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50) 배한봉 시인이 찾은 거제 바람의 언덕

쪽빛 바람이 분다
바람이 내게 안긴다
나도 바람이 된다

  • 기사입력 : 2013-06-13 01:00:00
  •   



  • 눈동자마저도 파랗게 물이 들 정도로 맑은 쪽빛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 위에 하늘이 겹쳐져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이 안 된다. 온통 눈이 시린 쪽빛, 그 쪽빛 세계를 이국적인 느낌의 풍차 하나가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펄럭거리는 바람이 유월 한낮의 다소 무덥덥한 기운을 단숨에 날려버리고는 내 온몸을 휘감았다가 재빨리 달아나는 일을 되풀이한다. 금방이라도 바다에 뛰어들 듯 시원하게 넘실거리는 풀밭 언덕. 삼삼오오 무리 지어 움직이는 사람들이 양떼구름 같다. 바람을 쐬러 왔건, 자기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왔건 ‘바람의 언덕’에 서는 순간 우리는 모두 하나의 풍경이 된다.

    바람의 언덕은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마을에 있다. 바람의 언덕과 연결되는 도장포항은 작고 아담한 남도 항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해금강 가는 길목에 위치한 바람의 언덕은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곳이었으나 ‘순수의 시대’(SBS 2002년), ‘로망스’(MBC 2002년) 등의 드라마와 ‘종려나무숲’(감독 유상옥, 2005년) 등의 영화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정오를 조금 넘겨 도장포여객선터미널 앞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사방을 둘러본다. 만(灣)을 이룬 포구를 중심으로 음식점과 낚시용품점 등의 상가가 늘어서 있고, 언덕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포구에는 유람선과 작은 어선들이 여행객을 반기며 정박해 있다. 북쪽 언덕에 풍차 하나가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의 한 풍경처럼 서 있다. 이곳이 바람의 언덕이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5분쯤 걸어가자 바람의 언덕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길에 도착한다. 이른 더위 탓인지 푸른 유월의 선선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 주말여행을 온 사람들이 줄을 이어 오르내리고 있다. 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이 푸른 바다냄새를 코앞에 가득 풀어놓는다. 바람이 주인인 이 언덕의 실체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바람의 언덕에 도착한 나는 펄럭거리는 바람에 온몸을 내맡긴다. 바람의 언덕은 반도 형태의 작은 언덕으로 풀밭이 잘 조성되어 있고, 삼면에 바다를 펼쳐놓고 있다. 푸른 물빛은 내 가슴마저도 순식간에 쪽빛으로 물들여 놓는다.

    언덕 아래 해안에는 짙은 녹색으로 채색한 무인 등대가 파랑에 몸을 맡긴 채 홀로 서 있다. 홀로 있는 것은 무엇이든 쓸쓸해 보인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과 고깃배들에 희망의 불빛을 보내기 위해 고독을 켜켜이 껴입은 채 망연히 먼 바다를 향하고 있는 등대. 칠흑의 밤, 삶에 지친 나그네가 문득 찾아들면 한 점 희망의 불빛을 좌표처럼 보내 줄 것이다.

    언덕 위 풍차 앞에서 다정하게 손깍지를 낀 연인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풍차에는 사랑을 약속한 연인들의 이름과 글들이 새겨져 있다. 연인들은 한 토막의 글을 새기며 마음도 함께 새겼을 것이다. 사소한 추억도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배경이 된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三南에 내리는 눈>, 민음사



    언덕 위 동백 숲은 또 다른 볼거리다. 세찬 바람에 몸통을 단련시킨 동백나무의 굵은 가지는 봄이면 빨간 꽃봉오리를 무더기로 피워 올릴 터. 동백 숲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온 나는 바다를 향해 가슴을 활짝 편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한마디로 경치 끝내준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새삼 다시 실감한다. 중간중간 운치 좋은 곳에 놓인 벤치는 종일 바다를 불러 이야기하고 싶게 한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다 나는 메아리로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을 생각한다. 라인강 계곡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은 울퉁불퉁한 바위로 이루어진 험준한 언덕으로 명성에 비해 별로 볼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언덕은 문학작품으로 인해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라인강을 항해하는 뱃사공들이 요정이 된 로렐라이의 아름다운 노래에 도취된 사이 배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된다는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시는 하이네와 아르헨도르프 등의 서정시로 이어지면서 거의 전설처럼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광명소라는 곳을 가보면 대부분 음식점이나 상품을 파는 가게들로 빽빽하다.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관광상품 개발이나 온통 먹자판을 이룬 축제 만들기에는 몰두하면서 그 지역과 관련된 좋은 문학작품은 내팽개쳐 놓은 경우가 많다. 그런 곳에 가게 되면 볼품없는 로렐라이 언덕을, 독일을 방문하면 꼭 들러보아야 하는 세계적 명소로 탈바꿈시킨 시의 힘을 간과하고 있는 당국자의 문화의식 수준을 가늠해보게 된다. 이야기가 옆으로 좀 흘러갔지만 문학은, 시는 세계의 고갱이를 응축적인 언어로 포착하여 정점으로 치닫게 하는 확장이며, 스스로 빛이 되어 무한영역에 이르는 생명이다. 하동의 최참판댁 같은 경우는 문학작품을 지역문화와 결합하여 잘 승화시킨 좋은 하나의 사례다.

    맑고 푸른 바다와 드넓은 하늘을 품 가득 안고 바람의 언덕을 내려오면서 나는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자화상’)이라 했던 미당 서정주의 시구(詩句) 하나를 떠올린다. 억압적 현실을 부정하려는 삶의 몸부림이 팔할의 바람이었다면, 방황으로 점철된 젊은 날의 열망과 슬픔을 견디게 한 것도 그 팔할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여행은 현실이 짓누르고 있는 그 팔할의 바람을 열린 세계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여행을 일러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바람의 언덕을 차지하고 있는 8할도 바람이다. 쪽빛 바다와 하늘, 풍차 같은 풍경은 그 나머지 2할이다. 8할의 바람과 2할의 풍경은 한 몸이 될 때 온전히 하나가 된다.

    바람의 언덕을 내려와 나는 길 건너편 신선대로 가면서 생각한다. 풍차 말고는 볼 게 없다고 바람의 언덕을 그냥 지나쳤다면 나는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이곳 바람은 바다와 하늘, 등대와 풍차, 그리고 동백 숲의 조화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자연의 노래다.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거제도 바람의 언덕이 간직한 펄럭거림은, 넓은 고요는, 푸른 여백은 떠남과 고독을, 그리고 채워질 희망을 보여준다. 나를 키운 것도 팔할이 바람이다.


    글·사진= 배한봉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조고운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