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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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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53) 송창우 시인이 찾은 통영 연대도

자연도 사람도 때묻지 않은 무공해섬

  • 기사입력 : 2013-07-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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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도 마을 전경
    마을 입구에 있는 비지터센터. 우리나라에서 공공건물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패시브하우스다.
    뒷등에 오르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꽃양귀비 꽃밭 너머로 큰솔섬 작은 솔섬이 나란히 서 있다.
    옛날 연대도 사람들이 나무를 하러 다녔던 지겟길을 따라가다 보면 연대도 할매들이 가꿔놓은 다랭이 꽃밭이 펼쳐진다.
    다랭이 꽃밭 옆에 있는 에코 체험센터. 이곳엔 태양광 발전시설과 자전거 발전기(사진), 시소 발전기 등이 있다.

    글·사진=송창우


    가보기도 전에 먼저 정이 든 섬이 있다. 통영시 산양 앞바다에 떠있는 섬 연대도. 이는 연대라는 그 이름 때문이었는데, 연대란 내 고향 가덕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이름이기도 하다.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크기도 다르지만 연대봉이라는 같은 이름의 산을 품고 있다. 두 섬의 꼭대기에선 같은 시기에 똑같이 봉홧불과 연기를 피워 올리던 같은 운명의 역사가 있다.

    그것은 전란의 슬픈 역사이기도 하고 변방의 외로운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섬에 깃들어 살았던 사람들의 힘겨운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연대도로 가는 길은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지만, 단번에 말이 술술 통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고향으로 가는 뱃길이 사라지면서 어느 날 추억의 절반쯤을 잃어버린 사람이 잃어버린 절반의 추억을 찾아가는 그런 기분.

    오전 10시. 통영시 산양읍 달아항에서 섬나들이호를 탔다. 섬나들이호는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바닷길을 따라 학림도, 송도, 저도, 연대도, 만지도를 하루에 네 번 돈다. 다섯 개나 되는 섬을 드나든다고 생각하면 운항 거리가 꽤 길 것 같지만, 실은 달아항에서 제일 먼 만지도까지 2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섬이 많다는 통영 바다의 특징이다. 섬들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며 이웃해 있고, 섬나들이호의 뱃길은 마을버스 노선처럼 구불구불하다.

    학림도와 송도 그리고 저도 사이 골목길처럼 좁아지는 바다를 지나면 연대도와 만지도가 나온다. 이등변 삼각형의 푸른 산이 솟은 섬은 연대도고, 낮은 등성이를 넘어가는 고갯길이 부드러운 섬은 만지도다. 두 섬은 붙을 듯 말 듯 푸른 바다 위에 나란히 앉았는데 너무 가까워서 연대도에서 손을 뻗으면 만지도의 끝자락이 살짝 만져질 듯싶다.

    연대도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깨끗하다는 것이다. 바다는 속이 훤히 비치도록 맑았고, 부둣가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환했다. 마을회관을 겸하며 입구에 서 있는 비지터센터의 흰색과 연두색 벽, 그 뒤로 언덕배기를 따라 층층 앉아 있는 빨갛고 파란 지붕들. 그 강렬한 원색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연대도란 이름이 연대도의 옛날을 상징한다면 비지터센터 건물은 연대도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 이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공공건물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패시브하우스다. 패시브하우스는 석유나 가스 같은 화석 연료 대신 지열과 태양열을 이용하고 체온처럼 작은 열도 잘 보존해서 난방을 하는 건물을 말한다.

    연대도에는 비지터센터 외에도 마을 경로당, 에코 체험센터의 건물이 모두 패시브하우스다. 겨울에도 한결같이 20℃를 웃돈다는데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따뜻해지는 집들이다. 뿐만 아니라 연대도에 사는 40여 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는 마을 뒤편에 있는 태양광 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 에코 아일랜드라는 새로운 별칭답게 연대도는 재생에너지 사용과 생태적 실천으로 에너지 자립과 탄소 배출 제로에 도전하고 있는 섬이다.

    연대도를 이렇게 생태섬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지면 골목길을 따라가면 된다. 골목길을 정답게 물고 앉은 낮은 집들의 입구에는 연대도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재미난 문패들이 걸려 있다. 문패들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윷놀이 최고 고수 서재목 손재희의 집- 목소리 크고 음식 솜씨 좋은 아내 손재희, 연대도 개그맨 서재목 씨가 달리기를 잘하는 김동희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

    ‘노총각 어부가 혼자 사는 집- 화초를 좋아해서 목부작을 잘 만드는 이상동 어촌계장이 삽니다. 말이 없어서 답답할 정도지만 사람 좋은 집’

    ‘꽃이 있는 풍경 어정자 할머니- 작은 집 안팎에도 골목길에도 사시사철 꽃을 키우는 마음 착한 할머니 댁’

    집집마다 걸려 있는 문패를 하나하나씩 읽어가며 골목길을 몇 바퀴 돌다 보면, 이 섬에 사는 80여 명 주민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온 이웃처럼 여겨진다. 그중에 나는 ‘춤사위가 아름다운 염상근 노인 회장댁’이라 문패가 붙은 조그마한 집의 앞마당에 들어 한참을 쪼그려 앉았다. 할아버지는 축담에 앉아 정구지(부추)를 다듬고, 할머니는 평상에 앉아 풋콩의 꼬투리를 깠다.

    할아버지는 연대도가 고향이시라는데 젊은 시절엔 해녀배의 선장일을 했으나 몸이 아픈 바람에 일찍 일을 그만두셨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를 무척이나 고생시켰다며 정구지를 한 번 크게 뒤집으신다. 할머니는 통영에서 배 타고 시집을 오셨다고 했다. 병든 남편 수발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일생 손톱 깎을 일이 없었다는데, 그런 할머니의 투박한 손가락이 까고 있는 콩 꼬투리 속에는 더 슬픈 사연도 들어 있었다. 얼마 전 내 또래의 아들 하나를 병으로 잃었다는 것. 툭툭 떨어지는 할머니의 풋콩들 소리에 할아버지는 정구지를 또 한 번 크게 뒤집으신다. 마당가에 알싸한 정구지 냄새가 가득 차서 나는 잠시 눈물이 났다. 불과 한두 시간 만에 나는 연대도에 사는 사람의 아픔과 슬픔에도 그렇게 정이 들었다.

    골목길을 지나 몽돌해변으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뒷등에 오르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꽃양귀비 붉은 꽃밭 너머로 멋지게 자란 해송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옆으로는 큰 솔섬과 작은 솔섬이 나란히 서 있다. 솔섬이라 부르지만 실은 연대도의 해안 절벽에 우뚝 솟아오른 바위 절벽이다. 이곳은 일몰의 풍경이 환상적인 곳인데 연대도 사람들은 달아공원보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일몰 풍경을 더 높게 친다. 큰 솔섬과 작은 솔섬 사이로 떨어진다는, 꽃양귀비 꽃이 모두 지고 난 다음에도 붉은 놀빛을 드리우고 있을 그 저녁 나절의 풍경이란 상상만 해도 멋지다.

    한려해상의 멋진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고 싶다면 태양광 발전소 옆으로 난 지겟길을 따라가면 된다. 지겟길은 옛날 연대도 사람들이 나무하러 가던 길에서 이름을 붙인 둘레길인데, 연대봉의 싱그러운 숲속을 지나 다랭이 꽃밭과 에코 체험센터로 이어진다. 묵은 논밭들을 다시 일구어 만든 다랭이 꽃밭은 연대도 할매들의 살림밭이다. 연대도에는 할매공방이란 마을 기업이 있는데, 할매들은 다랭이 꽃밭에 여러 종류의 꽃을 심고, 그 꽃을 따서 향기로운 차를 만든다. 봄에는 민들레차가 가을에는 국화차와 구절초차가 인기란다. 연대도에 간다면 땅과 햇빛과 바닷바람과 할매들이 합작해서 만든 차 한 잔을 꼭 마셔보시라.

    다랭이 꽃밭 옆에 앉은 건물은 에코 체험센터다. 운동장 한쪽 스탠드에는 그늘막을 겸한 태양광 발전시설이 있고, 체험객들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즐겁게 놀면 전기가 생산되고 솜사탕도 만들어지는 자전거 발전기와 시소발전기들이 있다. 이곳은 원래 산양초등학교 조양분교가 있던 곳인데, 폐교가 되자 주민들이 빚을 내어 교육청으로부터 사들였다고 한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었고 학창시절의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곳을 외지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는데, 참 멋지다.

    연대도의 놀라운 변화는 지역시민단체인 ‘푸른 통영 21’의 끈질긴 노력과 통영시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힘입었지만,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을 지키려는 연대도 사람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자연 풍광도 멋지고 꽃도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연대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한 가지만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연대도 사람들이다. 지구의 앞날이 염려스럽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라면 이번 여름 연대도를 한 번 다녀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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