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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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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37) 유홍준 시인이 찾은 삼천포 각산, 진주 망진산·광제산 봉수대

봉수대마다 아지랑이 피워올리련다
저기 봄이 오고 있다고

  • 기사입력 : 2013-03-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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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천포 각산 봉수대
    진주 망진산 봉수대
    진주 광제산 봉수대




    아침 9시 반, 사천문화예술회관에 차를 주차시키고 50분을 걸어 올라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있다. 운동들 진짜 많이 한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숨을 진정시키고 나는 지금 삼천포 각산 꼭대기에 앉아 있다. 나는 오늘 진주 망진산, 광제산 봉수대까지 보러 갈 참이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는 광경은 눈물겹다. 눈물겹다는 것은 뭐고 아름답다는 것은 뭘까. 저기 남해로 건너가는 연륙교가 보이고 작은 섬들이 보인다. 그리고 저 섬에 당도해 있는 봄이 보인다. 엊그제는 몸을 낮춰 양지쪽을 들여다보았더니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벽에 부딪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햇볕이 주저앉은 자리, 그 담벼락 밑에 보라색 봄까치꽃이며 별꽃이 무리지어 있었다. 조그맣고 예쁘고 앙증맞은 그 꽃들 앞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진짜배기 인간은 ‘아직 채 봄이 오기 전에 미리 봄을 살아야 한다’고 한 이는 내 친구 이원규 시인이다. ‘미리 봄을 사는 느낌!’을 잘 아는 이원규가 나는 좋다. 강화에 사는 함민복도 그게 뭔지 잘 알 것이다.

    봄이 오려고 하면 나는 그냥 있지 못한다. 자꾸 산꼭대기로 올라가고 싶어진다. 먼 산자락 등고선들을 내려다보고 싶고 인간이 사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싶고 전체를 조망하고 싶어진다. 아무래도 추운 겨울엔 웅크릴 수밖에 없고, 미시적일 수밖에 없고, 시선이 자꾸 내면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봄이 오면 달라진다. 거시적이 되고, 높은 데 올라가 자꾸 전체를 조망하고 싶어진다.

    그동안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그랬다. 나는 곧바로 그 동네의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새로 살게 된 동네의 전체를 조망해 보았다. 집들을 익히고, 길들을 익히고, 그래야지만 새로 살게 된 동네의 주민이 될 것만 같았다.

    이런 내 습관은 심지어 낯선 도시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 도시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올라가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는 것이다. 도심 속에서 보는 도시와 산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도시는 매우 다르다. 마산도 그렇고 창원도 그렇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고 정다워야 그래야 진짜 살 만한 동네다. 꼭 도시가 아니어도 그렇다. 그다지 높지 않은데도 조망이 좋은 산에서 좋은 조망을 만났을 때의 평온함,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전생에 나는 조망이 좋은 산꼭대기 봉수대를 지키던 봉군(烽卒)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저기 조망이 좋은 산꼭대기를 찾아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그런 곳엔 어김없이 송전탑이나 이동통신사들의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옆에 대부분의 봉수대 흔적은 팽개쳐진 듯 남아 있다는 거다.

    하여간 삼천포 각산은 아름다운 곳이다. 각산에서 내려다보는 삼천포 시내는 거짓말처럼 평화롭다. 사람의 움직임도 차들의 움직임도 다 먼 나라 일 같다. 저기 오욕이 있고 애욕이 있고 절망이 있고 분노가 있는지 도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봄은 바다에서 온다. 봄은 바다에서 해안으로 올라와 육지로 육지로 봄을 전달해 들어간다. 봄은, 파릇한 파래무침 같은 거다. 이윽고 도다리쑥국 같은 거다. 그래서 새 봄은 은은하다가 감돌다가 마침내 내륙의 깊숙이 들어가 진한 취나물향이나 쌉싸름한 머위향으로 그 정도를 더해 간다.

    저기 바다로부터 봄이 오고 있다고 어서어서 봄을 맞을 채비를 하라고 봉화를 피워 올리면 어떨까? 이 산마루가 저 산마루로, 이 산마루가 저 산마루에게, 저기 봄이 오고 있다고, 봉수대마다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별 희한한 생각을 다해 본다.

    봄이고 조망이 좋은 곳이어서 내가 잠시 너무 감상에 젖었다. 각설하고, 다 아는 사실이지만 봉수제도란 야화주연(夜火晝煙). 봉(烽-햇불)과 수(燧-연기)로 국가의 위급상황을 신속히 중앙에 알리던 근대 이전의 통신방법이다.

    전국에 총 623개소(조선 후기 673개소)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개경으로, 조선시대는 한양으로 향했다. 이른바 국방상의 급보를 알리는 건 물론 경비(警備)나 전신(電信)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전국의 모든 봉수대는 목멱산(지금의 서울 남산)에 위치한 경봉수(京烽燧)에 상황보고를 하는 것이 그 최종 임무였다.

    전국의 봉수 경로는 총 5곳이었다. 함경도 경흥, 부산 동래, 평안도 강계, 평안도 의주, 전라도 순천에서 그 봉수들은 출발했다. 이 가운데 경흥(제1로), 강계(제3로), 의주(제4로)는 몽고, 여진, 중국 등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었고, 동래(제2로), 순천(제4로)는 일본과 같은 해양세력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었다. 낮에 연기로 연락하는 지역은 20~30리, 밤에 불로 연락하는 지역은 40~50리 간격이었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숫자가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봉수대에는 하급장교인 오장(伍長)과 봉수군(烽卒)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보통 봉수대 하나에 오장 1~2명과 봉군 4~10명이 근무를 했고 10일씩 교대근무를 했다. 조선시대의 경우 그 숫자가 총 3만575명이었다니 엄청나다.

    봉수는 낭화(狼火) 혹은 낭연(狼煙)이라 했는데 이리 낭(狼) 자를 쓴 건 불을 피울 때 싸리나무에 이리의 똥을 섞어 피웠기 때문, 그러면 연기가 흐트러지지 않고 똑바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리의 똥을 구하기 어려웠으므로 대체로 소나 말의 똥을 사용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봉수제도가 있었던 건 삼국시대 초기부터다. 삼국사기에 보면 금관가야의 김수로왕, 백제의 온조왕, 고구려의 영양왕 때 이미 봉수를 사용한 흔적(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이 봉수제도를 받아들인 건 고려 의종 때였다.

    봉수대에는 총 5개의 연대(煙臺)가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1개, 적이 출현하면 2개, 적이 국경에 가까이 오면 3개,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적과 접전을 벌이면 5개를 올렸다. 그러던 것이 시설의 미비, 불충분한 인원 배치, 봉수군에 대한 보급 부족,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하는 처우, 근무태만과 도망 등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적의 침입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사태까지 낳고 말았다.

    그래서 그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선조 때의 파발제(擺撥制)였다. 말이나 사람의 능력으로 그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 파발제 역시 이런저런 문제점이 발생했고 숙종 이후에는 봉수제와 파발제를 병행해 사용했는데 개항 후 전신(1885년) 전화(1890년대)와 같은 근대 통신문물이 도입되면서 결국 갑오개혁(1894년) 이후 봉수제는 폐지되었고 그 이듬해 봉수군마저 폐지되어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봉수제도가 사라진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 봉수대가 있던 산꼭대기엔 어김없이 군사기지나 송전탑, 이동통신사들의 안테나가 들어서 있다. 저 첨단 군사용 장비들은 적의 일거수일투족을 개미 들여다보듯 들여다보고 있고 세계의 통신문명 역시 가히 경악할 정도로 발전에 발전을 더했다. 그런데 저거 별로 예쁘지 않다. 이상하다. 우리는 저것들로 하여 보호를 받고 편리함을 제공받았지만 여전히 안전하지 않고 행복하지가 않다. 우리는 노예가 된 듯하고 감시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휴대전화 없이 살 수가 없고 텔레비전 없이 살 수 없다. 저것은 가족간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너도 나도 휴대전화가 없으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고기 잡는 어부도, 들일하는 농부도, 산행을 하는 등산객도 다 이 휴대전화를 옆구리에 차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물며 도시인들이야 말해 무엇 할까. 커피숍에 앉아 있는 젊은이도, 전철에 앉아 있는 중늙은이도 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여간 옛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저렇게 송전탑이나 이동통신사들의 안테나가 들어선 건 안 좋은 거 같다. 어쨌든 이런 문제에 있어서 나는 보수주의자이고 저기 왜적이 아니라 봄이 올라오고 있다고 봉화를 올리면 얼마나 재밌을까, 당치도 없는 생각을 하는 멍청이이다.

    서두르자. 나는 오늘 중으로 진주 망진산과 광제산 봉수대를 또 올라야 한다. 이 글을 위한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앗,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린다. 카톡이다. 누구지?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어서 내려와 점심이나 먹잔다. ㅎㅎ

    글·사진=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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