하염없이 기다렸다. 제자가 스승을 공경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동안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탓일까.

    지난달 23일 합천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50대 선생님과 초등학생이 서로의 뺨을 때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5학년 여학생이 자신에게 벌을 준 선생님에게 “××야, 니가 뭔데 때리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격분한 선생님은 뺨을 때렸고, 어린이도 선생님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어린이의 친척은 사건 당일 사과를 하려고 어린이 집으로 찾아간 선생님에게 “때린 만큼 맞아라”며 뺨을 수차례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5일 부산 모 중학교 2학년 교실에서 40대 여선생님이 수업 중에 떠드는 이모(14) 군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자 이 군은 선생님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뺨까지 때리려 하는 것을 제지하자 선생님의 배를 세 차례 차서 쓰러뜨렸다. 이후에도 화를 참지 못한 이 군이 걸상을 선생님을 향해 집어던지는 등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한국의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악스런 일들도 하루 이틀 지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리는 세태다. 전국의 초·중·고 교실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이게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경악이 무뎌지면 미래도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기적을 이뤄냈다. 특히 경제의 급성장과 민주화의 급진전이다. 이 모두 부모의 희생으로 이뤄진 교육열에 기인한다. 그 교육이 지금의 한국을 만든 밑거름이었는데 교실이 붕괴되고, 교권과 교사의 권위가 지금처럼 추락되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지 않겠는가. 과거에 꿈도 꿀 수 없었던 경험을 하고 있다. 세계는 한국을 보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고 말하지만, 급성장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들도 기적처럼 벌어지고 있다.

    60~70년대 졸업식 날. “잘 자라서 휼륭한 사람이 돼라”고 당부하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면서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부모들도 모두 울었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몇몇 친구들은 이별과 함께 설움에 북받쳐 울었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사제지간이 실종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학생은 수업료 내고 수업을 받는 사람이고, 교사는 월급을 받고 가르치는 사람에 불과한가. 한국을 이끈 그 교육의 힘이 상품화돼 버린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선생님도 학생을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지만, 선생님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을 하는 짓은 더더욱 안 된다. 후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행태다. 한국이 늘 선진국 문턱에서 멈춰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 인권과 교권을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은 반드시 지양돼야 한다. 교육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면 신성한 교권과 교사의 권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교권의 확립 속에 학생의 인권도 존중받는, 상호갈등이 아닌 상호보완의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현재의 대선 후보들도 표에만 몰두해 퍼주기식 교육개혁만 내세우고 있다. 미래는 교육의 기본이 바로 서고, 철학 있는 교육개혁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훗날, 썩은 나무에 조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양시와 유초가 절실히 그리운 시절이다.

    정기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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